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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들의 영화 출연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래 한 시대를 풍미하는 흑인 배우가 항상 존재해 왔던 것 같다. 일단, 흑인 최초로 아카데미를 수상 하면서 모든 흑인 배우들의 영원한 우상으로 남게 된 자타공인 명배우 시드니 포이티어를 필두로, ‘비버리힐즈 캅’ 시리즈로 흑인도 고액 출연료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에디 머피, 설명이 필요 없는 덴젤 워싱턴, 모건 프리만, 윌 스미스 등. 오늘 소개하는 배우는 이러한 흑인 배우들 가운데 가장 ‘배우열전’에 어울리는 배우라 여겨지는 배우, 바로 로렌스 피쉬번(이하 로렌스)이다.

배우열전의 취지가 누구나 연기력, 명배우 하면 떠올리는 그런 공식(?) 배우들 말고, 다소 일반 관객들에게 이름이나 지명도는 약하지만,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개성과 에너지로 화면을 장악하는 배우들을 소개하는 것이다 보니, 오늘 소개하는 로렌스도 이름만 들어서는 대부분 ‘누구지?’하는 의문이 들 것 같다. 그를 가장 대중적으로 널리 알린 작품은 바로 ‘매트릭스’, 그렇다, 그는 바로 ‘매트릭스’에서 네오(키아누 리브스)의 스승과도 같은 모피어스 역을 연기했던 배우다. 워낙 타고난 강렬한 인상과 분위기를 간직한 배우인 까닭에, 그의 존재감은 역할의 비중이나 출연 분량과 상관없이 까닭모를 묵직함을 남겨왔다.

어렸을 적부터 연기자 지망생이었던 로렌스는 15세가 되던 1979년, 운좋게도 거장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눈에 띄어 대작 '지옥의 묵시록'에서 어린 GI역으로 출연하면서 영화배우로 데뷔하였다. 비중이 큰 역할은 아니었으나, 로렌스가 지닌 배우로서의 강한 개성과 성장 가능성을 파악한 코폴라 감독은 이후 '병사의 낙원', '코튼 클럽', '럼블 피쉬'와 같은 자신의 작품들에 꾸준히 로렌스를 캐스팅하여 그를 훌륭한 배우로 성장시키는 일등공신이 되었다. 그럼에도 로렌스가 출연한 코폴라 감독의 작품들이 유난히 코폴라 감독의 작품 치고는 평작에 그쳤던 까닭인지 그 이후로는 코폴라와의 인연이 더 이상 이어지지는 않았다.

코폴라와의 작업을 마치고 나서는 특별히 좋은 작품을 만나지 못해 80년대 중후반에는 그저 그런 영화들에 출연했다. 1991년에는 저 유명한 존 싱글톤 감독의 ‘보이즈 앤 후드’에 출연하기도 했으나, 이상하리만치 그는 흑인을 대표하는, 혹은 흑인 문제를 진지하게 대변하는 배우로서의 이미지는 갖지 못했다. 아마도 이것은 그의 강렬한 무게감으로 인해 오히려 그가 다른 배우를 능가하는 에너지를 보인 까닭에서, 흑인 대표 배우로 각인되는데는 어울리지 않았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러던 중 1993년 출연한 티나 터너의 일생을 그린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에서 비중 있는 조연 아이크 터너 역을 훌륭하게 소화하면서 아카데미에 후보로 오르면서 드디어 연기력을 본격적으로 인정받기에 이른다. 사실, 로렌스는 이 외에도 TV 영화 ‘The Tuskegee Aimen’로 골든 글로브 및 에미상에도 후보로 올랐으나 이상하게도 상복이 없어서 아직 수상 경력은 없다.

이후 1997년 SF 스릴러물인 ‘이벤트 호라이즌’에서도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이더니, 드디어 1999년 워쇼스키 형제가 연출한 설명이 필요없는 걸작 ‘매트릭스’ 시리즈를 통해 배우 인생에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 외에도 로렌스는 개성 강한 중후한 목소리로 ‘판타스틱 4’에서 실버서퍼의 목소리를 연기하기도 했다.

사실, 로렌스는 외모를 비롯 그 개성이 지나치게 강한 까닭에 다양한 연기 변신을 선보이는 배우는 아니다. 보통 예리하고 다소 위압감마저 풍기는 형사 역을 맡았을 때 어딘가 상당히 어울리는 느낌을 발산해 왔다. 강렬한 눈빛과 굵은 음성, 그리고 표정에서 풍겨오는 진지함과 날카로움이 그의 다양한 변신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로렌스의 경우는 자신의 느낌으로 배역을 흡수시키는 성격파 배우로 분류되어야 할 것 같다.

아직 주연급으로 화려한 대접을 받는 배우도 아니고, 전형적인 연기파 배우로 인정받는 것도 아니지만, 로렌스만이 선보일 수 있는 강렬한 연기는 오래도록 관객들의 뇌리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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