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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3 05:40
김성홍 감독의 스릴러 감각이 실종된 영화 ‘실종’
조회 수 6249 추천 수 0 댓글 0
작년에 ‘그들의 21세기 연출작을 기다리며 (7) 김성홍’ 편을 통해 소개했던 김성홍 감독의 신작 ‘실종’을 드디어 보게 되었다. 당시 소개한 바와 같이 김성홍 감독은 90년대 우리 영화계에서는 드물게 스릴러 전문 감독으로 ‘손톱’, ‘올가미’와 같은 훌륭한 작품들을 연출했으나, 한동안 작품을 내놓지 못했던 바 있다. 그랬던 김성홍 감독의 신작 ‘실종’은 2007년 여름 전남 보성에서 발생한 어부 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즉 실제사건에 바탕을 둔 스릴러라는 점에서 충분히 기대를 갖게 했다. ‘살인의 추억’, ‘그놈 목소리’, ‘추격자’ 등 실제사건에 바탕을 둔 스릴러들이 대부분 상당히 좋은 결과를 냈던 만큼, 이번 ‘실종’ 역시 그 뒤를 있는 기대작이었다. 그런데, 막상 접하게 된 ‘실종’은 실제사건에 모티브를 두었다기 보다는, 전혀 별개의 작품으로 봐야 할 듯 하다. 물론, 마지막 장면에 두 명의 여대생을 배에 태우게 되는 노인의 모습이 실제사건을 연상시키지만, 영화는 전체적으로 그것과는 아무런 상관 없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젊은 여성 현아는 우연히 시골의 어느 양계장 겸 백숙을 제공하는 곳을 방문하고, 홀로 노모를 모시며 그곳을 운영하는 판곤에게 감금된다. 판곤은 겉으로는 평범한 인물이지만, 실은 변태 살인마로, 현아에게 계속해서 고통을 가한다. 한편, 현아의 언니 현정은 마지막으로 현아와 통화한 지역을 추적, 판곤의 거처가 있는 마을로 찾아오고, 동생 현아를 찾기 위한 추격을 벌인다. 그러나, 현아는 이미 잔혹하게 살해당하고, 현정 역시 판곤에게 감금되는 위기에 처하는데... 일단, 영화의 기본 줄거리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그리고, 어딘가 ‘추격자’에서 경험했던 숨막히는 스릴과 추격을 기대하게 만드는 내용이다. 그런데, 의외로 영화는 현정의 추격에 초점을 두었다기 보다는, 판곤의 만행(?)에 더 큰 비중을 두는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즉, 이 영화는 심리를 자극하는 스릴러보다는 오히려 시각을 자극하는 고어물에 가깝다는 인상을 준다. 판곤 역을 맡은 문성근의 연기는 훌륭하다. 이미 이전에도 비슷한 이미지의 연기를 선보였던 만큼, 그가 연기하는 인물 판곤은 상당한 리얼리티와 함께 공포감을 자아낸다. 그러나, 판곤의 만행을 보여주는 장면들은 스릴러물로서는 너무나 잔인해서 오히려 득보다 실이 더 크다. 솔직히 어설프게 박찬욱 감독의 사실적인 폭력묘사나 잔혹묘사를 따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김성홍 감독은 잔혹묘사로 인정받은 스릴러 전문 감독이 아니었다. ‘손톱’은 아무것도 누리지 못하는 친구가 모든것을 누리게 된 친구를 질투하고, 증오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고, ‘올가미’는 고부갈등이라는 소재와 마마보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접목시킨 영화였다. 즉, 개연성과 상황 설정, 그리고 인물들의 심리 묘사에서 상당히 공감할 수 있는, 또 한국적인 소재들을 잘 접목시킨 스릴러가 바로 김성홍 표 스릴러였다. 그런데, 이번 ‘실종’에서는 그와 같은 공감대 형성보다는 그냥 처음부터 무자비하고 변태적인 정신 이상자를 전면에 내세워, 그가 벌이는 만행들에 영화의 대부분을 할애하는 모험을 시도한 것 같다. 중요한 것은 가장 잔인한 것이 가장 무서운 것, 또 긴장감을 자아내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결국, ‘실종’은 잔인한데 무섭지는 않고, 사실적인데 긴장이 되지 않는다. 차라리 판곤의 만행은 적당한 암시로 남겨놓고, 오히려 현정의 추격 과정을 보다 짜임새 있고, 강도 높게 다루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감독의 비중이 판곤의 만행에 실려 있으니, 당연히 추자현이 연기하는 현정이라는 인물이 약하게 그려진다.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사생결단’에서 훌륭한 연기를 선보이며 새롭게 도약했던 추자현이 아쉽게도 ‘실종’에서는 그저 조연에 불과한 수준에 머물고 있는 점이 안타깝다. 남이 아닌 친동생의 실종을 추격하는 만큼, 어쩌면 ‘추격자’의 김윤석 보다 더 강하고 뜨거운 에너지를 선보일 수 있었던 설정이었는데, 판곤의 만행에 비해 현정의 추격이 분량도 짧고, 추격 과정도 단편적인데다 감정도 약하게 들어간 탓에, 정말 동생을 찾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게다가 영화의 결말에서 현정이 판곤에게 똑같은 응징(?)을 했다고 암시하면서, 악독해진(?) 현정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다. 아쉽지만 김성홍 표 스릴러를 다시 만나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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