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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9 05:05
평범한 중산층의 추락, 폴링 다운(Falling Down)
조회 수 3776 추천 수 0 댓글 0
중학교 시절 한 편의 헐리우드 영화가 한국인 비하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영화의 배경은 미국으로, 주인공인 백인 남성이 한국인 가게에서 소동을 일으키며 한국과 한국인을 비하하는 대사를 했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당시 이 영화는 인종차별, 백인우월주의를 담고 있다는 논란과 함께, 결국 제작된 지 3년이 지나서야 우리나라에서 개봉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훗날 이 영화를 비디오로 감상하게 되었는데, 실제로 영화를 보니 물론 한국인을 비하하는 부분은 유쾌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이 영화는 인종차별, 백인우월주의와는 상관없는, 제법 잘 만들어진 영화였다. 이 영화를 처음 본 게 아마 대학교 1학년 때였던 것 같은데, 얼마전 문득 이 영화가 떠올라서 10년 만에 다시 보게 되었다. 이제는 성인이 되어서, 사회와 세상에 대해 보다 많은 것을 배우고 나서, 특히 경기침체로 인해 전 세계가 우울한 이 시점에서 다시 감상한 영화 ‘폴링 다운(Falling Down)’은 참 많은 것들을 느끼게 했다. 어쩌면 이 영화는 현재 우리들이 처한, 특히 미국이나 영국의 토박이 백인 중산층들이 처한 위기를 이미 십수년 전에 예측하고 있었던 것 같다. 영화는 정말 보기만 해도 짜증이 밀려오는, 그래서 폭발 직전에 이른 주인공 빌의 모습을 비추며 시작된다. 찜통 더위 속에서 LA로 들어서는 도로는 정체가 되어 꼼짝을 하지 않고, 자동차 경적소리, 사람들의 고함소리, 어린이들의 장난소리가 정신없이 들려온다. 주인공 빌은 흰색 와이셔츠에 넥타이 차림이지만, 그는 근무했던 방위산업체에서 해고당한 신세다. 하필 그의 차량은 에어컨도 고장이 났고, 그대로 있다가는 미쳐버릴 것 같은 빌은 차를 버리고 뛰쳐나와 걷기 시작한다. 그의 차량 번호판의 단어 Defence(방어)는 지금 바로 주인공 빌의 상황을 상징하고 있다. 빌은 걸어서 이혼한 아내와 어린 딸을 향해 긴 여정을 떠난다. 불행히도 그는 아내에게 이혼당한 후 법원으로부터 접근금지 처분을 받은 상태. 그럼에도 어린 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자신을 반기지 않는 가족을 향해 떠나는 빌은 자본주의, 이민사회 미국의 어두운 단면들을 하나씩 마주치게 된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 동전을 바꾸러 들어간 한국인 상점, 불친절한 한국인 주인과 시비가 붙은 빌은 그로부터 야구 방망이를 빼앗고, 미국이 한국을 그렇게 도와 주었는데도 왜 자신이 한국인에게 이렇게 못난 대접을 받아야 하냐며 가게를 부순다. 죽어라 일하면서 미국에서 악착같이 돈을 벌고 살아가는 동양인 이민자들을 바라보는 미국인들의 시선이 여기서 드러난다. 이어서 마주친 히스패닉계 불량배들, 빌은 자신에게 칼을 들이대고 위협하는 이들을 야구 방망이로 때리고 이들은 총을 가져와서 빌을 죽이려 하나 결국 사고로 자신들이 죽고, 빌은 이들이 가져온 총이 가득 든 가방을 들고 사라진다. 이후 빌은 페스트푸드점에 갔다가 불과 몇 분이 지났다는 이유로 아침 메뉴를 거절당하기도 하고, 동성애자를 혐오하고 극단적인 공격성을 보이는 나치주의자를 만나기도 하며, 그 와중에도 여유롭게 골프를 치는 유태인 부유층과 마주치기도 하고, 우연히 들어간 대저택이 성형외과 의사의 집이라는 얘기를 들으며 황당해 하기도 한다. 바로 그날 은퇴하는 노형사 프렌더개스트는 우연히 빌의 정체를 파악하고 그를 추적한다. 우여곡절 끝에 아내와 딸 앞에 모습을 나타낸 빌, 그러나 가족들은 그를 반기지 않는다. 결국 프렌더개스트의 총에 맞고 다리 아래로 추락해 생을 마감하는 빌, 결국 평범한 미국 백인 중산층의 추락(Falling Down)이다. 빌의 여정 중 어느 금융기관 앞에서 한 흑인이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붙잡혀가는 장면이 참 인상적이다. 그는 자신이 ‘Not Economically Viable’, 즉 경제적으로 무능하기 때문에 대출을 받을 수 없다며 자신을 잊지 말아달라고 호소한다. 신용경색과 경기침체로 경제적 능력과 신용 기록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현대인들의 자화상이 십수년 전 영화에 이미 담겨있었던 것이다. 이 영화는 보고 난 느낌이 결코 유쾌하지 않다. 그럼에도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고민과 갈등을 곱씹어볼 수 있는 의미있는 작품이다. 지금 이 순간 우리도 주인공 빌처럼 추락의 위협 속에서 Defence(방어)가 필요한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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