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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07 17:33
한국의 버스 안에서
조회 수 2137 추천 수 0 댓글 0
오랜만에 한국에서 보내는 12월, 마침 찾아온 강추위 속에서 귀가 떨어져나갈 듯한 한국의 매서운 겨울을 제대로 맛보고 있다. 하루는 버스를 탔는데 앉을 자리가 없어서 버스 안 뒤편에서 서있었다. 서서 가는 사람은 나와 버스 앞쪽에 서 있던 젊은 여성 한 명뿐이었다. 그렇게 서서 가나 싶었는데 마침 내가 서 있는 바로 앞 자리 승객이 내리면서 자리가 났다. 굳이 꼭 앉아야겠다는 생각도 없었는데, 마침 내 주위, 그러니까 버스 안 뒤편에는 다른 서 있는 사람도 없었고, 그럼 내가 앉아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처음 타본 버스여서 어느 정류장들에 서는지 확인할 겸 마침 바로 앞에 있는 노선도를 한 번 쓱 훑어보고 나서 자리에 앉으려 했더니, 정말 불과 한 2~3초 정도 지난 그 사이에 버스 앞쪽에 서있었던 젊은 (20대로 보이는) 여성이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바로 내 앞에서 난 빈 자리인데 멀찍이 버스 앞쪽에 떨어져서 서 있던 그녀가 어떻게 저렇게 번개같이 와서 내가 거의 앉으려는 시늉까지 했던 자리를 차지했는지 신기하기도 하고, 또 괜히 그녀가 얄미워졌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니 생긴 것도 정말 여우같이 생긴 X이 도도한 표정으로 앉아서 과자까지 오물거리며 먹고 앉아있다. 당연히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마치 나에게 “멍청아! 그러길래 니가 빨리 앉았어야지 왜 (노선도를 보느라) 한 눈을 팔았니?”라고 약올리는 듯 느껴졌다. 뭐 건강한 남자인 나보다는 그래도 연약한(?) 여성이 자리에 앉는 게 맞는 일이긴 하다. 만약 그녀가 내 주위에 서 있었더라면 맹세코 나는 내가 먼저 그녀에게 자리를 양보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내가 아주 잠시 (노선도에 눈길 한 번 줬던 그 시간은 정말 2~3초에 불과한 짧은 찰나였다) 방심한 사이에 그녀가 얌체같이 자리를 차지한 것은 괜히 내가 바보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 같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아니 그렇게 못했을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녀의 얼굴이 참 두껍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국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분명 공감할 것이다. 버스건 기차건 지하철이건 영국에서는 자리가 나면 비록 그 자리 가장 가까이 서 있던 사람일 지라도 우선은 그 자리에 더 앉아야 할 이유가 있을 다른 사람이 있는지 확인을 먼저 한다. 즉, 누군가에게 자리를 양보할 생각을 먼저 한다는 것이다. 물론, 영국에서라고 모두가 다 그렇게 양보정신이 투철한 것은 아니고, 주로 보면 외국인 (특히 아시아계) 아줌마들은 자리가 나면 냅다 앉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에서처럼 굳이 본인이 서 있던 자리가 아니었는데도 자리가 났다고 그렇게 무식하게 들이미는 식의 얼굴 두꺼운 짓은 영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또, 한 편으로는 그 여성의 행동이 어쩌면 한국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인가 싶기도 했다. 내가 너무 확대 해석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한국에서는 그렇게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허술한 틈을 보이면 얼른 치고 들어가서 내 유익을 추구하자는 발상이 너무 팽배해 있다고 본다. 그리고, 아마도 이러한 발상은 어렸을 때부터 부모들이 남을 배려하고 양보하도록 가르치지 않고, 그저 자기 자식만 잘 되라고 가르치면서 무의식 중에 형성된 것일 게다. 또한, 대학 입시건 취업이건 사회 전반적으로 그야말로 살벌한 경쟁이 도사리고 있는 만큼, 조금이라도 남의 허점을 이용하고 조금이라도 남보다 약삭빠르게 움직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서글픈 환경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모두가 그렇게 되어버린 것일 지도 모른다.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또 늘 그리움의 대상인 내 조국이지만, 나는 한국에 올 때마다 한국 사람들이 무섭게 느껴질 때가 많다. 나라고 마냥 착하고 순박하기만 한 것은 결코 아니지만, 영국에서 지내다가 한국에 가끔 들어와서 한국 사람들을 접하면 유난히 한국 사람들이 각박하고 얍삽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마치 눈 뜨고 코 베인다는 말처럼 조금만 방심하면 당할(?) 것 같은 분위기,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의심부터 해야 하는 분위기도 너무 싫다. 그래서, 이제 나는 한국 사회에서는 살아남을 자신이 별로 없다. 예전에 한국에서 살 때는 이런 것들을 느끼지 못했었는데, 한국 사람들이 변한 것인지 내가 변한 것인 것인지... 분명히 한국 사람들은 똑똑하다. 전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민족 중 하나일 것이다. 게다가 날이 갈수록 사람들이 더욱 똑똑해진다. 영국에서 접하는 사람들과 비교해보면 영국의 사람들은 허술하고 바보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의 그러한 똑똑함이 행복을 가져다 주지는 않은 것 같다. 선진국들 중 가장 높은 자살률이 이를 반영한다. 글을 한참 쓰다 보니 사내놈이 째째하게 버스 자리 빼앗긴 것 하나 가지고서 주절 주절 말이 너무 많았던 것 같다. 그래도, 내 자리를 빼앗은 그녀에게 감사해야 할 것 같다, 이렇게 글 한 편을 완성해주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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