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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만 가네

나의 마음도 조급해지지만

우리가 찾는 소중함들은 항상 변하지 않아

가까운 곳에서 우릴 기다릴 뿐

                              - 신해철 나에게 쓰는 편지

 

신해철이 급성 심정지로 의식을 잃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그러다가 곧 회복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대중들 앞에 서겠지 싶었다. 그 동안 투병 중이었던 것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늘 두려움 없이 자신의 생각을 다소 무모하리만치 당당히 표출해왔던 그의 평소 이미지 때문인지 그의 육신마저도 그렇게 당당하고 강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기어이 믿기 어려운 소식이 들려왔다. 그가 결국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날 밤 지난 시절 그의 음악을 공유했던 수 많은 이들은 그야말로 우리 어릴적 가수가 떠나갔다는 사실에 가슴으로 울었을 듯 하다.

 

사실, 나는 신해철의 팬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다. 그의 음반을 구입한 적도 없고, 그의 콘서트를 본 적도 없다. 하지만, 그 시절 우리 또래들은 누구나 신해철의 노래 몇 곡 정도는 늘 귀에 익어 있었다.

 

그는 내가 초등학교 시절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라는 발라드로 솔로 데뷔를 했고, 이후 성공 가도를 달렸다. 단순히 노래만 하는 게 아니라, 작사, 작곡은 물론, 당시로서는 흔치 않았던 전자 음악을 다룰 줄 알았던 그는 분명 특출난 재능을 지닌 뮤지션이었고 시대를 앞서간 아티스트였다.

 

그의 음악은 통기타와 잔잔한 포크음악을 좋아하는 나의 취향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그의 노래가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가 직접 쓴 노랫말들이었다.

 

넥스트를 결성하면서 다소 강렬한 음악을 선보이고, 나중에는 마왕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의 카리스마를 발휘했고, TV 토론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모습이나 거침없는 발언들로 인해 언제부턴가 신해철은 그야말로 기가 세고 강한 이미지로 대중들에게 각인되었다. 당연히 그의 그런 모습에 거부감을 갖는 안티들도 생겨났다.

 

하지만, 그의 초창기 시절 노래들을 들어보면, 특히 그 노랫말들을 보면 그는 누구보다 여리고 감성적이었으며,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찾아오는 가치관의 충돌과 세상의 변화에 대해 깊이 고민했던 순수한 청년이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솔직하고 섬세한 노랫말들은 그의 팬이건 아니건 그의 노래를 우연히라도 듣게 된 그 시절 청소년들의 가슴에 잔잔한 파장을 일으켰을 것이다.

 

훗날 그가 선보인 강렬한 록음악이나 무대 밖에서 보여준 거침없는 발언들은 어쩌면 그의 순수함을 지키기 어렵게 만든 세상을 향한 그의 마지막 몸부림이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실제 그의 동료들은 대중들에게 비쳐지는 모습과는 달리 그의 평소 모습은 무척이나 여리고 따뜻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나는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서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이 떠올랐다. 그 녀석들과 어울리다 노래방에 가면 꼭 신해철 노래 몇 곡은 불렀던 것 같다. 대학생이 되면서, 성인이 되면서 우리 역시 지난 날 신해철이 그랬던 것처럼 가치관의 충돌과 세상의 변화에 힘겨워 하면서, 무엇보다 동심과 점점 멀어져가는 우리들 자신에 대해 두려운 나머지 그의 노래를 부르며 애써 스스로를 위로했던 듯 하다.

 

그렇게 그의 노래와 그 시절을 추억하다가 결국은 고등학교 시절 친구 녀석들에게 오랜만에 카톡을 날렸더니 다들 그 소식에 마음이 젖어 있었던 모양이다. 그저 건강하자는 안부 인사를 건네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느새 우리 또한 이렇게 건강을 신경쓰기 시작해야 하는 나이가 된 것인지 참 기분이 묘했다.

 

하룻밤 새 담배를 몇 갑씩이나 피워대고 동이 트도록 술을 퍼마셔도 끄덕 없을 것처럼 함께 놀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저마다의 삶의 과제들을 짊어 지느라 정신 없는 일상을 보내며 건강을 염려하고 있다니...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 뿐만 아니라 중학교 시절 친구들의 단체 카톡방도 신해철 얘기였고, 한 친구는 혼자 울면서 술을 퍼마셨다고도 했다.

 

아마도 우린 우리 어릴 적 가수이자 청소년기를 함께 해준 신해철이라는 아티스트와의 이별이 슬픈 것도 있지만, 그와 함께 그 시절에 대한 새삼스런 그리움, 그리고 어느새 그런 그리움조차 잊은 채 정신 없이 앞만 보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현실에 대한 야속함 때문에 더욱 마음이 뒤숭숭했을 듯 싶다.

 

한편, 새삼 가수나 뮤지션은 이렇게 세상을 떠나면 땅에 묻히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가슴에 묻힌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물론, 배우들도 세상을 떠나면 그들이 남긴 작품을 사람들이 기억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작품 속에서 맡은 배역일 뿐, 그 배우 자신은 아니다.

 

하지만, 가수나 뮤지션은 그 자신 자체인 그들의 음악과 노랫말을 남기고, 또 그 음악을 들었던 순간들의 기억과 그 시절의 추억들을 남기기에 대중들의 가슴에 더욱 깊이 각인되는 것 같다.

 

신해철의 노랫말 중 내가 나의 글이나 음악을 통해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와 맞닿아 있는 우리가 찾는 소중함들은 항상 변하지 않아 가까운 곳에서 우릴 기다릴 뿐이라는 구절이 당분간 내 가슴 속을 맴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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