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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6 01:14
<문화현장/ 영국 사람들의 이야기 2> 인형의 집에 버려진 이본느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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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현장/ 영국 사람들의 이야기 2> 인형의 집에 버려진 이본느의 꿈 1. 또 먼 길을 돌아왔다. 뻔히 보이는 길도 나는 곧잘 빙빙 돌며 목적지 근처를 배회하다 대인다. 결과 보다는 과정을 중요시 하는 습관도 한 몫을 거들지만 난 리스크-테이커(Risk taker)다. 쉽게 올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음에도 빙빙 돌아 저녁에야 웨일즈의 산골 마을에 도착했다. 예전에는 아주 번성했던 광산촌의 작은 시였지만 지금은 그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산등성이 위 노천광산에는 이미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있고 폐허가 된 시설물들이 녹이 슨 채로 버려져 있다. 마을 한 가운데 버려진 거대한 회관만이 40여 년 전 한 때 번성했던 탄광촌이라는 것을 겨우 증명해 주고 있다. 이본느가 늘 꿈꾸듯이 그리워하며 자랑하던 그녀의 생가 앞에 나는 서 있다. 시골 약국집의 무남독녀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집이다. 코티지(cottage)라는 낭만적인 이름과 달리 큰길가에 맞대고 있는 그녀의 생가는 낡고 퇴락해 보였다. 그대로 드러낸 시멘트벽에 함께 버물려 밖인 굵은 모래들이 문지르면 떨어질 정도로 빗물과 바람에 씻겨 있다. 허리를 굽혀 들어가야 할 정도로 작은 출입구의 현관문도 페인트가 벗겨져 아주 초라하게 보인다. 나는 이본느가 챙겨준 열쇠로 따고 낯 선 실내로 들어간다. 2. 좁은 입구에는 이본느와 알란의 장화와 비옷이 걸려있고 이 층으로 가는 낡은 나무 계단이 보였다. 호주머니에서 이본느가 적어준 그녀의 집 사용 설명서를 꺼냈다. 내가 거처를 해야 할 방은 2층이다. 짐을 현관에 내려놓은 채 거실로 가는 작은 쪽 문을 밀고 들어간다. 순간 묘한 냄새가 엄습한다. 출입구의 맞은편에는 거대한 벽난로가 있고 입구의 옆 벽에는 작은 진열장과 이본느의 의자가 놓여있었다. 나는 두 개의 의자 중의 진열장 옆에 놓여있는 의자가 이본느의 의자라는 것을 바로 직감했다. 옆의 탁자에 놓여있는 전화번호부, 그리고 앉으면 TV를 마주보고 작은 CD플레이어를 작동하도록 되어있다. 무엇보다도 확신한 것은 남편인 알란 박사 중심이나 두 부부사이의 절충이 아닌 그녀 중심으로 모든 것이 놓여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섰기 때문이다. 진열장 안에는 여러 개의 작은 사진 액자와 영문학과 신학에 관계된 서적들이 꽂혀있었다. 사용하지 않는 벽난로 옆, 출입구 정면을 바라보고 배치되어 있는 의자는 그녀의 남편인 알란 박사의 자리가 분명했다. 이본느와 좀 떨어진 체 적당한 간격이 벌어져 있고 시선을 서로 마주 보게 되지 않아도 되는 자리다. 런던 그들의 사택에도 비슷한 위치로 놓여있고 그들의 관계도 항상 그렇게 가고 있는 것을 나는 보았다. 낮은 나무 천장의 틈 사이로 2층의 방이 보였다. 백여 년 전에 지어 한 번도 수리를 하지 않은 집 같았다. 나는 주방으로 가는 문을 밀고 다시 들어선다. 두 구역으로 나누어진 이 주방의 한 쪽 구석에는 이본느가 설명해준 대로 석탄을 연료로 사용하는 난로가 있었다. 그리고 주방의 구석 저편에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석탄난로를 사용할 때 쓰던 부삽과 꺼멓게 때가 탄 양동이가 보인다. ‘맙소사,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50여 년 전으로 돌아온 것 같네.’ 선진국이라는 영국에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곤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차를 한 잔 끓여 탁자에 앉는다. 가운데 버터 케이스와 스푼 포크 통이 놓여 있는 비닐 테이블은 군데군데 뜨거운 그릇을 올려놓은 자리가 마치 우두자국처럼 부풀러 있다. 나는 목욕탕과 화장실을 확인한 후 다시 짐을 들고 2층의 이본느가 알려준 방으로 올라가다 계단 벽에 붙여진 이본느의 학위증을 보았다. 옥스퍼드 대학교의 신학 학사 졸업장이었다. 이본느는 런던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줄로 알고 있었는데...나는 다시 수여 연도를 확인해 뒤 늦게 공부를 시작한 것을 알게 된다. 학문과 지식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갖고 있던 이본느는 항상 새로운 것을 배우고 토론하기를 좋아했다. 그녀하고 쉽게 말문을 트고 친해진 것은 내가 좋아하는 <황금가지>의저자 <조 프레이저>를 그녀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대화에 주려 있다가 나를 만나면 몇 시간이고 자기의 방만한 지식들을 펼쳐 놓았다. 3. 나는 계단을 올라 방문을 밀었다. 2층의 방 안에는 두 개의 침대가 놓여있고 그 중 한 침대 머리맡 탁자 위에는 이본느의 인형의 집이 놓여있다. 이본느의 나이를 가늠하면 인형의 집은 50여 년도 훨씬 넘은 것이다. 나는 짐을 풀어 놓고 바로 침대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저녁 7시가 겨우 지났지만 온 몸으로 몰려오는 피곤함을 감당할 수 없었다. 침대에 누워 낯 선 실내를 돌아보다 다시 이본느의 인형의 집을 본다. 그녀는 거동할 수 없을 정도로 뚱뚱하고 이미 머리는 하얗게 새버린 할머니였지만 항상 소녀 같이 얼굴을 붉히고 들뜬 목소리로 이 코티지에 얽힌 어린 시절을 나에게 들려주었었다. 나는 인형의 집 문을 열어 실내를 살펴본다. 이본느가 이 인형의 집을 갖고 놀면서 꾸었을 ‘여자의 꿈’을 상상해 본다. 그러나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작은 인형의 집에서 놀던 소녀는 보이지 않는다. 이본느는 이 인형의 집에 여자의 소박한 꿈을 묻어버렸다. 그리고 그녀는 떠났다. 한 여자로 소녀의 꿈을 묻어버린 것이 아니라 한 여자의 길을 그녀는 묻어버렸다. 나는 인형의 집 속에 고인 그녀의 죽어버린 꿈을 지금 보고 있다. 불편한 시선을 거두고 천장으로 돌린다. 나는 바로 누어 두 손을 가슴에 올린다. 그리고 눈을 감는다. 꿈꿀 권리가 거세된 여자의 삶, 더 이상 꿈을 꿀 수 없는 여자의 삶이 어떤 삶인지 알고 있는가? 여자에게 환타지를 뺏는 순간 함께 사는 남자의 삶도 모든 희망이 제거되고 만다. 4. 여자의 꿈은 남자들에게도 먼 것이 아니다. 결코 먼 것이 아니다. 모든 남자들은 한 여자의 꿈 안에 한 평생을 서성거리며 산다. 반대로 적어도 한 여자에겐 꿈의 기둥이 되기도 한다. 또 한 어머니에게 한 평생 지고 가야하는 아들로서의 잘 낫던 못 낫던지 간에 꿈의 주인공이다. 우린 그 꿈에서 사실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는데 대부분 남자들은 그 꿈을 망각하며 산다. 여자에 대한 이해는 바로 여자의 꿈에 대한 이해부터 출발하여야만 한다. 그녀들의 꿈 은 환타지에 가깝다.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안개 같이 오리무중하고 몸에 대이는 것이 아니라 휘감는 만질 수 없는 대기 같은 것이다. 당연 여자의 꿈은 구체화 하거나 현실 밖으로 끌어내려고 해선 안 된다. 막연히 바라던 환타지가 현실로 이루어질 때 여자는 다시 허무의 병을 앓거나 바로 새로운 환타지로 옮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자는 그 꿈을 어루만지는 법을 알아내야 한다. 단지 그 꿈 안에 들어가 항상 상대역을 적절하게 담당하는 역할을 하거나 여자의 환타지 폭을 적절하게 조율해 주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그러나 삶의 이중성을 맛보지 않은 여자나 혹은 깊은 실망이나 절망을 전혀 경험하지 못한 여자에겐 환타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20대나 30대의 보통 여자들이 <여자의 환타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마음 안에 다른 그 은밀한 숨겨진 성(城)이 없기 때문이고 혹은 환상과 희망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남자가 자기 여자의 그 은밀한 성(城)을 엿볼 수 있을 때 자기 여자의 환타지 혹은 그 꿈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된다. 그 후에야 비로소 한 남자는 자기 여자의 꿈에 적당한 몫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몰론 그 때부터 그 여자의 몸이 아닌 마음에 대일 수 있고 자기 여자를 허무와 본질적인 고독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 살갗에 대인 손끝에 마음이 묻고 가슴 깊은 심연의 세계를 훑어 내릴 수 있는 것을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꿈과의 타협 혹은 꿈과의 절충된 삶과 현실, 얼마나 아름다운 삶인가? 나는 이본느의 인형의 집을 열어 놓은 체로 긴 잠에 빠진다. <전하현/ writer, hyun.h.JunⒸ 미술사가, 문화 평론가, 미술사를 강의하며 국내 매체에 미술과 문화 평론 등을 연재하고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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