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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0 14:15
할아버지를 보내드리고
조회 수 1937 추천 수 0 댓글 0
2011년 7월 ‘할머니를 보내드리고’라는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당시 출근길에 한국으로부터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고 그날 저녁 급히 한국으로 출국해서 할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했었다. 그리고, 지난 금요일 저녁 한국에 계신 부모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할아버지께서 하늘나라로 떠나셨다는 소식과 함께. 불과 지난 달 구정 때 전화로 인사를 드렸을 때만 해도 너무나 멀쩡하셔서 이렇게 갑작스레 떠나실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금요일 저녁에 갑작스레 연락을 받았기에 어쩔 수 없이 토요일 저녁 비행기로 출국해야 했는데, 야속하게도 토요일 낮에 레딩(Reading) 지역에 위치한 한 영국교회에서 자선 콘서트가 예정되어 있었다. 원래는 지난 화요일에 할아버지께서 의식을 잃으셨다는 연락을 받고선 당장에라도 출국을 하려 했기에 이 콘서트를 취소하려고도 했는데, 다음 날 다행히 의식이 돌아오시고 음식물도 어느 정도 섭취를 하신다고 하셔서 당분간은 버티실 것으로 예측되어 당장 출국할 것 같지는 않았기에 그냥 콘서트는 예정대로 진행하려 했던 차, 예상과는 달리 불과 며칠 만에 갑작스레 돌아가셔서 이렇게 출국 직전에 콘서트를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 콘서트는 해당 영국교회에 출석하는 한국분이 주선하여 인근에 거주하고 계시는 외로운 노인분들을 위로하고 한국문화도 알리자는 취지로 작년에 성사된 것인데, 작년 콘서트 때 반응이 무척 좋아서 올해 또 다시 초청을 받은 것이었다. 콘서트가 시작되어 무대에서 관객들을 바라보니 작년처럼 이번에도 대부분이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 앉아계셨고, 당연히 나는 할아버지 생각이 너무 많이 나면서 할아버지께 너무 죄송하고 또 안타까웠다. 사실, 할아버지는 내가 이렇게 음악을 하는 줄도 모르시고, 당연히 내 음악을 들어보신 적도 없다. 유럽 곳곳을 누비며 연주를 하러 다니는데 정작 내 할아버지께는 내 음악을 들려드린 적이 없다니, 더구나 이렇게 노인들을 위한 자선 콘서트까지 하면서... 나의 불효가 너무나 원망스러웠고 마음이 아파왔다. 그러면서 오늘 이 콘서트는 할아버지께 헌정해드리기로 다짐하며, 마치 그 자리에 할아버지가 앉아서 듣고 계실 것 같은 마음으로 한 곡, 한 곡 정성을 다해 연주했다. 할아버지께서 살아계셔서 이 자리에 오셨다면 무대에서 음악을 선사하는 손주의 모습을 무척이나 자랑스러워 하셨을 텐데, 음악을 연주하는 내내 할아버지 생각이 하염없이 떠올랐다. 마지막 곡을 연주한 뒤 앵콜 요청을 받고 다시 무대에 앉아서 나는 관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제 저녁 한국에 계신 부모님으로부터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저는 장손으로서 할아버지의 장례식에서 해야 할 역할이 있는데, 갑작스런 연락에 어제 저녁에 출국하지 못했고 오늘 이 공연을 마치고 출국합니다. 앵콜곡은 할아버지를 위해 연주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서 ‘Give Thanks(거룩하신 하나님 주께 감사 드리세)’를 앵콜로 연주했다. 내가 할아버지의 가시는 길에 드릴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었다. 공연을 마친 뒤 관객들은 나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냈고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박수를 보내주었다. 곧장 공항으로 가기 위해 차에 시동을 걸었는데 마침 할아버지 관객이 손주들과 함께 손을 잡고 집으로 향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내 마음은 또 다시 뭉클해졌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장례식장으로 향했고, 영정사진 속의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렸다. 이미 장례식 막바지라 대부분의 손님들이 다녀가신 상황, 나는 너무 늦게 왔다. 도대체 그 잘난 영국살이가 뭐랍시고 나는 이렇게 할아버지께 죄송한 모습으로 나타나야 했을까? 사실, 나는 할아버지와 가까운 사이가 아니였다. 더 솔직히는 어렸을 때는 할아버지가 이해되지 않았고 심지어 할아버지를 싫어한 적도 많았다. 할아버지는 적어도 겉으로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분이 아니셨고, 또 편안한 분도 아니셨다. 많은 이들이 할아버지로부터 상처를 받았고, 그렇게 많은 이들이 멀어져가면서 할아버지는 외로운 노년을 보내셨다. 자수성가하신 할아버지는 은행 지점장까지 지내셨고, 철저히 이성적이시면서 평생을 시계처럼 정확하게 사신 분이셨다. 술을 참 좋아하셔서 세 끼 식사 때마다 반주를 하시지만, 딱 정해진 양을 단 한 번도 어기신 적이 없을 만큼 절제력이 강하신 분이었다. 그런 할아버지로부터 도대체 어떻게 나처럼 철저히 감성적이고 충동적인 손주가 나왔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내가 할아버지를 이해하게 되고 애틋한 마음이 생긴 것은 불과 몇 년 전이었다. 할아버지만의 표현 방식이었을 뿐, 그 마음은 충분히 따뜻하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아무리 할아버지와 내가 안 맞는 면이 많다고 해도 결국 우리는 가족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결국은 흐르는 세월에 그 모든 감정들이 녹아내리고 결국은 사랑만이 남는다. 발인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면서 속으로 이렇게 말씀드렸다, “할아버지의 손주답게 열심히 멋지게 살 테니 제 모습 지켜봐 주세요!” 이제 나는 친가에도 외가에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한 분도 안 계신다. 그리고, 아무리 부인하고 싶어도 이제 그 다음은 나의 부모님 차례가 다가올 것이다. 그 날이 오면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려야 할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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