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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20 22:17
‘갑과 을’의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조회 수 2472 추천 수 0 댓글 0
요즘 한국에서 유난히 많이 들리는 표현이 있다. 바로 ‘갑과 을’, 그리고 ‘갑의 횡포’. 비행기 기내에서부터 동네 마트에서까지 우리 사회의 수 많은 영역에서 크고 작은 ‘갑의 횡포’가 쉴 새 없이 들려오는 요즘이다. ‘갑의 횡포’를 당한 ‘을’은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기본이고, 심한 경우에는
자살까지 택하는 등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말이 무색하리만치 우리들은
때로는 ‘갑’이 되고 때로는 ‘을’이 되어 같은 인간들끼리 못할 짓을 가하고 또 당하며 살아가고 있다. ‘갑과 을’, 그리고 ‘갑의 횡포’는 우리 민족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존재해왔을 만큼 굳이 새로울 게 없는 현실임에도
최근 들어서 이렇게 언론의 조명을 받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현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이제서라도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본격적으로 깨닫게 된 것으로 여기면서 기뻐해야
하는 걸까? 인정하기 싫지만 아마도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갑과 을’의 세상이 가장 철저히 구현되는 곳들 중 한 곳일 것이다. 물론, 세계 어디를 가도 ‘갑과 을’의 관계는 늘 존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대부분 선진국들에서는 아무리
‘갑’ 행세를 하더라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고, 아무리 ‘을’이라도 존중받고 보호받아야 할 최소한의 안전망이
있다. 아무리 ‘갑’이더라도 되는
건 되고 안 되는 건 안 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갑’이 되면 되는 것도 안 되게 하고, 안 되는 것도
되게 할 수 있다. 그래서, 유독 한국인들은 어떻게든
‘갑’이 되려 하고, 조금이라도
‘갑’의 위치가 되면 상식을 벗어나는 수준의 ‘갑’ 행세를 하기 위해 혈안이 되는 것 같다. 이는 반드시 갑부나 권력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평범한 일반인들조차 하다 못해 마트 점원에게라도 ‘갑’ 위치가 되어 횡포 내지는 진상을 떨 때가 있다. 유흥업에 종사하는 여성 접대부들이 진상을 떠는 손님들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남성 접대부들이 있는 여성 전용 유흥업소를 찾아가 자신들이 손님이 되어 진상을 떤다는 기사를 읽고서 정말 기가 막혔다. 우리는 진정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함부로 구는 것을 통해서만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것인지. 남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위치에 서면 나에게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는 상대방을 어떻게든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려는 우리 한국인들의 슬픈 자화상인 것이다.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사회적 관습이자 사람들의 내면에 깊숙히 자리잡은 ‘갑과 을’의 세상을 하루 아침에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인데, 그럼에도 과연 우리는 이러한 ‘갑과 을’의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분명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갑과 을’의 세상이 잘못된 줄 알면서도, 그 내면에는
정작 본인은 ‘갑’이 되고 싶은 바램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나 자신을 포함해서. 엄청난 경제력과 권력을 지닌 자가 일반인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갑’의 횡포를 부렸다는 뉴스를 보며 욕하고 분노하면서도, 정작 다른 한 편으로는 나도 그렇게 ‘갑’의 횡포를 부릴
수 있을만한 막대한 경제력과 권력을 갖고 싶다는 바램이 공존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인간이라는 추악한
존재다. 그리고, 더 나아가 아마도 자녀들에게
‘아무리 갑이 되어도 을에게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가르치기 보다는,
‘너만은 어떻게든 갑이 되거라’고 가르치고 있지는 않은지. 부당한 ‘갑의 횡포’를 당하는 ‘을’을 보면서 그런 일이 가능해진 우리 사회에
대해 분노하고 ‘을’의 입장을 헤아려 함께 아파하기 보다는,
내 자녀만은 저렇게 ‘을’이 되어 ‘갑’에게 당할 바에는 차라리 ‘갑’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면 우리는 진정 부끄러워해야 한다. 한국의 학부모들이 자녀들의 사교육에 막대한 돈과 노력을 들여서 내 자녀가 경쟁자를
한 명이라도 더 제치도록 하는 것도 결국은 자녀들이 나중에 커서 조금이라도 큰 소리를 칠 수 있는 사람, 조금이라도 고개를 빳빳이 세울 수 있는 사람, 즉 내 자녀가 ‘갑’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요즘 청소년들이 약자를 배려하거나 보호하기는커녕 약자를 무시하고 괴롭히는 것도, 그래서 학교 폭력이 과거보다 더욱 끔찍해진 것도 어쩌면 학부모들이 자신들의 자녀만은 ‘갑’이 되도록 가르쳤기 때문이라면 너무나 지나친 비약일까? 우리 모두가 ‘갑과 을’의 세상이 잘못된 것인 줄 알면서도, 정작 나 자신은, 내 자식은 ‘갑’이 되길 바란다면 ‘갑과 을’의 세상은 결코 고쳐지지 않을 것이다. ‘갑과 을’의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내가 ‘갑’의 입장이 될 때 ‘을’을 헤아릴 줄 아는 ‘갑’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갑’의 횡포를 부리지 않음은 물론 ‘갑’의 지나친 특권을
포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이 ‘갑’의 입장이 될 때 올바른 선택을 하고, 또 자녀들에게
그렇게 가르친다면 언젠가는 이 끔찍한 ‘갑과 을’의 세상이 비로소 고쳐지지
않을까? 영국 유로저널 전성민 기자 eurojournal03@ek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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