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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05 13:15
‘독일과 폴란드 축’이 형성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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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과 폴란드 축’이 형성되나? 독일의 사과와 지속적인 화해관계...유럽통합에서도 적극 협력 움직임
1970년 12월 당시 서독의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총리는 폴란드의 바르샤바를 방문했다. 전 해 총리에 취임한 그는 2차대전 후 그어진 국경선을 인정하고 소련 및 동구권과의 관계개선을 골자로 하는 동방정책(Ostpolitik)을 시행하고 있었다. 폴란드와 바르샤바 조약에 서명한 그는 히틀러의 나치 점령 시 수십 만 명의 유태인들이 죽임을 당한 바르샤바의 유태인 거주구역이었던 게토를 방문해 헌화했다. 12월 7일의 추운 겨울, 게토앞에서 무릎을 꿇은 서독의 총리... 이 한 장의 사진은 전 세계에 전해졌다. 원래 공식 행사에는 브란트 총리가 헌화만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브란트 총리는 나치 때문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나라를 방문해 진심어린 사죄의 모습을 보였다. 사생아이자 청년 시절부터 열렬한 사회민주당원이었던 그는 히틀러의 집권 후 박해를 받았기에 노르웨이로 망명을 한 후 스웨덴 등 북유럽에서 나치에 저항하는 운동을 벌였다. 나치의 박해를 받은 독일인이 나치 때문에 형언할 수 없는 피해를 당한 폴란드 국민에게 사죄를 했으니 더 큰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역사적으로 가해자와 피해자, 그러나 바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독일과 폴란드의 관계가 그동안 양국의 꾸준한 노력으로 밀접해져 왔다. 통일 당시 선린 우호조약 체결 1990년 10월 3일 독일이 통일 되었을 때 독일 정부는 소련 및 폴란드와 별도로 조약을 체결했다. 양국과 경제 및 문화 등 각 분야에서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독일 통일을 위한 ‘2+4 협상’(동서독 및 미국, 소련, 프랑스, 영국) 당시 헬무트 콜 서독 총리는 국경선 인정을 국내정치적 이유로 주저했다. 연정 파트너였던 기독교사회당(CSU)에 동구권에 거주하다 한 푼의 보상도 받지 못하고 쫓겨난 실향민들(약 1200만 명 정도로 추산됨)이 많았다. 콜 총리는 이들을 인식하여 브란트 총리가 인정했던 오데르-나이세 국경선을 부정할 생각은 없었으나 선뜻 나서지는 못했다. 이에 불안을 느꼈던 당시 폴란드 정부는 미국 등과 접촉하여 서독 정부로 하여금 국경선을 인정하도록 했고 우호 조약도 얻어냈다. 통일 후 독일이 막대한 통일 비용 때문에 경제가 그리 좋지 않았지만 폴란드와 체코, 헝가리 등 동구권 국가들과 관계를 개선하고 경제적 지원도 꾸준하게 해주었다. 2004년 5월 폴란드를 비롯한 중동부 유럽 10개 국가가 유럽연합(EU) 회원국이 되면서 독일과 폴란드 관계는 약간의 부침이 있었으나 진전되었다. 급성장하는 폴란드, ‘독-불 축’에 이어 독-폴란드 축' 되나 폴란드의 국토면적은 31만2천 평방km로 남북한의 3배 정도인데 인구는 3천 8백만 명이 조금 넘는다. 또 교육받은 우수한 인재들이 많다. 단일화폐 유로존이 경제위기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폴란드는 그동안 급속한 경제성장을 기록했다. 폴란드는 27개 EU 회원국 가운데 경기침체를 겪지 않는 유일한 나라로 올해 약 2.7%의 경제성장이 예상된다. 2010년부터 2년 간 3.5%가 넘는 경제성장을 보였다. 폴란드의 경제는 급성장하지만 유로존 경제위기의 여파로 외국인 투자도 다소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폴란드는 아직 단일화폐 유로를 채택하지 않았지만 이번 유로존 위기 해결이 매우 중요하다고 여긴다. 지난해 11월 말 폴란드의 라도슬라프 시코르스키(Radoslaw Sikorski) 외무장관은 베를린에서 연설을 통해 “우리는 독일의 행동보다 행동하지 않음을 더 두려워한다. 독일이 유로존 위기 해결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달라”로 요청했다. 유로존 위기로 그리스나 아일랜드 등에서 독일에 대한 반감이 커진 상황에서 시코르스키 장관의 이런 발언은 큰 주목을 받았다. 역사적인 특수한 관계로 그의 발언이 독일의 정책 결정자들에게 좀 더 호소력을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폴란드는 현재의 유로존 위기 해결책으로 통합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유로존 위기로 프랑스는 점차 힘이 빠지고 있다. 유럽을 이끌겠다는 의지와 수사는 강하지만 경제가 시원찮다. 반면에 폴란드는 유럽통합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려하며 경제가 이를 뒷받침해줄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이 바로 독일과 폴란드 간에 또 하나의 축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이유다. 일부에서는 새로운 동방정책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지난 60여 년 간 유럽통합을 이끌어 온 독불 축에 이어 독-폴란드 축이 형성되면 이는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다. 유럽통합이 민주주의와 인권 등의 핵심 가치를 굳건하게 하는 과정이자 역사적 가해자와 피해자의 화해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2009년부터 베를린과 바르샤바 간에 하루 3편의 왕복 특급 열차가 운행된다(요금은 편도를 기준으로 1등칸이 약 13만 원, 2등칸은 9만 원 정도). 6시간이 걸리는데 이 기차는 폴란드와의 국경인 오더 강가의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포즈난, 코닌 등의 도시를 거친다. 6시간 동안 펼쳐지는 폴란드의 대평원은 최소한 수백 만 명이 목숨을 잃은 곳이다. 2차 대전의 막바지이던 1945년 봄, 소련군이 파죽지세로 몰고 들어올 때 이 곳을 지나갔다. 70이 넘은 독일인이나 폴란드 사람이라면 이 기차를 타고가면서 어렴풋이나마 당시의 기억을 떠올릴 것이다. 피로 물들었던 곳을 이제는 마음 편하게 폴란드나 유럽의 각 나라 사람들과 함께 자유롭게 여행을 한다. 베를린과 바르샤바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한 달 전쯤 일본 도쿄에서 종군 위안부 사진전을 개최하던 우리나라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일본 우익의 공격을 받아 전시회를 취소했다. 일본의 역사인식 시계는 비록 일부에서 그렇다고 하지만 거꾸로 가는 듯하다. 유로존 위기에도 불구하고 유럽통합은 그동안 유럽에서 불가능했다고 여겨졌던 많은 일들을 이룩해냈다. 역사를 무기로 쓰는 편협함에서 벗어나 역사를 통해 역사와 함께 화해를 해야 한다. 물론 가해자의 진솔한 사과가 우선이다. 안병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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