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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7 06:23
외국에 살면서 가장 슬픈 날
조회 수 5309 추천 수 0 댓글 0
아마도 외국에 나와서 초창기에는 몸이 아프거나 할 때가 가장 슬픈 날일 것이다. 객지에서 몸이 아프면, 그것도 영국처럼 아파도 당장 병원에 가기가 어려운 나라에서 아프면 그야말로 정말 아파야 한다. 몸이 아프면 당장 만사가 귀찮으니 누군가가 옆에서 사소한 것들까지도 챙겨줘야 하는데, 객지에서 아무도 없이 아플 경우에는 유난히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날 것이다. 감사하게도 필자는 정말 아프지 않고 지난 6년 가량의 영국 생활을 해왔다. 먹는 것을 좋아해서 살이 좀 쪘을 뿐, 지금까지 딱히 아팠던 적은 6년 간 손에 꼽을 정도다. 적어도 몸이 아파서 슬픈 날은 없었다는 얘기다. 꼭 몸이 아픈 것 말고도, 외국 생활 초창기에는 어려운 일을 겪거나 할 때 참 서럽고 슬프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내가 가장 슬픈 날은 내가 힘들거나 어려운 일을 겪을 때가 아니었다. 요즘 나는 ‘어버이날’이야말로 외국에서 살면서 가장 슬픈 날이 아닐까 싶다. 부모님 곁을 떠나 있음에, 그래서 부모님께 충분히 해드리지 못함이 내가 어려운 일을 겪는 것보다 더 슬프다는 것이다. 외국에서 사는 우리들은 한국의 명절이면 고향이 그리워지고, 부모님과 가족들이 보고 싶어지면서 그리움에 시달린다. 그런데, ‘어버이날’은 단순히 가족을 향한 그리움과는 다르다. 다른 날은 몰라도 ‘어버이날’만은 부모님과 함께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함에서 오는 죄책감과 슬픔이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5월 6일, 이제 내일 모레면 ‘어버이날’이다. 한국의 대부분 부모님들은 고급 식사에서부터 카네이션 한 송이까지, 자식들로부터 크고 작은 대접을 받으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실 때, 우리 부모님은 두 분만이 덩그러니 보내실 생각을 하니 그냥 그것 만으로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물론, 필자가 외아들이기 때문에 유난히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필자 말고 자식이 한 명이라도 더 있었더라면 당연히 우리 부모님도 남들 못지 않은 즐거운 어버이날을 보내셨을 텐데. 두 분이서만 어디 좋은데 가서 외식도 하시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실 수도 있겠지만, ‘어버이날’은 어딜 가도 다 자식들이 부모님 모시고 나온 경우라서 괜히 두 분이서만 어딜 가시기도 참 애매할 것 같다. 예전에 간혹 사람들이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외국에 나가서 살면 불효라고 했는데, 그 때는 그 얘기가 별로 와닿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렇게 막상 외아들인 내가 벌써 6년 가까운 세월을 외국에서 살다보니, 그 얘기가 정말 맞다는 생각이 든다. 어렸을 적에 외로움의 고통을 참지 못해 눈물을 흘리던 시절에는 내가 외아들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야속했지만, 그것을 극복한 이후로는 조금도 내가 외아들이라는 사실이 야속하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 나는 다시 내가 외아들이라는 사실이 야속하다. 외아들만 아니었더라면 이렇게 외국에 나와 사는 게 부모님께 잘못하는 게 아닐텐데 싶어서. 아무리 외국에 나가서 성공한들, 아무리 자주 부모님께 연락을 하고, 아무리 좋은 것을 챙겨드린들, 이렇게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외국에 떨어져 사는 것 만으로도 결국 불효인 것이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정말 수천, 수만 가지로 정의할 수 있지만, 요즘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특히, 나이가 드시면서 부모님들로서는 장성한 자식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더 행복한 게 없으실 것이다. 그래서, 성인이 되고서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것은 결국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필자는 이렇게 거리도 멀고 한국행 비행기값도 비싼 영국에 살면서도 정말 한국에 자주 가는 편이고, 그렇게 한국에 갈 때마다 가장 많은 시간을 부모님과 보내는 편이지만, 그것 만으로는 여전히 턱 없이 부족한 것 같다. 영국에 살면서 한국을 참 많이도 다녀왔는데, 공교롭게도 한 번도 ‘어버이날’에 맞춰서 한국을 다녀온 적은 없다. 그런데, 떠올려보니 영국에 오기 전 한국에 있을 때에도 딱히 ‘어버이날’ 부모님께 뭘 잘 해드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더 솔직히는, 이제 서른 조금 넘은 내 인생을 다 떠올려봐도 부모님께 뭘 잘 해드린 적이 기억나지 않는다. 결국, 자식은 아무리 부모에게 한다고 해도 부모가 자식에게 한 만큼을 절대 할 수 없는 것 같다. 어제 늦은 밤 컴퓨터에 저장된 부모님과 찍은 사진들을 열어보았다. 2007년 겨울 취업비자를 받으러 한국에 가서 찍은 사진, 그리고 얼마 전 1월에 한국에 가서 찍은 사진. 4년 가량의 시차를 둔 그 사진들 속 부모님의 얼굴에서는 흘러버린 세월의 흔적이 보였다. 인정하기 싫지만 이제 내 평생 부모님과 함께할 수 있는 ‘어버이날’은 지나온 ‘어버이날’ 보다 많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외국에 나와 살면서 ‘어버이날’이 가장 슬프다. 오늘밤 꿈에서나마 부모님을 모시고 우리 세 식구가 잘 가는 라페스타 먹자골목에 가서 우리가 늘 먹던 숯불구이 대창과 돼지갈비를 사드리고, 또 고등어회를 사드리면서 아버지의 소주잔을 채워드리고, 돌아오는 길에는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케이크도 사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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