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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6 20:28
스승의 날 떠오르는 얼굴들 (1)
조회 수 3114 추천 수 0 댓글 0
한국의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필자의 기억 저편에 간직되어 있는 인상 깊었던 필자의 초중고 선생님들에 대한 이야기를 몇 주간 시리즈로 꾸며보려 한다. 꼭 필자의 소중한 은사나 훌륭한 선생님에 관한 얘기라기 보다는, 그야말로 지금도 생생히 떠오르는, 그것이 긍정적인 것이었든 부정적인 것이었든, 어쨌든 인상적인 선생님들에 대한 이야기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이미 많은 독자분들이 파악하고 계시겠지만, 필자는 과거에 대한 기억력이 초능력(?) 수준으로 뛰어나다. 암기력이 좋다는 얘기는 아니다. 남들은 점수를 버는 과목인 암기과목에서 필자는 점수를 까먹었을 만큼 암기력은 안 좋은데, 사람에 대한 기억,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했는지, 그 때의 느낌들이 어땠는지에 대한 기억은 너무 생생하다. 아마도 형제없이 자라 유난히 외로움을 많이 탔던 어린 시절, 그 소소한 순간들이 남달리 인상 깊게 남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이번 시리즈는 그러한 필자의 기억력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작성되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어쩌면 초등학교 선생님들에 앞서 유치원 선생님에 대한 언급도 해야 할 것 같다. 성함이 송보X 였는데, 송보원인지 송보화인지 정확하게는 기억이 안 나지만, 안경을 끼고 약간 곱슬거리는 긴 머리의 젊고 예뻤던 유치원 선생님의 인상은 지금도 또렸하다. 그 선생님도 지금은 4, 50대의 중년 여성이 되어 있겠지... 필자가 졸업한 충암초등학교는 한 학년에 다섯 반씩 있었는데, 반 이름은 꽃 이름으로 매화, 모란, 난초, 장미, 국화였다. 필자는 매화, 국화반은 한 번도 못해봤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슬며시 웃음이 난다. “너 이번에 무슨 반 되었니?” “나 이번에 모란반이야.” 매년 학년이 바뀔 대마다 우리는 상대적으로 우리를 덜 때리고 덜 무서운 여자 선생님이 담임이 되길 간절히 바랬던 것 같다. 필자의 경우 1~4학년 까지는 여선생님, 5, 6학년은 남선생님이 담임이었는데, 생각해보니 5, 6학년에는 여선생님 자체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4학년 난초반이 되어서 만난 박혜련 선생님은 지금도 많이 생각난다. 학교 합창부 지도를 맡으셨을 만큼 피아노도 잘 치고, 어찌나 마음이 여리셨는지 우리들 앞에서 속상한 일로 두 번이나 눈물을 보이시기도 했다. 그리고, 하교시간에는 우리들을 한 줄로 데리고 건물 현관문까지 인솔해서 한 명 한 명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잘 가라고 인사까지 건네셨던 따뜻한 선생님이셨다. 박혜련 선생님은 당시 어린 딸이 한 명 있었는데 우리반을 맡으시던 중 둘 째가 생기셔서 가을 즈음엔가 출산 휴가를 내시고 득남하셨다. 그래서 그 동안은 상당히 괴팍했던 과학선생님(성함이 지금도 기억난다, 마진달, 우리는 마징가라고 불렀다)이 임시 담임이 되어 박혜련 선생님을 더욱 그립게 만들었다. 지금 떠올려 보니 우리는 학년이 바뀌고서 신학기 초에는 전년도 담임 선생님을 가끔 찾아가곤 했다. 필자도 5학년, 6학년이 되어서도 박혜련 선생님을 몇 번 찾아갔던 것 같다. 그 때면 선생님은 늘 인자한 미소를 띄시며 반갑게 맞아주시곤 했다. 박혜련 선생님의 4학년 난초반 시절 옆에 모란반의 담임이었던 김동호 선생님도 기억이 난다. 사실, 필자는 4학년 시절 이 선생님이 제일 무서웠다. 우리들의 키 만한 두껍고 긴 몽둥이에 파란 테잎을 감아서 가지고 다녔는데, 그 몽둥이에 한 대 맞으면 정말 사망할 것 같았다. 지금 떠올려 보면 당시 남선생님들이 젊어봤자 지금 필자 또래인 30대 초중반이었을텐데, 그렇게 쪼꼬만 애들을 무자비하게 패고 싶었을까? 당시에는 그 선생님들이 무섭고 위엄이 있어보였지만, 지금 떠올려 보면 그렇게 커가지고(?) 작은 애들이랑 실갱이를 벌이고 애들을 패기까지 했던 게 죄종하지만 조금 쪼잔해보인다는 생각도 든다. 여하튼, 이 김동호 선생님은 매를 잘 들고 성격도 불같은 공포의 선생님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김동호 선생님이 만든 창작동요로 우리 충암초등학교 합창부가 동요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는 사실. 당시 동요대회는 어린이날 MBC에서 방영되었고, 그 노래는 지금도 기억난다. 제목은 ‘이슬’, 가사도 기억난다, “호롱호롱호롱 산새소리에 잠깨어 들로 나가니 풀잎마다 송송히 맺힌 이슬 아름다워” 우리는 왜 산새소리가 “호롱호롱호롱”이냐며 의문을 제기했다, 당연히 무시무시한 김동호 선생님한테 직접은 아니고, 그저 우리들끼리. 필자는 어린 나이에도 무시무시한 몽둥이로 애들을 사정없이 패던 김동호 선생님이 이렇게 아름다운 동요를 직접 작사, 작곡했다는 사실에 적잖은 충격과 의문을 가졌던 것 같다. ‘이슬’이라는 노래를 지금까지도 생생히 기억하는 것은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박혜련 선생님께서 합창부를 지도하셔서 방과 후에 가끔 박혜련 선생님이 지도하시는 합창부의 연습을 지켜봤던 탓이다. 그리고, 더 솔직히는 필자 역시 그 합창부가 하고 싶었다. 하루는 방과 후 청소를 하는데 박혜련 선생님이 피아노를 치시다가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청소 중이던 우리들에게 한 명식 노래를 시켜보셨다. 그런데, 필자는 너무 떨려서, 또 당시에는 정말 노래를 못해서 잘 못불렀다. 합창부는 대부분 여자애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비록 당시에 음악을 잘 하지는 못했지만 천성적으로 음악을 좋아했기에 그들이 내는 화음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 합창부가 참 부러웠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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