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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한 물 갔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여러 사례에 적용되겠지만, 특히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처럼 일반인에게 가장 유명할 수 있는 인물이 그 유명세나 실적에서 최고 정점을 찍고서 하향세를 타기 시작할 때 이 표현을 쓰곤 한다. 한 물 간 가수, 한 물 간 배우, 한 물 간 투수, 한 물 간 슈터 등등.

그런데 필자는 ‘한 물 갔다’는 표현이 참 싫다. 이 표현은 우리네 삶의 진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데 따른 잘못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표현은 어떤 분야든 자신의 영역에서 진정 정상에 올라본 적이 없는, 그야말로 만년 루저 인생인 이들이나 하는 무식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이 표현은 사람에게는, 그 사람의 인생에 대해서는 사용해서는 안 된다.

얼마 전 삼촌(듀엣 해바라기의 리더 이주호)이 한국의 어느 교회에서 공연을 가진 동영상을 인터넷으로 보게 되었다. 마지막 곡인 ‘사랑으로’를 부르기 전 삼촌은 이런 말을 했다, “해바라기를 아주 많이 좋아해 주시는 분들도 계시고, 해바라기를 조금만 좋아해 주시는 분들도 계시고, 이제는 세월이 많이 흘러서 해바라기를 잘 모르는 분들도 계십니다.” 이 말을 듣는데 정말 가슴이 찡해져왔다.

어쩌면 한 때 최정상을 밟아본 대중 가수로서 이렇게 얘기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 그래도 한 때는 가요대상도 수상하고, ‘사랑으로’가 국민가요 수준의 사랑을 받으면서 대중 가수로는 유례없이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이나 예술의 전당 오페라 하우스에서도 단독 콘서트를 가졌으며, 한국 가요사에서 상당한 성과와 위치를 누렸던 삼촌이었다.

그랬던 삼촌이 어느덧 머리에 하얀 눈이 내린 50줄에 접어들고, 이제는 더 이상 오르막길이나 더 높은 정상은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면서 이제 그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앞서 했던 멘트에 이어 삼촌은 “그럼에도 여러분의 가슴 속에는 ‘사랑으로’의 메시지는 영원히 남았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사랑으로’를 불렀다. “1절은 여러분들이 불러 주세요.”라고 말한 뒤 관객들이 한 목소리가 되어 합창하는 ‘사랑으로’에 통기타 반주를 선사하는 삼촌의 모습에서는 인생의 황혼기로 접어든 음유시인이 자신이 걸어온 삶과 음악을 애정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노장의 진한 향기와 연륜이 묻어났다.

요즘 하루가 멀다하고 나타났다 사라지는 얄팍하고 자극적인 노래들 속에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를 노래한 ‘사랑으로’가 1989년도에 발표되고서 1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것을 보면 삼촌은 분명 뮤지션으로서 최정상을 밟았다. 그리고 이제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 역시 음악으로 승화시켜 아쉬움과 그리움을 달래고 있었다.

삼촌을 바라보면서 어쩌면 우리네 삶은 오르막길보다 내리막길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오르막길보다 더 아름다운 내리막길을 걸어야 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것은 마치 시작보다 끝이 중요하고, 만남보다 이별이 중요하다는 ‘유종의 미’와 같은 선상에 놓여있다.

사람들은 늘 정상을 동경하고 정상에 선 자들에 열광한다. 그러나, 그 정상에 선 자가 이제 그만 그 정상에서 내려와야 할 때가 되면 사람들은 언제 그가 정상에 있었냐는 듯 그를 잊고 새롭게 정상에 선 자에게 열광한다.

정상에서 유명세와 부귀영화를 누리던 이들은 대중들의 이 같은 간사함에 충격과 서글픔을 느낄 것이다. 여기서 내리막길의 진리를 인정하지 못하는 유명인들은 대중들의 무관심이나 ‘한 물 갔다’는 반응을 참지 못하고 우울증이나 심지어 자살과 같은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한다.

삼촌이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역시 가수의 길을 걷고 있는 아들, 그러니까 필자에게는 사촌 동생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아들에게 어떤 조언을 했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삼촌은 다음과 같은 조언을 했다고 대답했다, “니가 가수의 길에 들어서면 언젠가는 정상이라는 자리에 올라설 텐데, 정상에 올라서고 나면 그 다음에는 내려와야 한다. 그렇게 내려와야 할 때 그것을 인정하고 인내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것은 비단 연예인들이나 유명인들만의 경우가 아닌,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얘기다. 오르막길만 걷는 인생은 없으며, 또 정상에 올라섰다 한들, 그 정상에서만 마냥 머무르는 인생도 없다. 높낮이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우리네 삶을 들여다보면 누구든 그 안에는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내리막길이 존재한다.

그런데, 꼭 보면 정상을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이들이 이제 정상을 밟고 내려오는 이들에게 ‘한 물 갔다’는 표현을 한다. 함부로 ‘한 물 갔다’는 표현을 남발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그러는 당신의 인생에서는 그 한 물 조차 있었느냐고, 정작 당신은 당신의 분야에서 정상에 서본 적이나 있었느냐고 말이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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