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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으로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 모든 직장인들이 그렇겠지만 금요일 오후 시간은 참 나른하다. 이 즈음이면 이미 일할 수 있는 에너지는 고갈이 되고, 퇴근 후 주말이 시작된다는 그 설레임과 함께, 월요일부터 그 긴(?) 한 주를 견뎌왔건만 금요일 오후 일과가 끝나야 하는 그 몇 시간은 유난히도 더디게 느껴진다.

물론, 이것은 주5일제가 철저히 지켜지는 직장을 다니는 축복 받은 이들에게만 해당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필자 역시 그 축복 받은 이들 중 한 명이다.

하루, 한 주, 한 해는 참 닮아있다. 하루의 후반 무렵, 퇴근할 저녁 즈음에 되면 더 이상 일을 하기가 싫고 힘도 많이 빠진다. 한 주의 끝자락인 금요일 역시 그렇게 일을 하기가 싫고 몸도, 마음도 지쳐있다. 그리고, 이제 곧 저물어가는 한 해의 후반기인 요즈음 역시 지난 일 년 동안 정신없이 달려왔던 탓에 쌓인 육체적, 정신적 피로가 쉴 새 없이 밀려든다. 일도 하기 싫고, 마음도 싱숭생숭, 한 해 동안 쌓인 고민거리들, 마음아픈 일들도 가득하다.

그렇다고 실제로 일을 대충 한다거나 할 수는 없는 노릇, 한 시라도 마음을 놓았다간 바로 나자빠지는 살벌한 요즘 세상이니 어쨌든 계속 달려야 한다. 점심 시간이 지나고 한참 나른하던 차 외부 미팅을 다녀온 직원들로부터 어떤 사람이 지하철(런던의 중심 지역을 관통하는 센트럴 라인)에 뛰어들어서 지하철이 폐쇄되어 걸어 왔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들은 회사 대표는 왜 하필 그런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했냐고 하고, 고참 직원은 매년 이맘 때면 그런 일들이 몇 건씩 발생한다고 맞장구를 친다. 그리고, 이내 다시 자신들이 하던 일에 빠져들고 아무도 더 이상 그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나는 사무실에서 일을 하기가 싫어서 주리를 틀고 있을 때, 이런 저런 일로 마음이 아프다고, 왜 내가 이런 시련을 겪어야 하는지 한탄하고 있을 때, 그 누군가는 세상과 작별을 했다. 그것도 굉음을 내고 달려드는 지하철 밑으로 뛰어들어 온 몸이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마주하면서.

일이 더더욱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가 누구였는지, 왜 그와 같은 선택을 했는지는 모른다. 사실, 요즘 세상에 스스로의 선택으로 세상과 작별하는 것은 더 이상 뉴스도 아니다. 그냥 “또 한 명이 갔구만(?)” 하면 그만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 그것 만으로도 너무나 큰 기적인데, 그렇게 스스로 세상과 작별하는 일이 이제는 아무 것도 아닌 듯 여겨진다니…

새삼 내가 살아있다는 것,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아있다는 것에 미치도록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짧은 순간 누군가는 세상과 작별하는데, 과연 내가 집착할 일이, 내가 불평할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우리가 다투고,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할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수 많은 집착과 갈등과 오해들, 지금 이 순간 나를 못살게 구는 고민과 과제들, 그것에만 몰두해 있다보니 그것이 전부인 줄만 알았는데, 너무나 불평할 이유들이었고 너무나 좌절할 이유들이었고 너무나 슬퍼할 이유들이었는데, 그럼에도 세상과 작별하고 싶은 만큼은 아니지 않았는가?

도대체 그 사람은 어떤 사연이 있었길래 수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렇게 고통스러운 선택을 했어야만 했을까? 자신이 그렇게 세상과 작별하고 나면 그를 사랑했던 수 많은 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는 것을 알았을텐데, 그럼에도 그렇게 떠나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러한 선택을 하지 말아야 하는 단 한 가지의 이유도 그에게는 진정 없었던 것일까?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염없이 떠오른다. 세상과 작별하는 것은 결국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작별이다. 다른 것들과의 작별은 그닥 중요한 게 아니다. 작별해도 그만이다. 그런데,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작별은 너무나 무섭고 너무나 슬프다. 불과 그 짧은 찰나에도 누군가는 세상과 작별하고 있는 이 때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충분히 사랑하며 살고있지 못하다는 생각에 가슴이 타들어간다.

만약 세상과 작별하는 순간이 온다면 살아있는 동안 더 사랑하지 못했던 것에, 더 용서하지 못했던 것에 후회하고, 후회를 넘어선 아쉬움의 뜨거운 눈물을 쏟을 것인데,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세상과 작별하는 순간에 대해 거의 생각하지 않고, 대비하지 않으며 살아간다.

내가 숨쉬고 있는 지금 이 1분 1초, 너무나 살고 싶어도 살 수 없어서 세상과 작별한 그 누군가가 그토록 고대했던 영원과도 같은 시간이다. 내가 숨쉬고 있는 지금 이 1분 1초, 어쩌면 세상과 작별하기 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그리고 그들을 아낌없이 사랑하고 이해하며 용서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이것을 잊고 산다.

조금 전 세상과 작별한 그 사람, 이것을 일깨워줘서 고맙다. 누군지도 모르는 그 사람, 그 곳에서나마 편히 쉴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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