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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22 21:06
보스톤 마라톤 테러, 11년 전 그 현장에 있었던 나
조회 수 2217 추천 수 0 댓글 0
이번 미국 보스톤 마라톤 현장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 소식을 듣고서 정말 만감이 교차했다. 예전에도 ‘서른 즈음에’를 통해 몇 차례 언급했던 것처럼 나는 2001년 9월부터
2002년 6월까지 보스톤에서 어학연수를 했었다. 비록 9개월의 짧다면 짧은 기간이었지만,
어쩌면 나는 보스톤에서의 9개월 간의 경험을 통해 오늘날 이렇게 영국에서 살고 있는
것일 지도 모를만큼, 여러 면에서 내 삶을 바꾼 중요한 시점이자 장소였다. 내가 보스톤에 도착한 2001년
9월, 그렇다, 바로 9/11
테러가 발생한 그 시점이다. 태어나서 처음 나가보는 해외, 그것도 너무나
꿈꿔왔던 미국행을 앞두고 나는 무척이나 들떠있었다. 출국 예정일은 9월 14일, 먼저 뉴욕 JFK 공항으로 갔다가 보스톤 로간 공항으로
비행기를 갈아타는 여정이었다. 9월 11일, 출국일을 3일 앞두고 한창 송별회로 정신 없던 차, 그날
역시 외출해서 지인들과 시간을 보내던 중, 믿지 못할 소식이 들려왔다. 미국에, 그것도 내가 거쳐가야 하는
뉴욕에 엄청난 테러가 발생했다는 소식이었다. 곧이어 내 휴대폰에 수 많은 메시지와 전화가 걸려왔다.
결국 출국일은 며칠 미뤄졌고, 미국 현지
분위기가 다소 안정된 뒤에 비행기에 올랐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보스톤, 어학연수 학원
관계자들은 새로 도착한 학생들의 염려를 의식한 듯, 보스톤은 더 없이 안전한 곳이니 아무 염려 말라고 우리들을
안심시켰다. 실제로 접한 보스톤은 정말 너무나 평화롭고 안전한 곳이었다. 미국에서 밤 늦은 시간에 외출해도 되는 곳이 많지 않은데, 보스톤은 정말 밤 늦은 시간에도
안전했고, 미국 최고의 교육도시 답게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수준이 높아보였다. 아닌 게 아니라 하버드, MIT 등
유수의 명문대학들, 그리고 어쩌면 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유학생들이 밀집한 도시인 보스톤을 타깃으로 삼을
멍청한(?) 테러범은 없을 것 같았다, 만약 보스톤에서 테러를 자행한다면
이는 단순히 미국만을 공격하는 게 아닐 테니까. 그렇게 보스톤에서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 어느덧 해가 바뀌고 2002년 4월이 되었는데,
그 유명한 보스톤 마라톤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그 전년도에 우리 이봉주 선수가 우승을 한 터라 보스톤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기대감은
어마어마했다.
예전에 썼던 ‘타임캡슐’편에서 밝힌 것처럼 나는 보스톤에서 만난 3명의 남자들과 4총사가 되어 늘 뭉쳐다녔고, 당연히 보스톤 마라톤도 함께 관람하기 위해 미리 계획을 세웠다.
동갑 친구 덕환이는 어디서 초대형 태극기를 구해와서는 TV에 꼭 잡힐만한 곳에 그 태극기를 걸고서 이봉주 선수를 응원하자고 했다. 보스톤 마라톤 중 방송사 헬리콥터가 여러 대 뜰텐데 거기에 꼭 우리가 찍혀서 한국에
계신 부모님들도 보실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드디어 보스톤 마라톤 당일, 보스톤의 푸르고
높은 하늘이 유난히도 멋있던 그날, 우리는 싸이가 다녔던 버클리 음대 앞에 있는 한식 뷔페식당 ‘아리랑’에서 든든히 배를 채우고서 덕환이가 봐둔 명당(?) 응원석으로 향했다. 그곳은 바로 고가도로 위였다. 그 고가 밑이
마라톤 코스 도로. 그러니까 고가도로 위로 올라가서 태극기를 펼쳐내리면 100% 방송 카메라에 잡힐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정말 기막힌 발상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아무도 그 자리에서 응원을 하거나 관람하는 이들은 없었다. 우리들 중 맏형이었던 찬 형은 고가도로에 올라가는 게 별로 안 내킨다면서 그냥 남았고, 나를 포함해 3명은 고가도로로 올라가 태극기를 펼치려던 찰나, 경찰관 한 명이 우리를 발견하더니 우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갑자기 다른 동료 경찰들을 막 부른다. 당연히 모든 관중들이 우리를 다 쳐다보며 웅성거렸고, 이윽고 경찰관이 손가락으로 우리더러 당장 내려오라고 신호를 보냈다. 우리는 그렇게 태극기를 펼쳐보지도 못하고 내려와야 했고, 그 광경을 지켜본 찬 형은 웃겨서 배꼽을 잡았다. 우리는 차선책으로 결승점 부근으로 옮겨서 응원을 하자고 했고, 마라톤 참가자들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달려서 결승점 부근에 다다랐다. 잠시 뒤 모습을 보인 이봉주 선수, 그 순간 나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목청을 높여 “봉주 형, 화이팅!”을 냅다 외쳤고, 이봉주 선수는 나를 흘끔 쳐다봐주셨다.
비록 이봉주 선수는 그 대회에서 4등을 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너무나 신이났고, 온 종일
보스톤 시내를 걸어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미소가 지어지는 11년 전 보스톤 마라톤의 추억, 그러나 이제 보스톤 마라톤은 많은 이들에게 공포와 슬픔의 기억을
남기게 되었다. 테러 현장에 있던 사람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과 지인을 사망자, 부상자 명단에서 발견해야만 했던 그 모든 사람들에게 어떠한 말로 위로를 해야 할 지
모르겠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 것인지, 도대체 인류는 왜 이런 일을 벌이기까지 이르렀는지... 그 평화롭고 활기찬 보스톤의 풍경들이 지금도 눈에 선한데...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부디 세계
어디서도 더 이상 이런 소식이 안 들려오길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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