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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1 21:53
이민사회의 존경받는 원로가 된다는 것
조회 수 2557 추천 수 0 댓글 0
한국의 명절과는 아무 상관없이 흘러가는 영국의 일상이지만, 이미 25년 넘도록
한국에서 살았던 탓인지 내 마음만은 고향의 명절을 여전히 기억하는 듯, 추석이 되면 괜히 기분도 싱숭생숭해지고, 유난히 한국 생각이 많이 난다. 그리고, 아마도 그렇게 타향에서도
추석을 느끼는 것은 나뿐만이 아닌 듯 하다. 추석 전날 한인 수퍼마켓에서 장을 보는 한인들의 표정에는 저마다
추석의 정겨움과 즐거움이 한 가득 담겨 있었으니 말이다. 지난 해 추석에 이어서 이번 추석에도 내가 재영한인사회에서 가장 존경하는 원로분 댁으로
초대를 받아서 둥근 보름달이 뜬 하늘 아래 멋지게 꾸며진 정원에서 바베큐와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한국인들은 물론 다른 외국인들도 함께 모여서 음식을 나누고, 음악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는 벌써 5년째 영국 내 코리아 타운과도
같은 뉴몰든에 살고 있지만, 사실 한인사회 내에서 그닥 교류나 인맥은 없는 편이다. 아무래도 시내에 있는 외국 회사를 다니고 있고, 음악 활동도 한인사회 내에서는 많지 않으며, 그렇다고 한인교회에 적극 연루된 것도 아니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사실, 처음 영국에 와서는 뉴몰든,
더 정확히는 한인타운에서는 별로 살고 싶지 않았고, 한인들과도 별로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았었다. 해외 이민사회에서 일어나는 흉흉한(?) 얘기들을 워낙 많이 들어왔던 탓이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뉴몰든에서 살기 시작했는데, 정말 생활이 너무나 편했고, 무엇보다 한국음식과 소주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그야말로 딱이었다.
점차 이런 저런 한인들과 교류도 하다보니 이민사회에서 일어하는 흉흉한 얘기들은 정말
자기 하기 나름으로, 서로 조심해야 할 부분들만 주의하면 그닥 염려할 부분이 아니며,
오히려 너무나 좋은 한인들과의 만남은 이민생활에 있어서 큰 힘과 즐거움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만나뵌 좋은 한인들 가운데서도 정말 존경할 수 있는 원로분을 알게 된 것은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선생님께서는 내가 활동하는 가야금&기타 듀오 KAYA의 음악도 너무나 좋아해주셨고, 또
내가 쓰는 이 어줍잖은 글들도 좋아해주셨다. 영국 이민 1세대로 이제 어느덧 일흔을
훌쩍 넘기신 선생님께서는 한국 정부가 만든 현재의 공식 주영한국문화원 이전에, 이미 오래 전 직접 개인적으로
한국문화원을 설립하셨을 만큼 영국에서 한국인으로서 의미 있는 일들을 많이 해오셨다. 선생님의 그런 업적들도 너무나 귀감이 되지만, 무엇보다 내가 선생님을 존경하는 것은 선생님의 인품 때문이다. 어려도 한참을 어린 나에게조차 너무나 깍듯이 대해주시는 선생님의 모습에서, 늘 다른 이들에게 너무나 세심한 배려를 기울여주시는 선생님의 모습에서, 다양한 국적의 다양한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존경을 받는 선생님의 모습에서는 다른 이들이 쉽게 흉내낼 수 없는 인품의 향기가 멋지게 흘러넘친다. 사실, 인품이라는 것은 단순히
나이가 든다고 자연스럽게 생기는 게 아니다. 인품은 그 사람이 살아온 매 순간이 쌓이면서 형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인품이라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바꾸거나 흉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선생님께서는 언급하신 적이 없지만, 아마도 수십 년 동안 이민사회에서 살아오시면서 이런 저런 좋지 못한 모습들도 보셨을 것이고, 좋지 못한 사람들과의 만남도 겪으셨을 것이다. 인정하기 싫은 슬픈 사실이지만, 이민사회에는 분명 흉흉한 일들, 한인들끼리 얼굴 붉히게 되는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이민사회에는 좋은 한인들도 많지만, 그야말로 악당같은 한인들, 한인들 간 갈등과 분열을 만드는 한인들, 또 그렇게 만들어진 갈등과 분열 속에서 기생하며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는 추악한 한인들도 많다. 그리고, 그렇게 좋지 못한 일들,
좋지 못한 한인들을 오랜 세월 겪다보면 어느새 멀쩡했던 사람도 그 인품이 변하고 손상되곤 한다. 아직 영국 이민 10년도 안 된 나조차도,
가끔 다른 한인과 안 좋은 경험을 하거나 하면 나중에 같은 일이 또 일어날까봐 괜히 마음이 더 강퍅해지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선생님께서도 분명 그 오랜 세월 이민사회에서 살아오시면서 그런 일들을 수도 없이 겪으셨을텐데도, 어떻게 그렇게 점잖고 인자하신 인품을 유지하실 수 있으셨는지, 그 비결을 꼭 여쭤보고 싶다.
그리고, 아마도 선생님에 대해 그렇게
느끼는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닌 듯 하다. 내가 만나본 모든 한인들이 이구동성으로 선생님에 대해서 너무나
훌륭한 한인사회 원로로 존경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서른 즈음에’에 몇 번 언급했지만,
나는 40대 중후반에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 물론, 내가 원한다고 그렇게 되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일단 지금 내 마음 같아서는 그렇다. 하지만, 만약 내가 70세가 되도록 영국에서 살아가게 된다면, 과연 나는 선생님과 같은 존경받는 원로가 될 수 있을까
하면서 너무나 부끄럽기만한 내 인품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다. 부디 선생님께서 건강하셔서 나뿐만 아니라 또 내 뒤를 이어서 영국을 찾는 젊은 한인들에게도
재영한인사회의 멋진 원로로 오래도록 그 자리에 계셔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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