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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다가오니 괜히 기분도 싱숭생숭하고 무엇보다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 오랜 기억 저편에 잠들어 있던 얼굴들이, 이름들이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는 요즈음이다.

한국을 떠나와 타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떠나온 초창기에는 한국의 지인들과 연락도 자주 주고받고 하다가 어느새 세월이 흐르면 아쉽게도 상당수의 경우 연락을 거의 주고받지 못하며 지내게 된다. 그것이 기한이 정해져 있는 유학이라면 그나마 덜할텐데, 필자처럼 아예 타국에 짱박고(?) 사는 경우는 그야말로 잊혀진 얼굴이 되기 쉽다. 그게 또 주변 사람들과 활발한 관계를 유지할 시간적, 물질적, 정신적 여유가 되는 대학생 시절이나 좀 젊을(?) 때에는 괜찮은데, 필자처럼 지인들이 한창 사회생활 하랴, 결혼해서 가정 꾸려가랴, 정신없는 시기를 보내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타국에 나와있는 많은 이들이 화상채팅이나 아니면 하다못해 그 흔한 싸이월드나 블로그라도 하면서 계속 고국에 있는 사람들과 관계를 가져야 하는데 필자는 그마저도 없다. 블로그는 유학생 시절 잠시 조선일보 객원기자를 하던 시절에 만들어 놨는데, 이후 유로저널과 한인신문에서 기자일을 하면서 일의 분량이 많아지고 직장생활도 시작되면서 삶이 극도로 바빠지자 전혀 신경을 쓰지 못했다. 요즘은 조금 덜하지만 한창 글 쓰는 일을 많이 할 때는 한 주에 수천 자의 글을 쓰다보니 그 외의 시간에 따로 블로그나 개인 홈페이지 같은 것을 만들고 거기에 또 글을 쓸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당연히 지인들에게 이메일 보내기도 쉽지 않았다.

여하간 그렇게 지내면서도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 그리워서 가끔 아는 사람들의 싸이월드나 아니면 이런 저런 커뮤니티 웹사이트를 통해 지인들의 현재의 삶을 온라인상에서 수소문(?) 하곤 한다. 그러다 보면 참 재미있는 경우도 있어서 혼자 낄낄거리며 웃기도 한다. 한국에서 다니던 교회에서 같은 또래 동기들 중 사이가 매우 안좋았던, 서로를 무진장 싫어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두 남녀가 있었는데, 어느날 이들이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어찌나 웃기던지. 상당히 오래 연애하면서 100% 결혼할 것이라던 친구 커플이 하루아침에 깨지고 곧바로 다른 사람과 짝이 된 소식에 씁쓸하기도 하고.

어쩌다가 접하는 소식이라서 그런지 그들의 삶이 너무나 극적으로 변해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대부분의 여자후배들은 모두 결혼을 했다. 그것도 모자라서 애엄마가 된 후배들, 또는 예전엔 사진 속에서 애를 하나 안고 있었는데 어느새 둘을 안고 있는 사진 족의 후배들, 고등학교 시절 떡볶이를 사먹였던 그들이 어느새 어른이 되어 있었다.

필자가 10년 가까이 몸담았던 교회의 밴드, 필자가 대학생이었을 때 중학생, 고등학생이었던 녀석들이 이제 필자의 빈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물론, 지금까지도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선배의 모습도 보였다. 그 선배의 어린 자녀들이 말도 잘 못하는 어린 아이였을 때 봤더랬는데, 이제는 커다란 어린이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다들 어떻게들 그렇게 재주가 있는지 이 힘든 시기에도 직장을 구하고 어였하게 밥벌이를 하고 있었다. 저마다 알차게 자신의 인생을 꾸려가는 지인들의 모습들을 보고 있노라면 세월의 흐름과 우리네 삶의 그 오묘한 운동력에 새삼 경이로움마저 느껴진다.

해바라기 노래 중에서 ‘해지는 강변’이라는 노래를 참 좋아한다. 이 노래는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오랜 친구들을 떠올리는 마음을 담고 있는데, 노랫말 중에 ‘물살이 지우는 그 사람들의 얼굴은 어느덧 세월의 골이 새겨 있어, 아무도 모르는 우리의 시간들’이라는 구절이 있다.

비록 아직 세월의 골이 느껴질 만큼의 연령대는 아니지만 그렇게 오랜만에 찾아보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나름대로 세월의 흔적들이 묻어나며 예전과 다른 그 무엇이 느껴진다. 정말 아무도 모르는 우리의 시간들, 그 시간들 속에서 어느새 저마다의 삶이 또 다른 모습으로 흘러가고 있음에 까닭모를 눈물이 흐르려 한다.

또 한 편으로는 그들의 삶이 그렇게 다른 모습으로 흘러간 만큼 누군가가 아주 오랜만에 필자의 삶을 들여다 본다면 그들 역시 필자의 현재 모습에 같은 감정을 느끼겠지. 어쩌면 대부분 한국의 아주 평균적인 삶의 경로를 밟아가는 그들에 비하면 상당히 독특한 길을 밟고 있는 필자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세월의 흐름이 더욱 강렬할지도 모르겠다.

영국으로 떠나오면서 지인들에게 인생을 달리기 시합이 아닌, 여행하듯 살고 싶다고 했었는데, 과연 지인들이 바라보는 필자의 삶은 진정 여행처럼 느껴질까? 이제 고작 4년 조금 넘은 세월을 떠나 왔는데도 이렇게 뭉클한데, 앞으로 10년, 20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는 과연 우리들의 모습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우리들의 삶은 또 어느 곳을 향하고 있을까?

한 해를 마감하는 요즈음, 여러분도 가던 발걸음의 속도를 조금 늦추고 지나온 세월이 남긴 흔적들을 찾아 떠나는 마음의 여행을 떠나 보시라. 세월의 노를 저어서 기억 저편에 잠들어 있는 추억의 섬들을 다시 찾아가 보고, 그리운 얼굴들과 이름들을 떠올려 보며, 또 여러분 자신의 모습을 찾아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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