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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이 세계를 접수한다고?
G20에서 유럽의 역할 두드러져

     최근 필자는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 칼럼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바로 칼럼 제목이 ‘유럽의 세계접수 음모’(Europe's plot to take over the world)였기 때문이다. 칼럼은 G20에서 유럽이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내용이다. 좀 도전적으로 칼럼 제목을 붙였는데 이 제목을 보면서 문득 영국과 유럽통합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졌다.
     영국은 노동당과 보수당이라는 주요 2대 정당 간에 그리고 같은 정당 내에서도 유럽통합에 대한 합의가 별로 없다. 따라서 유럽통합을 두고 정당 간, 정당 내 논란을 벌이는 예가 흔한 데 필자가 영국에서 연구하는 동안 유럽통합을 비판하는 인사들이 바로 자주 사용하는 단어나 어조가 위의 제목과 유사했다. 유럽이 영국을 접수하려한다는 그런 의미를 내포하곤 했다.
     1988년 9월 벨기에 브뤼헤(Bruges)소재 유럽대학(College of Europe)에서 당시 마가렛 대처 영국 총리는 ‘영국과 유럽(Britain and Europe)’이라는 제목의 기조 연설을 했다. 이 연설에서 그는 유럽통합을 ‘주권국가 간의 협력’이라고 분명하게 규정짓고, 유럽의 초국가(European superstate)가 영국의 주권에 시시콜콜 간섭함을 배격한다고 천명했다. 초국가라는 용어는 유럽통합을 반대하는 영국의 일부 언론이 즐겨 사용하는 단어인데 독일어나 프랑스에서는 이런 용어를 잘 쓰지 않는다. 후에 대처의 브뤼헤 연설로 유명해진 이 연설은 유럽통합을 저지하려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전투구호 비슷한 역할을 수행해왔다. 같은 맥락에서 영국에서는 ‘음밀한 통합’(creeping integration)이라는 용어도 회자된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등의 초국가기구가 원래 권한도 없는데 유럽통합이라는 큰 대의명분을 가지고 새로운 정책을 제안하고 이를 대다수의 회원국들이 승인해 통합을 추진해 나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유럽연합이 G20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을까? 칼럼을 분석하면서 내용을 뜯어보자.

  참가국 수와 회의 형식, 의사결정방식에서 EU와 흡사...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 개혁 등에서는 반대하는 기득권 세력  
     우선 G20 회원국은 아시아권에는 우리나라와 호주, 일본,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사우디아라비아, 터키가 있다. 남미대륙에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멕시코가 있으며 아프리카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있다. 유럽대륙에는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그리고 유럽연합(EU)이 있다. 이밖에 미국과 캐나다, 러시아가 있다.
     유럽대륙에는 4개국가가 정식 회원국이고 유럽연합 유럽이사회(회원국 수반들의 모임) 순회의장국 의장(2009년 후반기에는 스웨덴)과 집행위원회 위원장이 참석한다. 이밖에 스페인과 네덜란드도 G20 회원국은 아니지만 어떻게 해서라도 글로벌 경제협력을 다루는 이  모임에 가입하고 싶어 문을 두드리며 지난달 24~25일 열린 피츠버그 정상회의에 옵서버로 참석했다. 이렇게 보면 EU 회원국과 기구 가운데 8명 정도가 G20에 참가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회의 형식도 유럽이사회와 매우 흡사하다. 보통 유럽이사회는 이틀에 걸쳐 이루어지는데 첫날에는 저녁모임을 갖고 참가국 수반들이 비공식적으로 얼굴을 익히며 부담없는 대화를 나눈다. 이어 다음날 본격적으로 협상을 하는데 보통 장관과 고위공무원들이 사전에 어느 정도 조정된 성명서에 담을 내용을 담으며 논란이 있을 때 회원국 정상들이 최종 조정하고 합의한다. 회원국 수반들이 합의(consensus)를 하지 표결을 하지는 않는다. 바로 이런 비공식적인 의사결정이 특징인데 유럽이사회는 최소한 1970년대 중반부터 이처럼 의사결정을 해왔다. 물론 유럽이사회는 아주 드물게 회원국 수반들이 표결을 실시하기도 하는데 유럽통합 역사에서 표결이 실시된 예는 1985년 6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유럽이사회였다. 당시 순회의장국 이탈리아는 로마조약(1958년 유럽경제공동체를 설립한 조약)을 개정할 정부간회의(Intergovernmental Conference: IGC) 소집 여부에 대해 표결을 실시했다. 영국의 마가렛 대처 총리와 덴마크, 그리스는 표결실시를 거부했으나 독일과 프랑스 등 나머지 수반들은 조약개정을 논의할 IGC가 필요하다며 표결해 이를 관철시켰다.
     G20 참여하는 유럽인사들도 많다. 국가수반 차원의 8명 이외에 국제통화기금(IMF)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총재는 프랑스인이다. 세계무역기구(WTO) 파스칼 라미(Pascal Lamy) 사무총장도 프랑스인이다. 그는 1985~1994년까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자크 들로르 비서실장을 역임했으며 이어 2000년 초까지 EU 집행위원을 역임했다. WTO는 G20에 국제기구로 참여하고 있다.
     피츠버그 정상회의에서 수반들은 국제무역 불균형 문제(global imbalances)를 시정하기 위해 IMF에 각 회원국의 경제정책을 모니터하고 회원국끼리 검토하고 압력을 행사하기로 합의했다(peer review and pressure). 미국의 막대한 무역적자는 중국의 막대한 무역흑자를 유발한다. 따라서 중국과 독일 같은 막대한 무역흑자국들이 좀 더 내수중심으로 경제정책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 핵심내용이다. EU는 1999년부터 고용정책 등에서 회원국끼리 가장 좋은 예(best practice)를 벤치마킹하며 정책을 공개해 미흡한 국가에 대해 창피를 주고(naming and shaming), 회원국끼리리 정책을 검토하고 압력을 준다. 최소한 10여년동안 이런 방식으로 특정정책 분야의 경우 의사결정을 해오고 있다.
     EU가 G20에서 이를을 날리고 의사결정방식을 전파한다고 해도 EU 회원국들은 글로벌 경제 거버넌스 개혁 체제에서 기득권 세력이다. 즉 IMF 이사회와 의사결정권(쿼터)에서 EU 27개국은 약 1/3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과거 경제질서를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중국이나 인도가 경제력에 걸맞는 변화된 글로벌 경제질서를 요구하며 IMF 의결권 개혁을 요청하는데 EU 회원국의 양보가 필수이다. 그러나 영국이나 프랑스는 기존 의결권 축소를 반대하고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앞으로 G20 의사결정방식과 정책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어쨌든 이제까지는 유럽이사회 의사결정방식과 유사하고 유럽인들이 많이 참여하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언사로는 글로벌 경제거버넌스 개혁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개혁에 미진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안 병 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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