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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6 01:25
지나버린 모든 게 아름다울 수 있는 신비
조회 수 2307 추천 수 0 댓글 0
우리들 삶에는 신비로운 것들이 너무나도 많지만, 나는 그 중에서도 ‘시간’이야말로 신이 우리에게 선사한
가장 신비로운 철학이 아닐까 싶다. 영원히 멈추지 않았으면 하는 아무리 즐겁고 행복한 시간도, 반대로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고통의 시간도, 결국은 모두 지나간다. 어느 누구도 이 같은 시간의 순리를 거스를 수는 없다. 아무리 돈이 많고 천하의 권력을 지녔다고 해도 시간을 돈 주고 살 수는 없으며,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고, 또 다가올 시간을 앞당길 수도 없다. 모두가 공평하게 그저 지나가는 시간에 순종할 뿐이다. 그렇게 지나간 시간은 불과 1초 전에 발생한
일일 지라도 ‘과거’가 되고, 더 이상은 실재하지 않은 채 그저 우리들의 영혼 속에만 저장되는 ‘기억’이 되어 버린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그 순간에는 나중에 그 일이 어떻게 기억될 지 전혀 깨닫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추억’이라는 게 너무나 아름답고 소중한 것 같다. 어느 누구도 의도적으로 추억을 만들 수는 없다. 추억은 계획할 수도 없고, 그것이 추억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어렵다. 그저 쉴 새 없이 흘러가는 시간의 어느 한 조각이 지나고 보니 다시 돌아가고픈 아름답고
행복한 느낌으로 남아 ‘추억’이라고 불리울 뿐이다.
그 당시에는 아주 사소한 것이었는데도 지나고 나면 너무나 그립고 돌아가고픈 추억이
되어버린 것들이 너무나 많다. 특히,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대다수의
독자분들처럼 이역만리 타국에서 살아가는 우리들로서는 고향 한국에서의 일상들이 문득 문득 너무나 그리운 추억으로 떠오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사랑하는 부모님과 가족들과의 시간들은 언제나 꿈결처럼 아련하게 다가온다. 나 역시 부모님과 함께 했던 늦가을의 추억들이 어느 아름다운 풍경화처럼 그려진다. 아버지와 함께 단풍이 들고 낙엽이 구르는 고향 일산의 멋진 산책로를 한참이나 걷던
기억,
아버지가 고등학교 시절 등하교를 하며 지나다니셨다는 덕수궁 돌담길을 부모님과 함께 걷던 기억, 유난히 좋아하시는 노란 은행나무를 배경으로 활짝 웃으시던 어머니... 그 소중했던 순간들을 붙잡고 싶건만, 시간은 언제나 그렇듯 매정하리만치 우리들을 그 순간에 머무르도록 허락하지 않고 우리를 바쁘게 재촉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그 야속하기만한
시간을 차마 원망할 수는 없다. 눈물이 멈추지 않을 것 같은 슬픔의 순간들로부터 고맙게도 우리를 데리고 나온 것도
그 흐르는 시간이었기에. 그렇게 그리운 시간들을 비록 우리는 붙잡을 수는 없지만,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남겨서 나름대로 간직하곤 한다. 특히, 나는 한국에 가면 사진을
많이 찍어온다. 멋진 배경이 있는 사진 뿐만 아니라 엉망으로 어질러진 내 방도 찍고, 어머니께서 차려주신 갖가지 음식들도 찍고, 아버지와 함께 마신 안동소주도, 막걸리도 카메라에 담아온다. 그 순간에는 ‘뭐 이런 사진을 다 찍나’
싶지만, 막상 영국에 돌아와서 그 사진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행복했던 순간들의 느낌들이
모락 모락 피어오르면서 나의 현재 역시 행복해진다. 비록 시간이 흘러서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순간들이지만, 그 소중했던 순간들이 지금 현재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 같은 행복한 착각에 빠지게 해주니 그저 그 사진들이 고마울 뿐이다.
한편, 추억은 반드시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들로부터만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눈물을 줄줄 흘렸던 슬픔의 순간들, 너무나 버거웠던 육체적 혹은 정신적 고통의 시간들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비록 다시 돌아가서 또 겪으라면 싫을지언정,
그래도 그리운 추억이 되는 경우들이 있다. 특히, 당시에는 마냥 힘들고 재미없다고만
여겼던 순간들이 세월히 흐르고 나면 은근히 그리운 추억이 될 때가 있다. 그리고, 그렇게 다시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되돌아보면 그 힘들고 재미없는 순간들 속에서도 분명 즐겁고 행복한 것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하루 하루가 답답한 터널 속에 갇혀있는 것 같았던 고3 시절, 혹은 군대에서의 시간들은 그 당시에는 그저 빨리 지나기만을 바랬던 악몽 같은 순간들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서 돌아보면
때로는 너무나 재미있는 순간들도 있었고, 문득 다시 돌아가고픈 그런 그리움으로 떠오르기도 하니 말이다.
결국 모든 것들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 그리워지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렇게 그 모든 것들이
시간이 지난 뒤에 그리워질 수 있다면 오늘 내가 처한 현실의 슬픔이나 고통에 비록 무덤덤할 수는 없을 지언정, 그래도 그것들로부터 너무나 크게 영향을 받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리고, 소중한 추억을 만들기에도
모자란 이 시간에 무언가에 화를 내거나 혹은 누군가를 미워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깝지 않을까? 이래도 흐르고 저래도 흐르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또 그 시간들을 통해 어떤 추억을 남기느냐는 온전히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으니 말이다. 겨울의 길목으로 들어서는 늦가을, 얼마 남지 않은 올해의 시간들을 앞두고 그 모든 순간들이 훗날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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