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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15 11:15
모두 떠나버린 그 길에서
조회 수 2762 추천 수 0 댓글 0
런던 및 런던 근교에서는 한 겨울에도 좀처럼 만나보기 힘든 눈이 한국에는 소복소복 내렸다. 오랜만에 맞아보는 눈, 부모님은 눈이 오면 길이 미끄럽고 불편한데 뭐가 좋냐면서 아직도 눈을 기다리는 내가 어리다고 하신다. 그래도 좋다, 나는 눈이 오면 여전히 설레이고, 그 눈을 맞으면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들이 모락 모락 피어오른다. 이상하게도 눈이 오면 매서운 추위마저 따뜻하게 느껴지고, 눈이 오는 그 순간 만큼은 왠지 사람들의 마음도, 세상도 조금은 더 아름다워질 것만 같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영국으로 떠나온 2005년도까지 살았던, 그리고 지금도 고향집이 있는 일산의 우리 동네, 10대 시절부터 수도 없이 지나 다녔던 동네의 그 길가에 하얀 눈이 쌓였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대학 시절에도, 군 복무 중 휴가를 나와서도, 대학 졸업 후 사회 생활을 할 때도 보았던 눈 쌓인 그 길가의 모습은 여전히 그대로인데, 그리고 나 또한 그 시절 그대로인 것만 같은데, 벌써 마흔이라는 실감되지 않는 나이를 향해가고 있다니, 도대체 언제 이렇게 세월이 흘러버린 것일까? 그 길은 여전히 그대로인데 그 길을 함께 거닐던 이들은 모두가 떠나버렸다. 고등학교 시절 함께 어울려 놀던 동네 친구들도, 청년부 시절 함께 교회를 다녔던 이들도 모두가 저마다의 삶을 찾아 떠나버렸고, 어느새 소식조차 알 수 없는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갔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영국을 떠나오기 전까지 한 교회만 다녔는데, 집에서 불과 도보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교회여서 교회 사람들과 동네에서 볼링도 치고, 떡볶이도 사먹는 등 참 많이도 어울렸다. 그런데, 이제 그 교회에 가보면 담임 목사님을 제외하고는 아는 얼굴이 단 한 명도 없다. 청년 시절에는 늙어서도 모두가 그 교회 안에서 함께 어울릴 줄 알았건만, 저마다 가정을 꾸리고 또 직장 관계로 여기 저기 흩어져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 자리에는 지난 날의 우리들처럼 눈부신 젊음을 뽐내는 청년들이 우리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이제는 마치 어린이들처럼 보이는 지금의 청년들, 아마도 그들은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젊음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것인지 모른 채 그 시절을 보내고 있겠지, 지난 날 우리들이 그랬던 것처럼. 아직 아무런 발자국도 나지 않은 눈 쌓인 길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치 모두가 떠나버린 길 위에 혼자 남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모두가 떠나버린 것은 비단 물리적으로 내가 살던 동네에서 떠나간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게다. 정서적으로도 다른 이들은 모두가 그 나이만큼 어른이 되어버린 듯 한데, 나만 혼자 영국으로 떠나오기 전 그 시절에 머물러 있는 듯 느껴질 때가 많다. 한창 어른이 되어야 할 시기에 어쩌면 나는 혼자 여행을 떠나왔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 여행을 통해 다른 이들이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경험하고, 그것들을 통해 다른 이들이 가질 수 없는 내면의 성장을 겪어왔지만, 나는 전형적인 한국 사회에서의 어른이 될 기회를 놓쳐버린 듯 하다. 하지만, 나는 그것에 감사하다. 모두가 다 어른이 되어야 할 의무는 없다. 어른이 되었다고 마냥 행복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어른이기에 포기해야 하는 행복들, 어른이 되면 더 이상 느낄 수 없는 행복들도 너무나 많다. 모두가 그렇게 어른이 되어 떠나가고 난 뒤 아무도 없는 그 길 위에 하얀 눈이 소복 소복 쌓이고, 나는 또 다시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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