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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0 01:20

차를 바꾸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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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이었던 2006년 여름, 내가 활동하는 가야금&기타 듀오 KAYA는 당시만 해도 잘 알려지지 않아서 지금처럼 연주 초청을 받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당시 KAYA는 재영한인타운인 뉴몰든(New Malden)과 비교적 가까운 킹스톤(Kingston)과 서튼(Sutton)의 쇼핑거리인 하이스트릿에서 거리 연주를 했다.

 

무거운 악기들과 스피커까지 대형 트렁크 가방에 넣고서 버스를 타고 낑낑거리며 연주를 다니느라 상당히 애를 먹었다.

 

그러던 중, 잘 아는 한인 목사님께서 편도로 무려 7시간이나 걸리는 미드 웨일즈(Mid Wales)에서 열리는 중요한 행사에 연주 초청을 해주셨는데, 악기들을 들고 차마 그곳까지 대중교통으로 이동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유학생 신분으로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자가용을 구입하게 되었다.

 

아무리 중고차라고 해도 매물로 나온 차들의 대부분이 당시 형편으로는 부담스런 가격이었는데, 마침 지인 분을 통해 아주 오래되었지만 제법 쓸만하다는 중고차를 하나 소개받게 되었다.

 

연식이 조금 오래되었지만, 시운전을 해보니 차가 잘 나가고, 무엇보다 엔진 소리가 너무 훌륭했다.

 

영국 중고차 시세를 아시는 분들이 들으면 깜짝 놀라시겠지만, 불과 300파운드에 이 차를 구입했다. 한국 돈으로 60만원 가량에 구입한 셈이다. 다행히 그 동안 연주를 해서 번 돈으로 충분히 감당하고도 남을, 말도 안 되는 저렴한 가격이었다.

 

당시 이 차를 인수하면서, 이전 주인 분께서 이 차로 장거리를 뛴 적이 없으니, 가급적 장거리는 조심해서 뛰라며 조언하셨다.

 

그러나, 훗날 KAYA는 이 차로 스코틀랜드부터 잉글랜드 남부까지, 정말 영국 방방곡곡 연주를 다니면서 이 차를 구입한 가격의 몇 백배가 넘는 돈을 벌게 되었고, 어느덧 마일리지는 십만을 훌쩍 넘어버렸다.

 

이 차를 5년 가량 타면서 한 겨울 기온이 급감해 부품이 하나 망가져서 수리한 것을 빼고는, 정말 고장 한 번 없이 너무나도 훌륭하고 고마운 차였다.

 

그러던 중, 결국 세월의 무게를 견디기가 어려웠던 모양인지, 작년 여름 갑자기 핸들이 뻑뻑해지다가 시동이 꺼지는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정비소에 가져갔는데도 뾰족한 원인을 찾지 못했고, 결국 이 차와 이별을 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 것이었다.

 

그 때부터 새로운 차를 알아보기 시작했고, 1년 가량이 지난 최근까지도 마땅한 차를 발견하지 못하다가, 마침 이번 달 들어서 역시나 이번에도 너무나 좋은 가격에 나온 상태 좋은 중고차를 만나게 되어서 구입을 결정했다.

 

정말 오랜만에 새 차를 맞이하는 기쁨도 물론 컸지만, 그 보다는 그 동안 정든 차를 떠나보내는 서운함이 훨씬 컸다.

 

남들이 보기에는 오래되고 흠집 많은 싸구려 차겠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하고 고마운 차였다. 무엇보다 이 차는 유학생으로 와서 어느덧 이렇게 영국에서 정착해 살아가고 있는 나의 지난 영국 생활을 지켜봐주고 함께해준 너무나 고마운 친구였다.

 

차를 폐차하기 전날, 차에 앉아서 이 차와 함께 했던 지난 순간들을 떠올렸다. 즐거웠던 순간들도 많았지만, 그보다는 아찔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차를 사자마자 실수로 주차를 잘못해서 주차위반 벌금을 맞았던 일, 한 여름 홍수가 난 지역에 잘못 진입했다가 물이 본네트까지 차올라서 차가 멈출까봐 조마조마했던 일, 기름이 바닥나 표시등이 들어오는 상태에서 고속도로에 묶여서 발을 동동 구르던 일, 주행 중 냉각수 연결 호스가 찢어져서 차 온도가 급상승하고 본네트에서 연기가 나서 기겁했던 일, 고속도로에서 갑자기 타이어가 펑크나서 갓길에 차를 세우고 지나가는 차량의 도움을 구하려 고생했던 일...

 

그랬던 순간들에도 이 차는 언제나 그 역경들을 잘 극복했고, 단 한 번도 내 몸을 상하게 한 적이 없이, 언제나 듬직하게 내 곁을 지켜주었다.

 

나에게는 수억 원짜리 고급차보다도 더 귀하고 값진 보물과도 같던 이 차를 떠나보내야 한다니...

 

폐차 전날 이 차를 몰고 마지막으로 리치몬드 공원을 돌면서 이 차와 사진을 찍으며 마지막 추억을 만들었다.

 

30.JPG

 

여러 번 차를 쓰다듬으며 정말 고맙다, 수고했다, 잘 가라고 해주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몇 대의 차를 더 만나게 될 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나는 내 인생의 첫 내 차이기도 했던 이 차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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