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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8 07:37
전설의 주먹, 그 주먹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으려나
조회 수 2478 추천 수 0 댓글 0
이 영화는 격투기 서바이벌 TV 방송에 출전하게 된 과거 고등학교 시절 소위 학교짱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는 학창 시절 그야말로 전설로 불리우던 학교짱들의 지난 사연, 그리고
세월이 흘러 이제 40대의 고단한 중년의 삶을 살고 있는 그들의 현재를 보여주고 있다. 영화 속의 주인공들은 비록 학창 시절 주먹 하나로 전설이 되었을지언정, 현재 시점에서는
전설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때로는 초라하고 때로는 비겁한, 현실의 무게에 찌든 평범한 중년 아저씨들이
되어 그야말로 짠한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를 보면서 나도 그랬지만 대부분의 한국 남성 관객들은 학창 시절 기억에 남는
싸움짱들이 떠오를 것이고, 또 그들이 현재 어떻게 살고 있을 지 궁금해질 것 같다.
나도 이 영화를 보면서 학창시절 싸움짱들의 얼굴이 몇 명 떠올랐고, 그 중에서도
고등학교 시절 학교짱이었던 무술의 한 종목인 우슈 선수였던 한 녀석이 떠오른다. 내가 졸업한 명지고등학교는 당시에는 남자고등학교였고, 주간반 열 학급과 야간반도 열 학급이
있었으며, 교사들도 남교사들만 있었으니 그야말로 수컷들의 세계였다. 나는 초중고 시절을 통틀어 싸움을 거의 해본 적이 없고, 특히 고등학교 시절에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별 존재감 없던 여러 아이들 중 하나가 바로 나였다.
그랬던 내가 그나마 수컷들의 세계에서 인정받은 게 하나 있었으니 바로 팔씨름이었다.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사실 팔씨름은 덩치나 싸움실력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고, 그저 팔목
힘만 세면 잘 하는 게 팔씨름인데, 어렸을 적부터 체육선생님인 아버지를 따라 헬스클럽에 어설프게 따라다녔던
탓인지 나는 팔씨름 하나는 참 잘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남자반이 네 학급밖에 없었으니 우연찮게 팔씨름 전교짱도 먹었고,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여차 저차해서 팔씨름 하나는 두각을 보였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일산 신도시에서 서울로 학교를 다녔던 탓에 늘 피로가 쌓여서 아침
자습시간은 물론 쉬는 시간마다 책상에 엎드려서 잠을 자곤 했는데, 2학년이었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아침 자습 시간에 엎드려
잠을 자고 있던 나를 누가 툭툭 쳐서 깨웠다. 고개를 들어보니 우리 학교에서 전교짱으로 자주 거론되는 그 우슈 선수인 녀석이 내 앞에 앉아있었다. 나는 같은 반도 아닌 이 녀석과 직접 대면하는 게 처음이라 흠칫 놀랐는데, 이 녀석은
내가 팔씨름을 잘한다는 얘기를 듣고 한 번 겨뤄보자고 날 찾아온 것이었다. 생긴 것도 험상궂게 생긴데다가, 제대로 무술을 연마해서 보통 싸움꾼이 아니라는 녀석의
소문을 들어왔기에 나는 솔직히 그 순간 정말 쫄았지만, 팔씨름을 하자며 덥석 내미는 녀석의 손을 잡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게 왠걸? 아무리 우슈 선수라도 팔목 힘은
약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나는 별 힘도 들이지 않고 바로 녀석을 이겨버렸다. 잠이 덜 깨기도 했고,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는데, 녀석을 이기고 나니 문득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이제 이 녀석이 나한테 팔씨름을 졌다고 해코지를 하면 어쩌나?”하면서 그냥 져줄 것을 하는 후회가 몰려왔다.
아니나 다를까, 이 녀석은 쉬는 시간에 다시 보자며 교실을 나갔고, 나는 두려움에 도무지 수업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쉬는 시간에 다시 우리 반으로 찾아온 녀석은 이번에는 팔굽혀펴기로 겨루자며 키가 아주 작은 한 친구를 등에 태우고서
팔굽혀펴기 시합을 하자고 했고, 다행히(?) 이번에는 내가 졌다. 그리고, 이후 녀석은 무슨 생각에선지 나를 마주칠 때마다 친한 척을 했고,
3학년 때는 같은 반이 되기도 했지만, 그렇게 친했던 사이는 아니기에 고등학교 졸업
이후 나는 한 번도 녀석을 본 적이 없다. 아마 학창 시절 그렇게 싸움을 잘 했던 짱들도 결국 성인이 되고 사회에 나오면 조폭이 되거나 권투선수가 되지
않는 이상 더 이상 그렇게 주먹만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이들, 그리고 돈과
권력을 거머쥔 이들이 지난 시절 학교짱들이 그랬던 것처럼 사회의 짱이 되어 어깨에 힘을 주고 있는 현실을 직면할 것이다. 먹고 살기 위해 이꼴 저꼴 보면서 때로는 굽신거리고 때로는 거짓 웃음을 팔아야 하는 이 고단한 현실을 살아가다
보니, 주먹질로 모든 게 통했던 그 시절이 그래도 지금 보다는 더 순수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그
주먹질을 참 잘했던 녀석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며 살고 있을지 몹시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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