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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8년 전이었던 2007년 1월, ‘서른 즈음에’라는 칼럼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저는 영국에서 언론 공부를 하던 유학생이었습니다. ‘서른 즈음에’에 실리는 기타를 들고 있는 제 사진은 무려
2005년 12월에 찍은 사진인데, 그냥 재미삼아
방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그런데, 이 사진이 8년 동안이나 신문에 실리고, 또 유럽 각국으로 연주를 다니며 공연 포스터에도 실리게 되다니
이 사진의 운명이 참 경이롭습니다. 기타를 들고 있는 사진과 함께 종종 공연을 다녀온 이야기를 쓰다보니 제가 전업 뮤지션인 줄 아시는 분들도 계시고, 또 신문에 글을
쓴다고 제가 신문사 직원인 줄 아시는 분들도 계시더군요. 하지만, 저는 2007년 여름 런던 시내에 위치한 일본계
헤드헌팅 서치펌에 입사하여 지난 7년 동안이나 헤드헌터로 근무했습니다. 즉, 저는 음악도 하고 글도 쓰지만 결국은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는 직장인으로서 삶의
가장 큰 부분을 할애해왔던 것이지요. 제가 헤드헌터면서 동시에 기타를 연주하는 뮤지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신 분들은 헤드헌터와 뮤지션이 도무지 매치가 되지
않는다고 하시지만, 한 편으로 저는 그 두 가지를 같이 할 수 있었음에 너무나 감사합니다. 마치 사람을 상품처럼 발굴하고 소개해서 성과를 내야 하는 헤드헌터의 세계에서 이성적이기만 하고 메마른 가슴으로 살았을
수도 있었는데, 또 철저히 실적에 죽고 실적에 사는 헤드헌터의 운명 속에서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렸을 수도 있는데, 다행히 음악을 병행하면서 감성을 간직할 수 있었고 그것을 통해 사람들과 가슴으로 소통할 수 있는 온기가 식지 않을 수 있었으며,
어떠한 스트레스도 말끔히 날려버리고도 남을 만큼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7년 동안이나 헤드헌터로 일하다 보니 어느새
저에게도 전문성이라는 게 주어지고 경력이라는 게 쌓이더군요. 더구나 유럽에서 근무하는 토종 한국인 헤드헌터라는
독특한 이력 덕분에 한국에서 강연도 하게 되었고, 정부 사업인 ‘K-Move’의 멘토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서른 즈음에’를 처음 쓰기 시작했던 유학생 시절, 그저 어떻게든 영국에서 취업만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으로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막막한 미래를 향해 설레임 반 두려움 반으로
하루 하루 꿈을 꾸며 지내던 게 엊그제 같은데, 정말 저처럼 별 볼 일 없는 사람에게는 너무나도 벅찰 만큼
감사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오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너무나 감사했고 행복했기에 다소 안주하려 하기도 했던 차, 지난 여름 중대한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직장인 헤드헌터로서의 시간들을 마무리하고, 이제는 독립하여 저만의 헤드헌팅 회사를
설립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철저히 이해관계에 의해 모든 게 움직이는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회사에 들어오고 나가는 것 또한 그 이해관계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제가 몸담았던
회사 역시 많은 이들이 이해관계에 의해 오고 갔으며, 특히 저처럼 취업비자가 걸려 있는 직원들은 영주권만
받으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 모두가 한두 달 내로 가차없이 회사를 떠났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영주권을 받고 나서도 일년
반 동안이나 변함없는 조건으로 회사를 다녔습니다. 제가 하는 일을 사랑했고, 직장생활을 통해 어떤 대단한 것을 바란 게 아니었기에 크게 불만을 가질 일도 없었고 크게 무언가를 욕망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여름 더 이상 일본인 경영진과 함께할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고, 모든 면에서 이제는 회사를 떠나 독립해야 하는 ‘타이밍’이라는 확신이 들게 되었습니다. 7년 동안이나 몸 담았던 회사를 떠난다는 것은 분명 쉬운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평생 사장이 될 것이라고는 단 한 번도 상상해본 적도 없는 제가 회사를 설립하고 경영한다는 것도 도무지 실감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예상치 못한 변화와 도전들은 우리 삶 곳곳에 숨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는 듯 합니다. 퇴사 후 6개월 동안은 경쟁사 재취업을 하지 않는 업계 불문율에 따라 저도 회사를 떠난 뒤 지난
6개월 동안은 공식적인 업무를 자제하고 회사 설립을 준비하면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6개월이 지나 자유롭게 다시 헤드헌터로 활동할 수 있게 되어 회사를 개업했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을 저 혼자 헤쳐나가야 합니다. 여전히 부족하기만한 제가 과연 이 엄청난 일들을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 그저 하늘의 도우심을 구하며 더 겸손히 더 성실히 나아갈 뿐입니다. 그래도 다행히 감사하게도 오랫동안 저를 지켜봐주신 고객사분들께서 여전히 저를 향한 믿음을 보여주셔서 결코 쉽지 않았을 첫 발걸음을
잘 디디고 있습니다. 저를 부르는 ‘사장님’, ‘대표님’이라는 새로운 호칭이 너무나 어색하기만 합니다. 저는 그냥 여전히 ‘헤드헌터’로 불리는 게 가장 편하고 좋습니다. 이전보다
더욱 따뜻한 가슴을 지닌 헤드헌터가 되겠다고, 이전보다 더욱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헤드헌터가 되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세월이 흐른 뒤 ‘서른 즈음에’를 통해 오늘 남긴 개업 인사를 다시
꺼내보고 이 순간들을 흐뭇한 미소로 추억할 수 있게 되길 바라며 힘차게 출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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