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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런던 시내 주영 한국 문화원에서 ‘예술인의 밤’ 행사가 있었다. 재영 한인 예술인회가 주관하는 이번 행사는 영국에서 활동 중인 한인 예술인들이 다양한 전시, 공연을 외국인 손님들에게 선보이는 행사로, 올해 초 개원한 주영 한국 문화원이라는 훌륭한 장소가 마련되어 처음으로 개최된 행사였다. 어쩌다 보니 필자 역시 예술인회 회원으로 가입되어 자료 번역과 같은 일을 돕기도 하고, 행사 관련 홍보, 인터뷰 기사를 작성하기도 하고, 또 기타리스트로 직접 공연에도 참가하게 되었다.

퇴근 후 서둘러서 곧바로 행사 장소로 가는 길에, 따로 연주할 때 입을 옷을 준비하지 않아 그냥 입고 있던 양복에서 넥타이를 풀고 셔츠 단추를 몇 개 끌렀는데, 문득 그 순간 내가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는 것 같은 묘한 기분, 그리고 까닭모를 쾌감이 느껴졌다. 마치, 영화 ‘슈퍼맨’에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주인공 클라크가 슈퍼맨으로 변신할 때, 안경을 벗고 셔츠를 열면 그 안에 슈퍼맨 복장이 보여지는 것처럼. 평범한 샐러리맨 전성민이 사람들 앞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신문에 글을 쓰고, 문화예술 전문가인 전성민으로 변신하는 듯 했다.

행사장에 도착해서 이미 안면이 있는 많은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행사 시간이 되어 꿈결처럼 연주를 했다. 연주를 마치고는 행사장을 찾은 이런 저런 손님들과 쉴 새 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한상희 감독, 임상수 감독과의 인터뷰를 주선해 주셨던 문화원 관계자분께서 조만간 있을 우리 영화, 우리 감독들을 영국에서 선보이는 자리를 앞두고 많은 좋은 자리를 주선해 주신단다. 바비칸에서 있을 한국 영화제를 앞두고 직접 인터뷰도 해 주신단다. 벌써 1년 넘도록 친분을 맺고 있는, 이날 사회를 맡은 Philip과 또 지난 해 한국 음식 축제에서 만났던 Jenifer와 대화를 나누다가 새로운 사람을 소개 받았다. 영화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영국 여성, 그 분이 명함을 준비하지 못해 이름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처음 만난 그 분과 영화에 대해, 한국의 문화 산업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렸을 적에는 너도 나도 영화를 좋아하는 통에 나 역시 그냥 그 수많은 영화광 중에 한 명인 듯, 내 삶에서 실제로 영화와 관련된 어떤 일에, 비록 그것이 아주 조그만 일일 지언정 실제 관여할 줄은 정말 몰랐다. 그런데, 그렇게 사랑하는 영화를 악착같이 사랑하고 붙들고 있다 보니, 결국 이렇게 영화와 관련해 영화 감독들을 인터뷰 하고, 영화 칼럼을 연재하고, 외국인 영화 관계자들과 영화에 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날도 온다. 언제가 될 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내가 직접 영화를 만드는 일에 참여하는 날도 오리라.

비즈니스 때문에(더 솔직하자면 결국 돈 버느라) 잔머리를 굴리고, 다른 사람과 기 싸움(?)을 하고, 다른 사람을 미워하기도 하고 또 미움을 받기도 하고, 실적(역시 더 솔직하자면 결국 돈)으로 사람이 평가되는 그런 세계에 속한 내 모습, 양복을 차려입고 대형 빌딩 사무실에 앉아 있지만, 정작 영혼은 숨통이 조여 헐떡거리는 내 모습을 사랑하기가 너무나 힘들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요즈음이다.

비즈니스에 속한 전성민 만을 아는 이들은 내 안에 어떤 꿈이 있는지, 내가 무엇을 창작할 수 있고, 어떤 감성을 자아낼 수 있는지 모른다, 관심도 없다. 그저 나는 그들에게 돈을 벌기 위해 존재하는 수 많은 기계들 가운데 하나의 부품일 뿐이다. 내가 속할 곳이 아님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삶의 일정 부분이나마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내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있음에 너무도 감사할 따름이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순간이 전혀 없는 사람들도 태반이니까.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의 모습은 그냥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들로 나를 드러낼 수 있는, 창작과 감성으로 나를 평가받을 수 있는 그런 모습이다. 내가 사랑하는 내 모습으로 변신할 때마다 마치 꽉막히고 어두운 터널에 같여 있다가 그 곳을 튀어나와 신선한 공기와 눈부신 햇살이 가득한 넓은 벌판을 내달리는 듯한 자유, 열정, 흥분이 온 몸과 영혼을 휘감는다. 이 시간들, 이 자리들이 없었더라면 과연 이 고단한 삶을 어떻게 살았을까 싶다.

어떤 어른들은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이 세상에 좋아하는 일 하고 사는 사람이 어디있어? 적성에 맞는 직업 갖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냐?” 그들은 아마도 더 이상 자신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 하는지 조차 떠올리지 못할 만큼 고단한 삶에 파묻혀, 그 고단함이 세상의 전부라고 착각하고, 영혼의 호흡이 멈춰진 그런 사람들일 게다.

결코 포기하고 싶지 않다, 지금은 비록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을 확보하기 위해 원하지 않는 일도 하고 있지만, 언젠가, 그것이 비록 인생의 끝자락일 지라도, 진정 원하는 일,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일들에 내 삶의 전부를 바치고, 그래서 이 세상을 떠날 즈음에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내 모습으로 생의 마지막 발걸음을 옮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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