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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화제가 되었던 우리 영화 ’미인도’를 드디어 보게 되었다. 같은 소재를 소설과 드라마로 만든 ‘바람의 화원’이 이미 상당한 인기를 끌었지만, 이를 전혀 접하지 않은 필자로서는 100% 순수한(?) 시각으로 ‘미인도’를 감상할 수 있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아직 이 영화를 관람하지 못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만큼, 이후의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영화를 이미 관람한 분에 한해서만 읽으시는 게 좋을 듯 하다.

이 영화는 모두가 알다시피 조선 후기의 대표적 화가로 꼽히는 혜원 신윤복이 여자였다는 가설에 기반을 두고, 영화에서는 그의 스승으로 등장하는 김홍도와 신윤복의 미묘한(?) 관계, 그리고 신윤복과 사랑에 빠지는 인물 강무, 김홍도를 사모하는 기생 설화를 둘러싼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일단, 칭찬부터 하자면 이 영화의 영상은 상당히 뛰어나다. 우리 나라에서 어떻게 저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낼 수 있을까 하는 감탄이 나올만큼 로케이션이 뛰어나다. 그리고, 미술, 색감, 소품을 비롯한 고증, 영상 기법도 흠 잡을 곳 없이 세련되었다. 특히, 신윤복과 강무가 선보이는 러브신은 상당히 수위가 높은 수준임에도 너무나 세련된 영상에 담겨 아마도 우리 영화 사상 가장 뛰어나다는 평이 아깝지 않을만큼 인상적인 러브신을 선보이고 있다.

그러나, 딱 여기까지다. ‘바람의 화원’으로 증폭된 신윤복이라는 인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이미 형성되어 있는 상태에서 이 영화가 내세울 수 있는 것은 그저 빼어난 영상미 하나 뿐이었다는 것이다. 영화는 몇 개의 주요 플롯을 지니고 있는데, 아쉽게도 어느 것 하다 안정적인 설득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일단, 영화 초반 그림을 잘 그리는 신윤복이 자살한 오빠를 대신해 아버지의 강요에 의해 남장을 하고 화인의 길에 들어서는 과정은 남장 여자로서 신윤복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영화의 근본적인 플롯이다. 그러나, 신윤복이 남장을 하면서까지 그러한 운명에 처하게 되는 과정이 너무 빈약하다.

영화는 곧 성인 신윤복으로 넘어오지만 어린 소녀에서 성인 남장 여자로 훌쩍 건너뛴 설득력의 공백으로 인해 성인 신윤복에게서는 정체성의 갈등이나 아니면 그림에 대한 신념이든, 그 어떤 것도 명확치 않은 애매함만이 느껴진다. 그녀는 과연 어린 소녀에서 성인으로 성장하는 동안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어떤 과정을 겪은 것인가? 여기서 별안간 강무라는 훈남이 등장하여 신윤복의 마음을 사로잡고, 여성으로서의 자아를 되찾게 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걸핏하면 포졸들과 주먹질을 하는 이 매력남(?)은 현실성이 없는 인물로 쉽게 공감이 되지 않는다.

신윤복이 그림의 세계에 새롭게 눈뜨고, 또 강무와의 사랑을 통해 여성으로서의 자아를 새롭게 발견하는 과정을 동시에 보여주려 했던 시도는 좋았지만, 너무 다양한 플롯을 동시에 풀어보려다 보니 내용이 전개되도 공감은 되질 않는다. 게다가 김홍도라는 인물도 상당히 혼란스럽다. 어린 시절 신윤복을 제자로 받아서 성인이 될 때까지 함께 해 왔는데, 갑자기 강무가 등장하여 신윤복이 여성성을 깨닫고 사랑에 빠지자 이에 김홍도가 돌변하여 신윤복에게 욕정을 발휘하는 모습은 어리둥절하다. 그는 진정 오래도록 신윤복을 아끼면서 속으로 사랑을 품어왔던 것인가, 아니면 갑자기 강무의 등장에 질투의 화신이 된 것인가? 그가 강무를 신윤복으로부터 떨어뜨려 놓으려고 독화살까지 쏘는 것은 신윤복의 그림세계를 펼쳐주기 위함인가, 아니면 본인이 신윤복을 차지하기 위함인가?

강무가 김홍도의 독화살에 사망하고 이에 절규하는 신윤복의 모습은 짠한 느낌이 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여자를 모르시는 군요, 아니면 사랑을 모르시나?'라는 대사를 흩날리는 설화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그런데도 영화를 보고 나면 과연 각 등장 인물들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그들이 왜 그렇게 얘기하고,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가 공감이 되지 않는다. 상황 상황 간 설득력의 공백이 너무 크다. 당연히 신윤복과 그의 그림 세계에 대한 흥미로움이나 감동 역시 별로 남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신윤복, 김홍도, 그리고 그들의 그림을 소재로 삼았지만, 결국은 신윤복이라는 인물은 설정에 머무를뿐, 실질적으로 신윤복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는 않다는 느낌이 든다. 이 영화의 마케팅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한 에로티시즘 역시 김민선이라는 상쾌한 배우의 영화 첫 주연과 파격 노출이라는 점 외에는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다. 사실, 그녀는 너무나 여성스런 얼굴을 지닌 탓에 남장 여자라는 설정에는 안어울린다.  물론, 그녀는 충분히 아름답고 이 영화에서 좋은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그러나, 신윤복이라는 매력적인 인물을 맡아서 열연을 했음에도 그 만큼의 효과를 창출하지 못한 것은 시나리오와 감독의 한계 때문이리라.

강무 역의 김남길과 설화 역의 추자현의 연기는 그럭 저럭 합격선이다. 그런데, 김홍도 역의 김영호는 정말 미스 캐스팅이었다. 시나리오 상 워낙 김홍도라는 인물이 잘못 그려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코믹함과 산적같은 우락부락함이 공존하는 김영호의 마스크와 음성은 안 그래도 잘못 그려진 김홍도라는 인물을 더욱 애매하게 만들어 버렸다.

유사한 부류의 작품으로 볼 수 있는 ‘스캔들: 조선남여상열지사’에는 있는데 ‘미인도’에는 없는 것, 바로 그것이 ‘미인도’를 아쉽게 만든 요인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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