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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여러분께 드리는 편지입니다. 지난 주 부활절 휴가 기간에 이틀 일정으로 런던의 스튜디오에서 첫 음반을 녹음했습니다.  

가야금과 제가 연주하는 기타 듀엣으로 음악 활동을 해오면서 음반을 만들어보라는 조언을 여러 번 들어왔습니다. 특히, 저희 공연을 접한 분들, 그 중에서도 외국인 관객들은 거의 모두가 공연을 마치고서 저희 CD를 찾으시더군요. 그런데, 음반을 낸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지요.

일단, 기획사나 음반사에 소속되지 않은 이상 모든 과정을 직접 처리해야 하고, 또 음반이 공짜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니 예산도 필요합니다. 공연에서는 다양한 레퍼토리를 연주할 수 있지만, 음반에 들어가는 곡은 쉽게 선정할 수가 없습니다. 거기에 직장 다니랴, 글 쓰랴, 이래 저래 바쁜 삶도 한 몫 했지요.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가 이제는 정말 시도해야겠다 싶은 찰나, 예전에 제가 인터뷰를 실어드렸던 녹음기사분이 저렴한 비용으로 작업을 도와주시기로 해서 이번에 드디어 첫 음반 작업이 성사되었습니다. 제작비는 후원을 받거나 투자를 받으라는 주위의 조언이 있었지만, 결론은 일체의 외부 도움 없이 자비량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녹음을 이번에 마쳤고, 후반 작업은 한국에서 진행됩니다. 모든 과정들을 마치고 정식으로 음원과 CD가 준비되려면 한 달 가량은 지나야 될 것 같습니다. 그 때가 되면 여러분께 제일 먼저 공개할테니 꼭 기다려 주세요.

첫 음반인데 두 개의 음반을 동시 작업했습니다. ‘Bridge’라는 제목의 음반은 듣는 이에게 평안을 주고, 동양 악기인 가야금과 서양 악기인 기타의 아름다운 하모니를 선보이려는 음반입니다. ‘Korean Breeze’라는 제목의 음반은 보다 한국적인 정취에 중점을 둔 음반이고요.

제가 작곡한 곡도 세 곡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며 만든 ‘Thinking of You’, 고향을 그리는 느낌에 한국적인 정서를 담은 ‘Home’, 그리고 독도를 테마로 만든 ‘Dokdo(독도)’입니다. 특별히 ‘Dokdo’는 음반 자켓에 ‘한국의 아름다운 섬’이라고 영문으로 설명을 넣었습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12시간이 넘도록 지하 녹음실에서 녹음을 가졌습니다. 녹음 당시에는 너무 정신이 없었던 듯 훌쩍 지나갔는데, 지금 떠올려보니 그 느낌들이 모락 모락 피어오릅니다. 녹음실의 어둑한 불빛, 지하 녹음실 특유의 냄새, 그 적막감 속에서 울려퍼지는 통기타 소리...

보통 한 곡을 녹음하는데만 최소한 하루에서 몇 달도 걸린다는데, 저희는 녹음기사분이 저희 녹음만 마치면 한국으로 귀국해야 해서, 또 스튜디오 대여료 문제도 있어서 이틀 동안 무려 17곡을 녹음하는 강행군이었습니다.

제한된 시간 내에 마쳐야 했던 탓에 사실 100% 만족스러운 연주를 하지는 못했습니다. 긴장도 제법 되고, 제 시간에 마쳐야 한다는 부담감이 겹치다 보니 평소 수월하게 연주하는 곡도 자꾸 실수가 나오더군요. 한 번 실수가 시작되면 그 부분이 계속 틀리고, 기타는 예민한 악기라서 손가락이 살짝만 틀려도 확 티가 납니다. 자꾸 틀리니까 신경이 예민해지고, 그러다 보니 감정을 충분히 살리기가 어려워지고, 여하튼 정말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습니다.

대부분이 얘기하듯 ‘좀 더 잘 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강하게 남습니다. 하지만, 그 아쉬움이 있어야 또 다음 음반이 탄생할 수 있겠지요.

사실, 이렇게 직접 예산을 투자하고 모든 과정을 직접 신경써서 음반을 만들다보니 준비 과정에서도 상당히 예민해지고 스트레스도 받았습니다. 이래서 연주자는 연주만 해야하나 봅니다. 비즈니스적인 면들도 같이 신경을 써야 하니 어느 순간에는 어떻게 하면 이 음반을 많이 팔 수 있을까 고민하는 제 모습이 보이더군요.

음악을 하는 목적은, 음반을 만들려던 목적은 그게 아니었는데, 그래서 마음을 비우고 왜 음악을 하는지, 이 음반을 통해 사람들에게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지를 잊지 않으려 했습니다.

이 음반을 듣는 단 한 사람의 단 한 순간이라도 행복하게 만든다면, 평안하게 만든다면, 또 한국을 전혀 모르는 외국인에게 Korea라는 단어 하나라도 각인시킬 수 있다면 그것 만으로도 이 음반은 충분히 세상에 태어날 가치가 있는 것이지요.

문득 어린 시절 워크맨에 조그만 마이크를 꼽고 기타를 퉁기며 노래를 녹음했던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어설픈 실력에도 그렇게 내 음악을 녹음해서 들어보는 게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변함없이 음악을 사랑하며 산 것 밖에 없는데 어느새 여기까지 와버렸습니다.

정식으로 완성된 첫 음반을 손에 쥐게 되면 어떤 기분일지, 벌써부터 괜히 눈물이 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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