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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영화 속의 눈 이야기에 이어 예고한대로 이번 주에는 ‘비’ 이야기 이다. 스크린 가득한 빗소리와 함께 잊지 못할 장면들을 담고 있는 몇 편 영화 속의 비 내리는 풍경 속으로…

<사랑은 비를 타고>
진 켈리가 비가 오는 도시의 거리에서 연인를 바래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I’m singing in the rain”을 부르며 우산을 들고 춤을 추는 장면은 아마도 뮤지컬 영화 팬 뿐만 아니라 모든 관객들에게 잊지 못할 따스한 명장면으로 기억될 것이다. 후에 이명세 감독의 우리 영화 ‘남자는 괴로워’를 비롯 수많은 영화들에서 이 장면을 패러디 했지만 역시 본작의 낭만과 감동에는 못 미친다. 당대 최고의 뮤지컬 배우인 진 켈리의 환상적인 탭댄스를 비롯 영화 속 배경 또한 영화인 이 작품은 당시 무성 영화에서 유성 영화로 넘어가는 시기에 영화의 정의에 대해 묻는 깊이 있는 주제 또한 담고 있는 수작이다. ‘사랑은 비를 타고’라는 제목은 ‘Singin’ in the rain’이라는 원제를 국내 개봉제목으로 바꾼 것인데 아마도 한국에서 개봉된 외국 영화 중 유일하게 원제를 오리지널 보다 더 잘 번안한 제목인 것 같다.

<세븐>
지금은 너무나 빅스타가 되어버린 브래드 피트를 국내에 본격적으로 알린 작품으로 뮤직비디오 전문인 데이빗 핀처 감독의 세련된 영상미학과 치밀한 극 전개, 브래드 피트와 모건 프리만의 환벽한 연기가 조화를 이룬 범죄스릴러의 걸작이라 할 만하다. 물론, 범인으로 등장하는 케빈 스페이시의 연기는 말할 필요 없이 최고. 영화의 내용에 걸맞는 암울한 필름 느와르의 분위기를 내기 위해 영화전반에 걸쳐 비가 내리고, 어둡고 먼지 쌓인 화면을 통해 영화가 담고 있는 세기말적인 메시지를 표현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의 비는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를 내는데 한몫 단단히 하고 있다.

<하드레인>
말 그대로 제목 자체가 하드레인(hard rain), 즉 소나기 이다. 특별히, 이 영화가 괜찮은 액션영화임에도 한국 관객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재미있는 사연이 있다. 이 영화가 개봉되었던 1998년 여름은 나라가 온통 수해로 난리였고, 영화 내내 비가 오고 마을이 물에 잠기며 심지어 댐까지 터지는 이 영화는 완전히 흥행에 참패했던 것이다. 영화는 ‘트루 로맨스’의 크리스찬 슬레이터가 ‘세븐’에 이어 출연한 모건 프리만과 함께 현금 수송차량을 탈취한 악당들과 폭우로 고립된 마을에서 추격적을 벌이는 내용으로 나름 볼만한 액션물이다.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 비가 퍼붓는 몇 안되는 영화이다.

<번지점프를 하다>
이병헌과 고 이은주가 출연한 로맨스물로 사랑하던 여자친구가 죽어 남자의 몸으로 환생해서 서로를 알아본다는 다소 독특한 소재를 다룬 작품으로 마지막 두 주인공이 번지점프를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영화. 짜임새 있는 화면과 두 주연배우의 훌륭한 연기, 장면마다 어울리는 음악, 특히 영화 오프닝에서 두 주인공이 비 오는 거리에서 우연히 우산을 나눠 쓰며 만나게 되는 장면에서 내리던 비, 영화는 후반 여주인공 태희가 우연이 아니라 사랑의 감정에 이끌려 의도적으로 인호에게 다가갔음을 암시하며 다시 이 비 오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 영화 속에서 비는 사랑의 감정을 더욱 따스하게 만들어주는 아름다운 장치로 사용되고 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이명세 감독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가져다 준 그의 영상미학을 극대화한 걸작 형사액션물. 비지스의 ‘Holiday’가 흐르는 가운데 벌어지는 계단신과 함께 영화 라스트에서 범인 안성기와 형사 박중훈이 퍼붓는 빗속에서 진흙탕을 뒹굴며 벌이는 처절한 액션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 이후 영화 ‘매트릭스’ 3편에서 이 장면을 표절했다는 논란도 불러일으켰다. 국내 감독 중 가장 미장센에 뛰어난 감독으로 손꼽히는 이명세 감독의 최고 걸작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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