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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TV 프로그램 ‘인간극장’에서 방영된 가수 김장훈 편을 이제서야 뒤늦게 시청하게 되었다. 그 동안 언론을 통해 수차례 기부천사로 알려져 온 김장훈, 그럼에도 그의 숨겨진 이야기들과 진솔한 삶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던 터에 본 프로그램을 너무나 재미있게, 또 감명깊게 시청할 수 있었으며, 필자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사실, 필자는 김장훈을 알고 있는 대중들보다 더 일찍 김장훈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로드쇼’라는 영화 잡지를 통해서였다. 김장훈이 가수로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8년 발표한 노래 ‘나와 같다면’이 히트하면서 부터이고, 이전에도 그는 여러 장의 음반을 발표하고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해 왔지만 말 그대로 무명가수였던 것 같다. 그런 김장훈이 1994년 김홍준 감독이 연출하고 최재성, 최명길이 출연한 숨겨진 걸작, ‘장미빛 인생’이라는 영화에서 주제곡 ‘아침을 맞으러’를 불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필자는 그런 김장훈을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1994년에 로드쇼의 기사를 통해 처음 만났고, 훗날 대학교 2학년 때 화려하게 대중가수로 탄생한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며, 그의 음반을 구입하고 그의 노래들을 노래방 애창곡으로 부르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의 음악보다 그의 화려한 입담이 방송을 종횡무진하고, 언더 뮤지션의 이미지를 완전히 탈피하고 온갖 볼거리로 무장한 공연 흥행사(?)로 부각되면서 조금은 실망했던 게 사실이다. 그 뒤로는 그의 음반을 구입하지 않았고, 그의 노래를 듣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그에 대한 새로운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다. 다름아닌 그가 사력을 다해 벌이고 어마어마한 규모의 기부 소식이었고, 그가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뮤지션은 음악으로만 승부해야해’라던 필자의 선입견은 그가 기부 액수를 정하고, 그 액수를 맞추기 위해 종횡무진 활동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로 은근히 그에게 미안해지기까지 했다.

45억 가량을 기부했다는 김장훈, 사실 천원짜리 한 장도 남을 위해 쓸라치면 갈등이 되는 게 정상인데, 그렇게 큰 금액, 아니 더 정확히는 그렇게 큰 사랑을 타인에게 베풀 수 있는 그의 존재가 너무도 소중해 보였다. 그리고, 그럼에도 본인은 공황증, 또 지독한 외로움(적어도 필자에겐 그렇게 보였다), 언젠가, 누구에겐가, 또 무엇에겐가 받았을 상처와 아픔들을 끌어안고 있는 모습에 기부천사, 화려한 대중가수 뒤에 감춰진 또 다른 인간 김장훈을 볼 수 있었다.

언젠가 필자도 누군가에게 ‘너 무슨 일 하고 싶니?’라는 질문을 받으면 대뜸 ‘아름다운 일’이라고 답했던 시절이 있었다. 정말 그러고 싶었다. 아름다운 생각, 아름다운 느낌을 글이든, 음악이든, 또는 연극, 영화든(필자는 열렬한 연극, 영화 지망생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그 무엇을 통해 전달하고, 그것을 통해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고 싶었다. 자선 활동, 기부도 많이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돈이야 내가 굶어 죽지 않을 만큼만 있으면 되고, 나머지는 다른 어려운 사람들에게 써야지’ 라는 생각을 분명 했었는데, 정말 그렇게 될 줄 알았는데…

돈을 벌어야 하고, 돈을 벌게 되면서, 내가 갖고 싶은 것,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이 늘어나면서 어느새 나는 나만을 위한 존재로 바뀌어져 있었다. 단돈 천원이라도 남을 위해 내놓는 것이 어찌나 힘들던지, 단 1분이라도 남을 위해 할애하는 게 어찌나 힘들던지… 내가 나눠주는 그 무엇을 통해 타인이 행복해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가 있고, 나 스스로에게도 더 큰 행복으로 되돌아 온다는 것을, 나눠주면 없어지는 게 아니라 더 많이 생긴다는 것을 몇 번의 경험을 통해 깨달았건만, 그것이 자발적으로, 또 꾸준히 실천되기가 참 어려운 것 같다. 쉬울 것 같으면서도 그 작은 희생, 아니 희생까지도 아닌, 작은 나눔이 어찌 그토록 어렵단 말인가? 그저 한 없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지난 두 해 동안 크리스마스 때 런던 Earl’s Court 지역 노숙자들을 초청하는 자리에서 음악 연주를 했는데, 앞으로는 병원이나 교도소 등, 음악으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더욱 많이 찾아야 할 것 같다. 그나마 댓가 없이 누군가에게 음악이라도 나누어 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리고, 내가 배고프지 않게 밥 먹을 만큼 버는 돈을 배고픈 그 누군가와 조금이라도 나눠야 할 것 같다, 더 늦기 전에. 살아가는 동안 나만을 위한 존재이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나저나 그렇게 큰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 나눠주는 김장훈이, 어려웠던 시절 얘기에도 눈물을 보이지 않던 그가 정작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 때문에 ‘가족을 더 챙겨야 하는데’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역시 가족을 챙기지 못한 내 자신이 한 없이 못나보였다. 남들을 도울 자격조차 없는 것 같은 내 모습이…


‘서른 즈음에’를 사랑해 주시는 독자 여러분을 작은 음악회에 초대합니다. 이번 음악회는 재영한인들의 터전인 뉴몰든에 위치한 요양원에서 열리는 자선 공연이며, 영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가야금 연주자 정지은 씨의 가야금과 제가 연주하는 기타의 듀엣 연주, 그리고 트럼펫 연주자 Hamisi의 트럼펫 연주로 진행됩니다. 공연일시는 5월 24일, 토요일 오후 2시로, 장소는 뉴몰든 파운틴 펍 인근에 위치한 Hobkirk House(109 Blagdon Road, New Malden, Surrey, KT3 4BD)이며, 무료로 입장하실 수 있습니다. 공연장소가 안락한 좌석을 갖춘 정식 공연장이 아니며, 거동이 불편한 분들을 위한 자선 음악회라는 점을 미리 숙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동안 한인들의 지역사회 참여가 거의 전무했던 바, 이러한 음악회를 통해 우리가 속한 지역사회에 동참하게 되는 발판이 되길 바라며, 여러분들의 많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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