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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오후, 유럽 최대 한인 거주지역인 뉴몰든에 위치한 한 요양원(Nursing home)에서 열린 작은 음악회를 취재하게 되었다. 그리스 출신의 젊은 클래식 기타리스트와 우리나라 시각 장애인 피아니스트의 연주로 이루어진 작은 음악회, 그리고 관객들의 대부분은 요양원에서 머물고 있는 노인들이었다. 어느 정도 스스로 거동이 가능하고 정상적인 지각 능력을 지닌 노인들이 어울려 지내는 양로원이 아니라, 대부분 거동도 불편하고 지각 능력도 많이 상실한, 말 그대로 생의 마지막 시절을 보내고 있는 노인들이 보호를 받고 있는 요양원은 평소 방문할 기회가 흔치 않은 곳이었다.

대부분이 휠체어에 앉아 있는 노인 관객들 앞에서 젊은 기타리스트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전체적인 공연 취재 사진을 찍어야 했던 탓에 거의 맨 뒤에서 카메라를 통해 기타리스트를 촬영하고, 공연의 전반적인 풍경을 촬영하던 중, 문득 공연을 감상하고 있는 노인들의 모습들이 들어왔다. 그리고, 평소 접하기 힘들었을 생생한 음악 공연을 감상하는 그들의 표정이 궁금해져서 카메라의 줌(Zoom) 기능을 사용해 그들의 얼굴을 가까이 보게 되었고, 나도 모르게 그들의 표정을 카메라에 담게 되었다.

그토록 아름다운 기타 선율이 들려오는 그 순간에 목격한 그들의 표정, 그들의 모습에 갑자기 모든 것이 정지된 듯 깊은 상념에 빠져들었다. 그들의 표정에서는 내가 듣고 있는 그 아름다운 클래식 기타의 선율이 들리지 않았고, 내가 지니고 있는 삶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다가올 날들에 대한 벅찬 꿈이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그것은 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말 그대로 자연의 섭리였을 것이며, 나 역시 자연의 순리를 따라 더 이상 아름다움에 대한 느낌을 가질 수 없을 때가 되면 그들과 같은 표정으로, 그들과 같은 모습으로 생의 마지막 단계를 지낼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표정을 바라보며 갑자기 ‘삶과 죽음’에 대한 수만 가지 생각과 느낌들이 떠올랐다.

아마도 대부분 이 세상을 떠날 즈음에 다다랐을 그들의 표정, 그들의 모습... 까닭모를 슬픔과 답답함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큰 소리로 하염없는 눈물을 쏟으며 울고 싶었다.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서로를 미워하고, 원망하며, 갈등하고, 실망하며, 강요하고, 상처받으며, 후회하고, 절망하며 살아가는 것인가? 이 넓은 세상의 수백만 분의 일도 경험하지 못하고, 이토록 짧은 생의 수백만 분의 일에 해당하는 시간도 나 아닌 다른 누구를, 다른 무엇을 진정 사랑하는데 바치지 못하면서. 도대체 왜 우리는 눈 앞의 것들만 바라보며, 내가 알고, 내가 믿고, 내가 의지하고, 내가 원하는 것들만이 전부라 여기며 그렇게 전쟁하듯 살아가는 것인가? 그토록 아름다운 음악의 선율조차 인식하지 못할, 이 세상을 떠날 즈음이 되면 과연 우리에게 남겨질 것이 무엇이기에...

세상을 떠날 즈음의 모습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할 것이다. 이 세상에 처음 오는 순간 우리 모두는 그저 벌거벗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모두가 공평하게 오는 그것처럼, 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의 모습들도 결국 공평한 그것이 될 것이다. 제 아무리 영국의 대표적인 유명인인 베컴과 같이 속칭 잘 나갔던 인생도, 런던 뒷골목에서 쓰레기를 치우는 이름 모를 청소부도 결국 이 세상을 떠날 즈음의 모습은 별반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처음 왔을 때의 공평함과는 달리 떠날 때에는 무조건 공평하지는 않을 것이다. 비록 손에 쥘 수 있는 유형의 그 무엇은 없을 지언정, 그 마음 깊은 곳에는 자신의 지난 삶을 통한 행복과 불행이, 만족과 후회가, 그리고 세상을 떠나는 것에 대한 담대함과 불안이 끊임없이 교차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분명 어느 누군가는 불행보다는 행복을, 후회보다는 만족을, 그리고 불안보다는 담대함으로 이 세상과의 작별을 준비할 것이며, 또 다른 누군가는 반대의 경우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름아닌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 또 그 시간을 얼마나 진실되게 보내 왔는지, 얼마나 참된 행복을 찾기위해 치열하게 노력해 왔는지에 달려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세상 사람들이 흔히 얘기하는 성공과 실패의 이분법으로 정의될 수 없는 것이며, 물질이나 명예 따위는 감히 끼어들 수도 없는 차원의 것이다.

지금은 이렇게 미치도록 사랑하는 음악의 아름다움조차 느끼지 못할 때가 되면 아무리 아파했던 일들도, 아무리 미워했던 일들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고통들도 아주 희미하고 작은 점들이 되어 기억 저편의 흔적으로만 남아 있겠지. 그럼에도 아무것도 돌이킬 수 없는, 세상을 떠날 그 즈음에는 적어도 후회만은 하고 싶지 않거늘...

새삼 내가 호흡하고 있는, 비록 그것이 슬픔이나 그 어떤 고통의 감정일지라도 무언가를 느끼고, 생각하는 매 순간, 그 1분 1초의 시간들이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그리고,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았다, 마치 지금 이 순간 내가 세상을 떠날 즈음이라 여기면서. 그 어떤 생각이나 그 어떤 감정이 떠오르기 앞서 한 줄기 까닭모를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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