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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시즌이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18일 오전으로, 전날 아르헨티나에 패한 뒤라 인터넷이 온통 그 얘기다.

어제 경기는 영국 시간으로 평일 대낮 일과시간에 벌어졌던 탓에 필자는 직장에서 근무하느라 경기를 보지 못했다. 외국인 동료들이 “지금 한국 경기 중이래.”라며 먼저 아는 체를 했다. 그래서 “당연히 한국이 이겼으면 좋겠지만, 사실 나는 별로 축구에 관심이 없어.”라고 무덤덤하게 대답했더니 신기하다는 눈치다.

외국인도 필자의 축구에 대한 무덤덤을 이상하게 여기니, 아마 한국인들은 이런 필자를 거의 별종으로 볼 듯. 민주주의 자유국가에서 축구에 별로 관심이 없을 자유, 심지어는 축구를 싫어할 자유도 있는 것이니 필자는 그 자유를 누리는 것 뿐이다.

필자는 어렸을 때부터 발로 하는 것을 잘 못했다. 당연히 축구나 발야구도 잘 못했고, 심지어 싸울 때도 발을 쓰지 않았다. 축구를 잘 못하니 당연히 보는 것도 그다지 즐기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필자는 축구를 싫어했다기 보다는 관심이 없었다는 게 더 정확했다. 그러다가 진짜로 축구가 싫어진 것은 군에 입대해서였다.

아마 평생 축구를 안 하는 이들도 군대에서는 일이등병 시절 어쩔 수 없이 축구를 몇 번이라도 하게 될 것이다. 군대에는 꼭 축구를 좋아하는 고참들이 있다. 이들은 여가시간만 나면 축구를 하기를 원한다. 그런데, 문제는 축구는 혼자서 할 수가 없다. 당연히 어느 정도의 인원이 필요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원이 강제동원(?)되어야 한다.

필자가 속한 부대에도 축구광 고참들이 있었다. 이들 역시 주말이나 여가시간이 발생하면 축구를 해야 하니 인원을 집합시켜 놓으라고 명령했다. 정말 축구를 좋아하는 이들이야 괜찮겠지만, 축구를 별로 안 좋아하는 이들로서는, 특히 일이등병 ‘졸병’들에게는 황금같은 휴식 시간을 강제로 빼았기는 셈이었다.  

고참들이야 신나게 축구하고 목욕하고 푹 쉬면 되지만, 졸병들은 축구 중에도 졸병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했고, 끝나고 나면 간혹 목욕할 틈도 없이 졸병으로서의 임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이 원하는 만큼 충분히 인원이 동원되지 않으면 분위기를 살벌하게 만드는 고참들도 있었고, 축구에 과하게 감정몰입을 하는 고참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경기가 풀리지 않거나 패배하게 되면 같은 편으로 뛴 후임병을 갈구는 등 사람을 참 피곤하게 했다.

이기면 이겼다고 좋아서 음료수도 사주고 입이 귀에 걸리지만, 졌다가는 없던 트집도 잡아서 후임병을 괴롭히고, 마치 자신이 축구 감독이나 된 듯 후임병들의 축구 실력이나 작전 따위를 지적하면서 열을 올리며 경기를 평가분석(?)하는데, 정말 짜증나는 인간들이었다.

그리고 제대 후 10년 가량의 세월이 흐른 지금, 필자는 군 시절 그렇게 짜증났던 고참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지난 토요일 그리스전에서 승리하고서는 모두가 선수들을 칭찬하고 한국 축구를 찬양하는데 열을 올리더니, 어제 아르헨티나전에서 패하고서는 모두가 선수들을 욕하고 한국 축구를 비판하는데 열을 올린다.

특히, 어제 경기에서는 우리 선수의 자책골이 있어서 그 선수를 욕하고 심지어 자살하라는 악플도 눈에 띈다. 아무리 한국팀을 향한 열정이라고 해도,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을까? 반대로 그 선수가 골을 넣어서 우리가 승리했더라면 어땠을까? 아마 있는 말, 없는 말 다 갖다 붙여서 칭찬하느라 열을 올렸겠지.

아마 가장 괴로운 사람을 그 선수일 것이다. 본인인들 그런 결과를 원했겠는가? 그런데, 살다보면 원하지 않는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가? 또 누군들 지는 것을 좋아할까? 그런데, 살다보면 원하지 않게 져야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가?

군 시절 그 짜증났던 고참들이 비록 제대 후 사회인이 되었을 지언정, 그 짜증나는 습성들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 터, 그들은 여전히 군대에서 했던 그 버릇처럼 후임병을 갈구는 대신 이제는 우리 선수들을 욕하고 악플을 달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필자 역시 지난 2002년 월드컵 때는 광화문에 나가서 응원도 했다. 목이 터져라 응원을 하다 한국이 승리했을 때는 정말 세상 모든 게 즐겁고 신이 난다는 것을, 그러나 한국이 패배했을 때는 겉잡을 수 없는 무력감과 짜증, 그리고 괜히 비판적인 감정에 휩싸인다는 것도 경험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필자는 축구에 무덤덤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당연히 한국팀을 응원하고 한국이 승리하면 기분이 좋지만, 그렇다고 더 이상 여기에 감정이 오락가락 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우리팀이 패배했다고, 우리선수가 실책을 범했다고 불쾌해지거나 열을 올리며 욕하는 것보다야 낫지 않을까? 스포츠는 어디까지나 스포츠로써 즐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을.  

승패에 상관없이 열심히 뛴 선수들을 응원할 줄 아는, 실책을 저지른 선수에게 위로와 격려를 건낼 줄 아는, 진정 스포츠를 즐길 줄 아는 여러분들 말고, 한국이 패배했다고 불쾌감에 사로잡혀 선수들을 욕하고 악플을 다는 당신에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 같은 사람들 때문에 나는 축구가 싫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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