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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13 01:52
나무의 향기가 건네는 노래 – 다섯
조회 수 2417 추천 수 1 댓글 0
9.11테러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2001년 9월 18일, 보스톤의 로간공항에 도착해서 생전 처음으로 미국 땅을 밟았다. 태어나서 처음 밟아보는 외국 땅, 외견상 평범해 보이는 어학연수를 가장하고선 실제 마음 속에서는 새로운 문화를, 그것도 전세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미국의 문화를 접해본다는 것에 대한 벅찬 설레임과 감동으로 첫날 밤 잠을 설쳤다. 가져갈 짐도 많았고 한국에서 사용하던 기타가 그리 좋은 기타가 아니었기에 미국에 가서 악기점도 구경할 겸 기타를 새로 구입할 예정으로 한국에서 기타를 가져가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너무나 생소한 환경인지라 악기점을 찾아 기타를 구입하는게 쉽지 않았고, 도착한지 일주일 가량 지났을 무렵 한국사람들과 시내에 나갔다가 지하철 역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흑인 아저씨를 발견했다. 며칠 동안 못만졌던 기타인지라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다짜고짜 그 아저씨에게 말을 걸었다. 뭐하는 분이신지, 기타는 어디서 살 수 있는지 등, 처음에는 조금 귀찮아 하는 눈치더니 내가 기타를 한 번 쳐봐도 되겠냐고 해서 연주를 조금 보여줬더니 금방 My friend! 하면서 악수를 청했다. 역시, 음악은 천마디 말보다도 더 많은 걸 통하게 해 준다. 그 길로 그 흑인 아저씨가 가르쳐준 악기점에 가서 기타를 구입했다. 필자가 있었던 학교는 커다란 옛 수녀원 건물을 개조해서 한 건물 안에 강의실, 도서관, 기숙사 등 모든 시설이 갖춰져 있었고 당연히 수업 후에는 기숙사를 이용하는 수많은 외국 학생들과 어울려 생활하는 곳이었다. 학교 지하에 조그만 휴게실이 있었는데 학생들이 잘 오지 않는 그런 곳이어서 밤마다 그곳에서 혼자 기타를 치면서 노래도 부르던 중 가끔 외국학생들이 그곳을 지나다가 내 기타소리를 듣고 가만히 앉고 노래를 청해 듣곤 했다. 보통은 내성적이라 감정표현을 잘 하지 않기로 유명한 동양인의 음악을 잘 접해본 적이 없는 외국 친구들은 그런 나를 조금 특이하게 봤던 것 같다. 그렇게 조용히(?) 음악을 하던 중 하루는 학교에서 학생들이 참여해 다양한 장기를 선보이는 Talent Show라는 행사를 개최했고 나는 이 행사에서 첫 순서로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겠다고 자원했다. 그런 행사에 동양인이, 그것도 음악으로 참여하는 일이 흔치 않았던 탓인지 행사 담당 직원이 조금 의아해 했지만 그 행사에서 나는 가장 큰 박수를 받으며 오프닝을 장식했고, 그 뒤로 학교의 각종 행사가 있을 때마다 담당 직원이 먼저 나를 찾아와 참여를 부탁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 행사 이후로 학교에서 외국 학생들이 먼저 아는 채를 하는 등 기타를 통해 어려워만 보였던 새로운 환경에의 적응이 더없이 쉬웠었던 것 같다. 알다시피 보스톤에는 저 유명한 버클리 음대가 있었고(사실 그 당시부터도 조금 그 권위가 퇴색하고 있던 차였지만) 버클리에서 기타를 전공하는 학생과 친구가 되어 서로 연주를 들려주기도 하고, 미국 교회인 줄 알고 실수로 찾아들어간 브라질 교회의 예배시간에 내가 만든 ‘나의 주님’을 영어로 설명하고 부르기도 하는 등 정말 날마다 기타와 함께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경험들을 마주하면서 참 많은 것들을 배운 것 같다. 내 한국어 가사를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인들 앞에서 노래의 부르는 가운데 머리로 이해하는 내용이 아닌 마음으로 느끼는 감성을 통한 음악의 힘을 발견할 수 있었으며, 그들에게 보편적으로 인식되는 음악이 아닐지라도 내 고유의 음악에 충실할 때 오히려 더 폭넓은 공감과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학교측의 부탁으로 나보다 먼저 공부를 마친 친구들의 졸업식에서 노래를 부른 일이었다. 전세계 33개국 에서 모인 다양한 학생들이 모인 자리, 그 졸업식에서 부를 노래가 마땅치 않아 나는 직접 노래를 만들기로 했다. 최초로 만든 영어 노래인 셈이다. 비록 사고 방식이 다르고 개인주의처럼 보이는 서양 애들이지만 졸업식이라는 자리, 만남과 헤어짐에 대한 아련함은 모두가 같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가사를 써내려 갔고 그렇게 만들어진 곡이 ‘언젠가 지난날에 안녕이라고 말해야 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슬퍼하지 않을 것은 우리는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이기에’라는 내용이 담긴 ‘See you again’ 이었다. 드디어 졸업식 날, 이 노래를 만든 사연을 짧게 소개하고 기타를 치면서 조용히 노래를 불렀다. 지금도 기억난다, 졸업식이 끝난 뒤 그날 졸업생 중 한 명이었던, 평소 상당히 도도해 보였던 독일 여학생인 Lisa가 눈물을 글썽이면서 내게 찾아와 노래 너무나 고마웠다는 인사를 건냈던… (다음주에 마지막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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