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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북’이 된 주제 마누엘 바로수 EU 집행위원장
23일 한-EU 정상회담 아무런 성과없이 종료/연임 확실하나 비난 거세

     주제 마누엘 바로수(José Manuel Barroso) 집행위원장 귀가 어지간히 간지러울 것 같다. 브뤼셀은 물론 여기저기서 그의 연임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기 때문이다. 다음달 4~7일까지 유럽의회(EP) 선거가 유럽연합(EU) 27개국에서 일제히 치러진다. 이후 행정부 역할을 하는 집행위원회의 수장인 집행위원장이 27개 회원국 수반들의 합의에 의해 선출된다. 집행위원장은 회원국들과의 협의를 통해 26명의 집행위원을 뽑고 유럽의회의 청문회 절차를 통해 임명된다. 유럽의회는 집행위원 전체를 승인하거나 거부할 수 있을 뿐 집행위원 개인의 임명을 거부할 수는 없다. 물론 청문회에서 의회의 거부대상이 된 집행위원 후보자는 대개 스스로 물러나는 경우가 많다. 2004년 임명된 바로수 위원장은 별다른 이변이 없는 한 연임이 확실시되고 있다. 유럽의회와 집행위원장, 그리고 집행위원의 임기는 모두 5년이다. 그러나 그가 한 일이 무엇인데 연임하느냐부터 다양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23일 서울에서 열린 한-EU 정상회담부터 시작해 별로 행운이 없는 바로수 위원장을 살펴보자.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묻혀버린 한-EU 정상회담
     23일 서울에서 열린 한-EU 정상회담은 비록 자유무역협정(FTA)을 타결짓지 못해 가시적인 성과는 없었지만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한-EU 정상회담은 2002년부터 주로 2년에 한번씩 아시아유럽정상회담(ASEM) 등 다른 국제회의 언저리에서 열렸다. 따라서 서울에서 정상회담이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 이번 회담에서 한-EU는 일년에 한번씩 상대국을 번갈아 가며 정상회담을 열기로 합의했고 무역과 교육,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서 교류를 강화해 전략적 파트너십(strategic partnership)을 구축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정상회담에는 바로수 집행위원장과 올 상반기 유럽이사회(European Council: 회원국 수반들의 모임) 순회의장국인 체코의 클라우스 대통령 등이 참석했다.
     그러나 이런 소식은 국내언론에 거의 보도될 수가 없었다. 바로 그날 아침 9:40분쯤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소식에 다른 뉴스가 들어갈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정상회담을 준비하느라 힘을 쏟은 외교통상부 관계자들이나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사람들에게는 아쉬운 일이지만 뉴스가 될만한 것인가(newsworthiness)를 판단하는 것은 언론매체 고유의 권한이다. 따라서 정상회담 관련 보도가 없었던 것은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한-EU 정상회담 관련보도는 따라서 바로수 위원장에게 그리 불운한 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그의 업적을 두고 벌어지는 극명한 평가는 그를 아프게 하고 있다. 특히 글로벌 매체인 영국인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는 신랄하다. 최소한 1달에 한 두 번 정도 그의 연임에 문제가 있다고 집중 보도하고 있다.

               “강력한 혁신 옹호자” 대 “앵글로 색슨의 대변자”
     FT의 브뤼셀 특파원 토니 바버(Tony Barber)는 5.29일자 칼럼(Global Insight)에서 바로수의 연임은 기정사실이 되었는데 그가 과연 연임할 만큼 업적이 있는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우선 그의 연임은 현실적으로 그리 문제가 없는 듯하다. 27개 회원국 수반들 가운데 그의 연임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일부 수반들은 그를  신통치 않다고 여기지만 ‘다른 더 나은 사람이 없다’는 식으로 그의 연임을 수용하는 분위기이다. 특히 영국이나 독일, 프랑스 등 EU 주요 3개국(빅스리) 수반들은 그의 연임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2004년부터 지금까지 그의 재임기간중 업적에 관해서는 평가가 극과 극으로 엇갈린다.
     정부의 개입보다 시장을 중시하며 규제완화를 특징으로 하는 앵글로 색슨 자본주의는 미국발 금융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간주된다. 그런데 바로수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지적하는 점이 바로 그가 재임중 금융위기의 주원인인 규제완화에 열중했다는 점이다. 앵글로 색슨 자본주의의 십자군(Anglo saxon crusader)으로 활동했다는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또 베네룩스 3개국 등 소국들은 그가 연임을 위해 프랑스나 독일, 영국 등 주요 회원국과의 원만한 관계를 위해 EU의 이익을 희생했다고 비판한다.  
     또 다른 비판은 그가 연임을 위해 가능하면 회원국들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 무지 노력했으며 오랫동안 연임 선거를 펼쳐왔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학생시절 모택동 주의자였다가 앵글로 색슨 자본주의 옹호자로 변한 사람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냐는 자조적인 목소리까지 나온다.
     그가 금융위기 대처에 아무런 역할을 수행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가장 신랄하다. 지난해 9월 미국 월가 굴지의 투자은행인 리먼브라더스가 도산한 후 경제위기가 유럽으로도 확산됐는데 바로수와 다른 집행위원들은 ‘허가를 받지 않고 휴가를 떠난 듯’ 아무일도 한 것이 없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현실을 모르고 하고 소리이다. 빅스리가 경제위기의 와중에서 자국의 금융기관 구제 등을 비판하며 거부하는 집행위원장을 좋아할 리가 있겠는가? 또 집행위원회는 경기부양책 등에 대해 회원국간 상호조정을 촉구할 뿐 이 분야에는 정책권한을 지니고 있지 않다.
     이런 비판을 거부하며 그를 칭송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부는 그를 “강력한 소비자 옹호자”이며 “강력한 혁신 옹호자”라고 간주한다. 그가 브뤼셀에 변화를 가져왔고 한 일이 많다는 것이다. 또 지난해 말 회원국간의 기후변화 대책 합의를 이끌어낸 점도 공으로 평가한다.
     비판자들은 1985년부터 10년간 집행위원장을 지낸 자크 들로르(Jacques Delors)를 예로 들며 바로수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들로르는 당시 프랑스-독일의 국가수반들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 유럽통합을 한 단계 진전시켰다. 1992년까지 회원국간의 단일시장 형성을 목표로 하는 단일유럽의정서(Single European Act: SEA), 공동외교안보정책(CFSP)과 단일화폐 도입에 합의한 유럽연합조약 체결에 큰 기여를 했다.
     1953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태어난 그는 정치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조교로 출발해 리스본 소재 루시아다대학교 국제정치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1980년에 포르투갈 사회민주당에 가입, 1999년 총재가 된 후 3번이나 연임되었다. 2002년 4월부터 총리로 재직하다가 2004년 7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으로 추대되면서 브뤼셀로 왔다.
     경제위기의 끝은 아직 보이지 않는 가운데 바로수 위원장은 연임을 할 것 같다. 과연 그가 집권 2기에는 제대로 일을 해 유럽통합에 기여할 수 있을까?
     안 병 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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