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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정부, 재정적자 기록하면 헌법위반!
유럽연합(EU)에도 큰 영향 미칠 듯

      ‘빚을 지면 도덕적으로 나쁜가?’ 단순한 질문인 듯 하지만 각 국의 문화에 따라 다른 답이 나올 수 있다. 예를 들면 실용주의(pragmatism)가 통하는 나라의 사람들은 사업을 하는데 빚을 얻어 수익을 내 갚으면 그만이다. 기업이나 개인을 위한 대출은 채무자나 채권자 모두에게 이득이다. 은행 등 금융기관은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 이윤을 내며 채무자들은 필요한 곳에 돈을 써 이득을 얻는다. 반면에 신용카드 발급은 쉽지만 국민 정서상 신용카드 사용이 다른 나라와 비교, 그리 활발하지 않고 현금사용을 더 선호하는 국가의 국민들, 혹은 역사적으로 몇 만 퍼센트의 초인플레이션(hyperinflation) 때문에 고통을 당한 국민들은 빚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
     독일은 바로 빚을 지면 도덕적으로 나쁘다는 정서가 퍼져있는 나라이다. 1차대전 종전 후 바이마르 공화국 때 독일정부는 프랑스가 요구한 천문학적 규모의 전쟁배상금을 갚기 위해 엄청난 돈을 발행했고 이 때문에 1920년대 당시 몇 만 퍼센트의 초인플레이션을 기록했다. 이런 경제위기가 나치부상, 나아가 2차대전 발발의 한 원인이 되었다. 이를 기억한 독일 정치가들은 2차대전 후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Bundesbank)를 정부나 그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는 독립적인 기관으로 만들었고 이 은행의 주임무는 물가안정이었다. 1990년 독일 통일때까지 분데스방크는 어쨌든 물가안정을 지키는 선도적 역할을 수행했고  독립적인 중앙은행이 물가안정을 지킨다는 모델을 확립하기도 했다.
     그런데 독일 정부는 최근 일정 범위 이상의 재정적자를 기록하면 위헌이라는 헌법 조항을 새로 만들었다. 이 조항은 독일에 적용되지만 단일화폐 유로화를 채택한 16개 국가 모두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내용이다. 이를 분석하면서 비판한다.

           연방정부, 2016년부터 GDP 0.35% 초과한 재정적자 운영시 위헌
     지난해 가을부터 본격적으로 불어 닥친 경제위기 때문에 독일 정부는 엄청난 규모의 혈세를 쏟아 부어 부실화된 금융기관을 구제하고 실업자 급증에 따른 재정지출 확대 등으로 재정적자가 폭증했다. 원래 단일화폐 유로화를 채택한 EU 회원국의 재정적자는 GDP의 3%를 초과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현재 독일의 재정적자는 이미 3%를 넘었고 앞으로 추가로 경기부양책이 필요할 수 있기 때문에 재정적자폭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지난 1월말 대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기민당/기사당은 500억 유로(우리돈으로 약 90조원)규모의 추가 경기부양책을 통과시키면서 재정적자를 줄일 수 있는 조항을 헌법에 삽입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기존 헌법조항이 불충분하다며 헌법을 수정해 새로운 조항을 넣어야 한다는 것. 연방주의 국가인 독일에서 연방정부는 주정부의 인프라 투자 등 여러 가지 정책을 재정적으로 도와주기 때문에 16개 주와 연방정부가 이 조항의 신설을 두고 협상을 벌였다. 결국 5월말 연방하원(Bundestag)에서, 지난 12일 연방상원(Bundesrat)에서 재정적자 금지를 규정하는 헌법개정안이 통과되었다. 헌법개정에는 하원과 상원 각각에서 2/3의원의 찬성이 필요하다. 매우 신속하게 신설 헌법조항이 비준되었음은 독일 정치인들이 정파를 초월, 재정적자 축소의 시급함을 깨달았다고 볼 수 있다.
     신설된 헌법조항에 따르면 2016년부터 연방정부의 재정적자는 경제위기가 아닌 평상시에 GDP의 0.35%를 초과할 수 없다. 현재 독일 GDP의 규모에서 이 액수는 90억유로이다. 즉 지난 1월 500억 규모의 추가 경기부양책의 18%에 불과한 금액이다. 16개 주 정부는 2020년부터 재정적자를 운영할 수 없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만 엄격한 심사와 토론을 거쳐 연방정부나 주 정부는 이 규정을 초과하는 재정적자를 편성할 수 있다. 그러나 연방제 국가로 주정부나 연방정부나 모두 동등한 목소리를 지니고 있어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경우가 많은데 과연 경제위기라고 해서 이런 조항을 초과하는 재정적자 편성이 가능할지는 매우 불확실하다.

                 독일의 일방적인 경제정책...다른 유로존 국가들 무시
     유로화 도입에 합의한 1993년의 유럽연합조약(TEU)은 유로를 채택한 회원국 유로존(eurozone) 국가는 경제정책을  공동관심사로 다루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서로 상이한 경제정책을 실시할 경우 다른 유로존 국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독일의 이런 재정적자 금지 규정은 유로존에 다음의 2가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첫째, 독일정부가 계속해서 재정적자를 줄이면 투자여력이 줄어들어 저성장을 지속할 수 밖에 없다. 즉 2016년부터 재정적자를 0.35%로 인하하기 위해 연방정부는 늦어도 2011년부터 재정적자 감축을 시작해야 한다. 경제위기가 그때까지 해결되지 않으면 추가 경기부양책이 필요할 수 있고 이럴 경우 허용된 재정적자 유지는 어려워 질 수 밖에 없다. 이럴 경우 연방정부는 헌법을 위반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유로존에도 많은 파급효과가 있다. 27개 EU회원국 경제의 1/4을 차지하고 있는 독일이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해야 하는데 헌법조항을 준수하느라 돈 주머니를 죄게 되면 독일뿐만 아니라 다른 이웃나라의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독일정부가 시민들의 씀씀이가 줄어들면 수입도 줄고 이렇게 되면 베네룩스 3개국 등 독일시장에 의존하는 다른 회원국들이 타격을 입게 된다.
     두 번째 경우는 경제위기가 제대로 극복되어 연방정부가 2011년부터 재정적자를 줄일 수 있을 때이다. 이 시나리오는 독일이 유로존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
     FT 칼럼니스트 볼프강 뮌차우는 최근 FT 칼럼에서 독일의 재정적자 관련 신헌법조항과 이것이 유럽연합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면서 독일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경제위기 극복이 쉽지 않은 첫번째 시나리오가 유력한데 독일이 다른 유로존 국가와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독일을 비판했다.
     글로벌 경제위기의 와중에 독일 같이 대규모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국가가 내수를 진작해야 다른 나라의 경기침체 극복에 도움을 줄 수 있는데 이번에 합의한 재정적자 축소는 정반대의 조치이다. 연방정부가 그나마 보유하고 있던 재정적자 편성의 재량범위를 매우 협소하게 만들었다. 어디를 가나 독일인들은 규칙, 규칙이 우선이다. 어떤 때에는 규칙을 숭배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번 재정적자 헌법조항이 과연 올바른 규칙인지, 그리고 누구를 위한 규칙인지 묻고 싶다.
             안 병 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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