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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아일랜드 국민이 국민투표에서 개혁조약(‘리스본조약’)을 거부했다. 이어 19일부터 이틀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이사회(27개 유럽연합 EU 회원국 수반들의 모임)에서도 각 국 수반들은 많은 논의를 거듭했으나 투표거부에 따른 뾰족한 대책에 합의하지 못했다. 아일랜드의 브라이언 코웬 총리는 각 국 수반들에게 다시 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이라는 보장을 하지 않았다. 체코 총리도 덩달아 비준을 강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2005년 5월과 6월 프랑스와 네덜란드 국민이 유럽헌법조약(이하 유럽헌법)을 거부한 이후 만 3년만에 유럽통합에 다시 먹구름이 끼었다. 왜 주기적으로 이런 문제가 발생할까?

                        2보 전진…1보 후퇴
     지난 1952년 가동하기 시작한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부터 따진다면 유럽통합은 50년이 훨씬 넘었다. 이런 오랫 기간동안 통합과정은 때로 침체되거나 후퇴하기도 했고 어떤 때에는 전진하기도 했다.
     예를 든다면 1963년 프랑스의 샤를 드골 대통령이 영국의 유럽경제공동체(EEC) 가입을 거부한 데 이어 1967년 재차 가입을 거부했다. 또 1965년 후반기에는 6개월 동안 프랑스가 각료이사회에서 가중다수결로 의사결정이 이뤄진다는 계획에 반대해 공동체 업무를 거부하기도 했다. 또 1970년대에는 두차례의 석유파동으로 통합이 매우 답보상태에 처했다. 그러나 이런 답보상태를 극복하면서 유럽통합은 진전이 되어왔다. 1970년대의 통합 침체기를 극복하면서 1987년 단일유럽의정서(SEA: Single European Act)가 발효되었다. 1992년 12월31일까지 회원국간에 국경없는 단일시장을 이룩하자는 매우 야심찬 계획이다. 이 계획은 대부분 실행이 되었으며 현재 EU는 회원국간에 대부분의 분야에서 단일시장을 이뤘다.
     따라서 긴 역사의 안목에서 보면 이번 아일랜드의 리스본조약 거부도 분명하게 극복할 수 있다. 문제는 언제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느냐하는 점이다.
     가장 현실적인 안은 지난 번에 언급했듯이 조약을 비준할 필요가 없이 현실적으로 실천이 가능한 것을 실행하는 것이다. 공동외교안보정책의 강화와 EU 대표부의 확대 등은 조약개정이 없이도 가능하다. 이후 몇 년이 지나면 현재의 체제가 여러가지로 불편하고 미흡하기 때문에 조약을 개정하자는 논의가 제기될 것이다. 이럴 때 회원국들이 조약개정을 위한 정부간회의(Intergovernmental Conference: IGC)를 열어 개정을 협상하고 합의한 후 비준과정을 밟는 것이다.
              
                   엘리트와 시민의 통합지지도 큰 격차
     우선 이번 비준거부는 아일랜드 정부와 대기업, 중소기업 등이 적극 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투표가 거부되었다. 이런 점에서 아무래도 엘리트와 일반 서민의 통합에 대한 시각차가 크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엘리트의 통합지지도가 서민보다 훨씬 높다. 따라서 문제는 이런 격차를 어떻게 메꿀 수 있냐는 점이다.  
     엘리트와 시민의 통합에 대한 지지도 차이는 비단 아일랜드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EU의 행정부 역할을 하는 집행위원회는 일년에 네차례 각 회원국 시민들을 대상으로 통합지지도를 측정하는 설문조사를 실시해왔다. 모든 회원국 시민들에게 동일한 질문을 제기하고 이런 자료가 30년 넘게 축적돼 있기 때문에 유럽통합을 전공하는 연구자들에게 Eurobarometer라는 여론조사는 매우 중요한 원자료이다.
     최근 각 국 설문조사에 따르면 평균 절반이 넘는 회원국 엘리트들이 유럽통합을 지지하고 있다. 반면에 시민들의 유럽통합 지지도는 40%가 넘지 않는다. 물론 시민들의 통합지지도는 회원국마다 차이가 있다. 통합을 회의적으로 보는 영국이나 덴마크 시민들의 통합지지도는 40% 평균보다 더 낮다.
     아무래도 정치나 경제 등 각 분야의 엘리트들은 통합의 영향으로 다른 회원국 관계자들을 더 자주 접촉하게 되고 이들과 접촉하면서 통합의 이점 등을 잘 알 수 있다. 반면에 시민들은 여행이나 사업을 하면서 통합의 효과를 느껴도 경제가 좋지 않을 때 자꾸 희생양을 찾는다. 이럴 때 자국 정치지도자들이 국내정치 목적상 실책을 EU 책임으로 돌리는 경우가 빈번하다.
     격차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EU의 정책결정과정을 좀 더 민주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회원국 장관들이 모여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각료이사회는 1차 문서가 공개되고 표결과정에서 수많은 수정이 있지만 이런 과정을 일절 공개되지 않는다. 각 회원국 정책결정은 의회나 언론이 감시할 수 있지만 EU차원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이런 정책결정과정을 투명하게 고치자는 요구가 많았지만 아직 별다른 소득이 없다.
     마찬가지로 집행위원회 위원장과 위원 선출도 좀 더 민주적인 방식으로 실행할 필요가 있다. 현재 회원국 수반들이 합의에 의해 위원장을 뽑고 위원장은 대외통상이나 법무 등 각 분야를 담당하는 집행위원을 가린다. 이어 유럽의회는 집행위원장, 그리고 집행위원 전체에 대해 가부를 결정한다. 물론 특정 집행위원이 문제가 될 경우 유럽의회는 조약에는 없지만 인준을 거부하기도 해 집행위원이 물러나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좀 더 명확하게 규정해 집행위원회 인선 과정에 유럽의회의 관여를 좀 더 강화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안 병 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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