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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09 21:23
그들의 21세기 연출작을 기다리며 (2) 배창호
조회 수 1944 추천 수 0 댓글 0
지난 시간 소개했던 이장호 감독과 함께 80년대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주목할 인물이 있다면 바로 오늘 소개하는 배창호 감독일 것이다. 특히, 대학 시절 연극을 했지만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던 배창호 감독의 영화 입문 계기가 바로 이장호 감독의 ‘바람 불어 좋은 날’, ‘어둠의 자식들’에서 조감독을 거치면서라는 점에서 이 둘은 상당한 인연을 갖고 있다. 이장호 감독의 영화를 통한 80년대 사회 투영 의식은 배창호 감독의 영화 세계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1982년 드디어 직접 각본을 쓴 첫 연출작인 ‘꼬방동네 사람들’을 내놓으며 단번에 주목을 받았다. 감독 데뷔작이라고 하기에는 훌륭한 연출 감각과 작품 전반에 스며든 사회상, 그리고 김보연, 안성기가 펼치는 뛰어난 연기까지, 어느 면에서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었다. 1983년도에는 본격적으로 최인호의 원작소설, 안성기 주연, 배창호 감독의 환상적인 트리오로 만들어진 영화들이 선보인다. 이는 이장호 감독이 데뷔작인 ‘별들의 고향’을 통해 최인호의 원작 소설에 힘입었음에도 점차 최인호 원작으로부터 탈피해 갔던 데 비해 상반되는 행보였으나, 최인호의 원작은 배창호의 연출에 더 잘 어울렸던 듯싶다. 83년 ‘적도의 꽃’으로 다시 한 번 좋은 평을 받은 뒤, 84년은 배창호 감독의 연출세계의 전성기였다. 이 해에는 ‘깊고 푸른 밤’, ‘고래 사냥’,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 이렇게 세 작품이나 연출했음에도 ‘깊고 푸른 밤’, ‘고래 사냥’과 같은 배창호 감독의 최고 작품들이 탄생한 해였다. 역시 최인호의 원작인 ‘깊고 푸른 밤’은 당시로서는 낯설었던 이민 생활을 다루었으며, 배창호가 연출한 에로티시즘을 선보였고, 안성기와 장미희는 최고의 연기를 선보였다. 이 작품은 흥행과 비평 모두 성공을 거두었고, 제24회 대종상 주요부문과 제30회 아태영화제 그랑프리와 각본상을 수상했다. ‘고래 사냥’ 역시 당시로서는 모험과 다름없던 가수 김수철을 기용, 또한 이미숙을 본격적으로 배우로 성장시킨 작품으로, 당시 젊은 층의 사랑을 받으며 흥행에서도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 두 작품에서 워낙 훌륭한 성과를 거두어서인지, 역시 명작가인 박완서의 원작을 영화화한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 다소 밋밋한 작품으로 남았다. 85년도에는 손창민과 강수연을 기용해 ‘고래 사냥 2’를 내놓았으나 전편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작품으로 비평, 흥행 모두 쓴 잔을 마셨다. 그리고, 86년에 내놓은 ‘황진이’는 배창호 감독의 의외의 행보로 여겨지면서, 다소 내러티브가 약한 배창호의 약점을 노출시켰으나, 빼어난 영상미로 현상 유지를 했던 작품이었다. 87년에 연출한 ‘기쁜 우리 젊은 날’은 배창호 감독 특유의 경쾌한 멜로물을 선보이면서 다시 한 번 흥행에 성공한 작품. 같은 해 연출한 ‘안녕하세요 하나님’은 ‘고래 사냥’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으로, 사실 ‘고래 사냥 2’보다 더 ‘고래 사냥’의 속편처럼 여겨지는 작품이다. 혼란스러운 사회상을 반영하듯 로드무비의 형식을 통해 사회를 향한 시선을 담아내고 있으며, 안성기의 뇌성마비 연기가 훌륭했던 작품. 이렇게 사회 의식, 작가성, 흥행성을 두루 갖추며 80년대 한국 영화계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배창호 감독은 90년대를 맞이하면서 아쉽게도 80년대의 감각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 91년에 내놓은 ‘꿈’과 ‘천국의 계단’은 비평과 흥행 모두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불안한 조짐을 보였다. 3년 간의 휴식 끝에 94년 당시 청춘 스타로 떠오르던 이정재의 영화 데뷔작인 ‘젊은 남자’를 내놓으며, 현대 사회의 방황하는 젊은이의 모습을 짜임새 있게 그려내며 흥행에서도 제법 성과를 거두었다. 96년 내놓은 ‘러브 스토리’는 실제 부인인 김유미와 배창호 감독 자신이 주연하여 말 그대로 본인의 러브 스토리를 담아내면서, 특유의 따스한 감성과 유머를 선보였으나, 이 때부터 대중들과의 소통 보다는 자신만의 영화세계에 빠져 들면서 흥행에서는 재미를 보지 못했다. 이후 ‘정’, ‘흑수선’, 그리고 마지막 작품인 2004년 작 ‘길’까지 배창호 감독은 21세기 들어서 80년대의 깊은 사회의식과 대중성으로 대표되던 것과는 달리, 자신만의 영화세계를 선보이며 작가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흥행에서는 이미 멀어진 탓에 이제 대중들은 그를 인식하지 못하지만, 그는 분명 우리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감독 중 한 명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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