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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날마다 다이어트를 다짐할 만큼 먹는 것을 좋아해서 살이 통통하게 오른 필자건만, 어린 시절에는 영양실조가 걱정될 만큼 편식도 심했고 뭘 잘 먹지를 않는, 그래서 먹는 것으로 부모님 속까지 썩였던 필자였다.

지금은 맛있는 것을 너무나 좋아해서 그게 문제인데, 그 시절에는 왜 그렇게 가리는 음식도 많고, 뭘 먹는 것 자체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었는지, 정말 의문이다.

그랬던 필자의 식성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아버지를 따라 헬스클럽에 다니다가 운동을 하면서 비로소 조금씩 변해갔고, 튼튼한 중고등학교 시절을 거쳐 대학생이 되고 술맛(?)을 알아가면서 놀라운 맛의 세계가 펼쳐졌다.

이제는 스스로 밥벌이를 해서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은 얼마든지 내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자유를 누리고 있지만, 어린 시절 무엇을 먹는가는 전적으로 부모님께 달려 있었다. 특히, 가끔 바깥에서 외식을 하면서 부모님과 함께 다니던 그 시절의 맛집들이 아련히 떠오른다.

아마도 가장 많이 먹었던 메뉴는 대표적인 서민 메뉴였던 돼지갈비였다. 그 중에서도 홍은동에 있었던 동창갈비는 정말 많이 갔던 것 같다. 요즘 깨끗하고 널찍한 대형 고깃집들에 비하면 동창갈비는 상당히 허름하고 지저분한 곳이었던 것 같은데, 그럼에도 2층에 있었던 동창갈비로 올라가는 계단을 오를 때면 퍼져 나오는 달콤한 냄새는 너무나 행복했다.

일산 신도시로 이사하고 난 뒤에도 계속 동창갈비를 다녔는데 가게가 점점 인기를 얻더니 어느 날 확장을 하면서 새단장을 했는데 그만 숯불이 아닌 가스렌지에 구워주는 시스템으로 전환해 버렸고, 동창갈비만의 맛도, 멋도 사라지면서 자연스레 발걸음도 뜸해져갔다.

그 다음으로 기억나는 게 서소문 근처의 콩국수와 전기구이 통닭,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부모님은 꼭 그 곳에서 콩국수를 먹고 나서 근처에 있는 유명한 전기구이 통닭집에 갔다. 그런데, 당시 필자는 편식이 심했던 지라 그 맛있는 콩국수를 너무나 싫어했고, 어떻게든 몸에 좋은 콩국수를 먹이려던 부모님과 실랑이를 해야 했다. 지금은 그 콩국수를 없어서 못 먹건만. 그 시절 통닭은 필자가 가장 좋아하던 메뉴로, 특히 그 전기구이 통닭의 맛은 정말 황홀했던 것 같다.

아버지는 통닭을 참 좋아하셨던 것 같다. 가끔 기분 좋게 술을 한 잔 걸치시고 늦은 밤에 매콤한 양념이 되어 있는 숯불 바비큐 통닭을 사들고 들어오시곤 했다.

남영동에 있는 부대찌게집 리빠똥도 기억난다. 리빠똥, 참 재미있는 이름이다. 아마 그래서 지금도 그 집이 기억나는 것 같다. 당시 남영동에는 ‘호소자’ 시리즈를 상영하던 금성극장이 있었고, 거기서 ‘호소자’를 관람한 뒤에 리빠똥에 가서 부대찌게랑 또 그 곳의 주메뉴인 스테이크를 먹었던 것 같다. 그 시절 부대찌게는 너무나 맛이 있었다.

리빠똥이 생각나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았더니 남영동에 부대찌게, 스테이크를 주 메뉴로 하는 음식점들이 몰려 있었는데 그 이유는 근처에 미군 부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의정부 부대찌게도 유명하지만 남영동도 부대찌게의 메카였다는 사실. 금성극장은 오랜 전 이미 폐관했는데 리빠똥은 아직 거기에 있는지 궁금하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부터 피자를 참 좋아했다. 이 시절에는 식빵 위에 햄과 양파, 피망을 놓고 케첩을 뿌린 뒤 그 위에 치즈를 녹인 이른바 빵집표 피자가 있었다. 필자가 워낙 피자를 좋아하다 보니 부모님이 필자를 명동의 피자인이라는 전문 피자집에 아주 가끔 데려가 주시곤 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당시 피자는 상당히 고가의 음식이었던 듯. 명동의 피자인은 당시로서는 요즘의 베니건스에 견줄 수 있을 만큼 고급 레스토랑이었으며, 헐리우드 영화 포스터들이 벽면을 장식할 만큼 당시에는 최신 미국 문화를 표방하는 곳이었다.

재미있던 게 피자를 시켜놓고 보니 사람들이 샐러드바에서 샐러드를 퍼다 먹는데 당시만 해도 이 샐러드바가 흔한 게 아니어서 우리 가족은 그냥 샐러드 한 접시 값만 내면 마냥 샐러드를 퍼다 먹을 수 있는 줄 착각했다. 당연히 대여섯 접시를 한 가득 퍼다 먹었는데, 원래는 딱 한 접시만 퍼다 먹을 수 있다는 것을 그 다음 번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 만약 그 전에 그렇게 샐러드를 뷔페처럼 마음껏 퍼다 먹은 게 걸렸더라면 망신도 망신이지만 피자보다 샐러드 가격이 몇 배나 나왔을 것이다.

이후 중학교 시절에는 동네마다 피자 배달점들이 급증하면서 더 이상 명동까지 나가지 않고 집에서 피자를 시켜 먹으면서 이후로는 피자인을 방문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대학생이 되고서 첫사랑이었던 여자친구와 명동을 찾았는데 피자인이 있던 자리는 피자헛으로 바뀌어 있었다.

결코 넉넉하지 못했던 그 시절, 외식은 정말 어쩌다가 할 수 있는 것이었고, 그래서 더욱 특별했던 것 같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이제는 필자가 번 돈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외식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린 시절 외식을 하면 혼자 술잔을 기울이셨던 아버지에게 든든한(?) 술친구가 되어 드린다. 비록 그 시절 맛집들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우리 세 식구가 없는 형편에도 배부르게, 행복하게 먹을 수 있었던 그 시절의 정겨움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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