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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언제나 우리를 힘들게 하는 그 무엇이 나이대별로 존재하는 것 같다. ‘이것만 갖게 되면, 이것만 해결되면, 이것만 끝나면’ 정말 아무런 걱정 없이, 하루 24시간, 1년 365일 두 다리 뻗고 마냥 편안하고, 즐거울 것만 같은데, 아쉽게도 절대 그런 상태를 경험할 수 없게 삶은 언제나 우리를 힘들게 하는, 우리를 고민하게 하는 그 무엇을 꾸준히 던져 준다는 것이다.

지난 시간들을 가만히 되돌아보니 어린 시절에는 외로움이라는 녀석이 삶을 참 힘들게 했다. 외아들로 자라면서 마음을 나눌 그 누군가가 없다는 것, 홀로 잠들어야 하는 밤마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곤 했던 어두움, 이런 것들이 당시에는 너무나 견디기 힘든 것들이었다. 갖고 싶은 것들을 갖지 못하는 것도 참 힘들었던 것 같다, 특히 장난감들.

초중고 학창 시절에는 누구나 그러하듯 학업에 대한 부담과 스트레스가 가장 힘들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시험들, 대학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기 위한 어둡고도 긴 터널 속에서 정말이지 대학만 합격하고 나면 세상만사가 마냥 즐거울 것만 같았다. 대학만 가면 나머지 삶은 그냥 식은 죽 먹기로 흘러가면 되는 줄 알았다.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위와 같은 부푼 꿈을 안고 대학 입시를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을 이들에게는 너무나 미안한 얘기지만, 대학만 가면 인생 해결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필자의 삶에서 가장 큰 착각이었다. 하긴, 요즘처럼 취업도 어렵고 전반적인 삶이 치열해지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예전처럼 ‘대학만 가면 다 니 세상이다’라는 헛소리로 자녀들을 구슬리는 학부모는 별로 없을 것 같기도 하다.

대학에 들어가서 한동안은 별다른 생각 없이 마냥 놀기만 했던 것 같은데, 그나마 별로 힘든 점이 없다면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군에 입대하면서 또 다시 삶이 힘들어졌다. 상병으로 진급할 무렵까지 무려(?) 1년을 기다려준 첫사랑 여자 친구가 고무신을 바꿔 신는 바람에 며칠 동안 밥도 못 먹고, 잠도 못자며 힘들었던 시간도 있었지만, 배신감이 슬픔보다 컸기에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잘 견뎌낼 수 있었다. 사실, 군대는 어쨌든 시간이 지나면 끝나는, 즉 끝이 정해져 있는 힘겨움이라는 점에서 실제 삶에서 찾아오는 힘겨움에 비하면 훨씬 수월하다는 생각도 드는 요즘이다. 물론, 두 번 할 짓은 결코 아니올시다.

제대 후에는 슬슬 적어도 내가 쓸 돈은 내가 벌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과연 이 거칠고 냉정한 세상에서 대체 무엇을 해서 남의 돈을 벌어먹고 산단 말인가? 앞으로 남은 생애를 무엇을 하면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 것인가? 이런 고민들이 시작되면서 삶은 더없이 힘들어만 보였다.

감사하게도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활발한 경제활동을 벌일 수 있었고, 그 와중에 외국행을 언제나 가슴 속에 품고 있었기에 그 준비를 해나갔던 시간들, 알 수 없는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머나먼 타국 땅에서 유학생으로 새로운 출발을 했던 시간들, 더 이상 학생 신분으로 버티면 안될 것 같은데, 타국에서 안전한 체류 자격을 얻고 직장인이 되는 것은 정말 밤하늘 별따기 처럼 어려워만 보였던 시간들... 통장 잔고가 몇 파운드 단위로 떨어져 가는 가운데 ‘돈’이라는 것도 삶을 참 힘들게 했던 것 같다. ‘정규 직장만 얻고, 돈만 벌면 나머지 인생은 쉽고 즐거울 것만 같은데’라는 착각에 한참 빠진 것도 이 즈음이다.

그렇게 소원하던 직장도 얻고, 먹고 살 만큼의 돈도 벌게 된 요즘, 그렇다면 삶은 마냥 편하고 즐거운가?

슬프게도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스스로 앞가림 정도는 하게 된 서른 즈음의 내 삶 속에서 발견한 가장 힘든 것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아프게 하는 것이다. 워낙 개성이 강하고, 추구하는 삶에 대한 꿈과 열정이 남다르다보니 본의 아니게 삶에서 가장 소중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염려와 고통을, 실망과 상처를 주게 되는 안타까운 상황을 겪게 된다. 그리고 그로 인해 내가 느끼는 고통은 이제껏 살아오면서 겪었던 그 어떤 힘겨움보다도 더 크다. 차라리 모든 시련과 고통을 나만 겪는다면 이보다 훨씬 편할 것라는 생각이 든다. 나 혼자서 고통스럽고, 나 혼자서 극복하면 되는 그런 시련들이었으면 좋겠다. 나로 인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힘들어 한다는 것, 살면서 이보다 고통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겉으로만 보면 모두가 순탄해 보이고, 모두가 즐거워 보이는 듯한 우리네 삶, 그러나 그 안에는 저마다의 가슴에 굳은살이 박히게 만드는 시련들이 언제나 존재하기 마련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아마도 그 시련들은 그 때마다 주제만 바뀔 뿐, 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우리들과 함께 할 것이다.

10대 시절, 20대 시절에는 훗날 내가 이런 문제로 힘겨움을 겪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앞으로 40대, 50대가 되면 또 어떤 시련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그 나이가 되면 가장 힘든 것은 무엇일지... 아마도 그때 쯤이면 가슴의 굳은살도 조금 더 두꺼워져서 지금보다는 덜 아프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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