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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3 00:31
죽기 전에 꼭 봐야 하는 세계의 위대한 미술 50선 ( 9 - 1 ) 존 컨스터블의 건초 수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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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꼭 봐야 하는 세계의 위대한 미술 50선 (9-1) 존 컨스터블의 건초 수레 John Constable, The Hay-Wain 서양의 자연과 동양의 자연관 동양에선 일찍부터 자연에 대한 친화적인 감정을 가지고 자연을 묘사해 그 아름다움을 찬미한 예술 작품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서양에선 자연에 대해서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었고, 심지어는 악령과 악마들이 살고 있는 이교도의 터전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한국 등 동양의 우화와 고전에선 자연은 정말 중요한 존재로써 숲에 들어가면 금도끼와 은도끼를 얻어 부자가 될 수도 있고, 장가 못간 노총각이 선녀의 옷을 훔쳐 장가도 갈 수도 있으며 불로초와 산삼을 캐서 장수도 누릴 수 있는 곳인데 반해, 서양의 동화집과 소설 속에서 자연은 악마나 마귀, 나쁜 요정들이 살고 있고 흔히 어린이들을 잡아먹는 아주 무서운 곳입니다. 이런 자연에 대항 전통적 시각이 종교 개혁이 일어난 네덜란드 일부 지역에서 진보적으로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으나 18세기까지 대부분의 지역에선 자연에 대한 인식을 바꾸지 못합니다. 당연 서양인들은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인식을 하지 못했고 자연 그 자체를 그린 풍경화도 제 평가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즈음에 영국에서 존 컨스터블이라는 시골 청년이 나타나 자연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그는 시골의 방앗간 집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생활하며 자연의 정취를 느끼며 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느낀 아름다움에 대한 강렬한 표현 욕구를 느끼고 미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몸으로 느낀 사계절 대기의 변화와 작은 풀잎과 들꽃, 나무들의 모습까지 섬세한 눈으로 새롭게 묘사합니다. 아래의 그림은 그의 대표작으로 파리의 화가들을 놀라게 한 그림 <건초 마차>입니다.
<그림/ 존 콘스타블(John Constable) 건초마차( The Hay-Wain),>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하늘엔 영국 특유의 역동적인 구름 떼가 꿈틀거리며 흘러가고 있습니다. 숲은 가을과 여름 사이에 놓여 있는 듯 무성한 잎이 점점 노랗게 물이 들고 있고, 그 나무와 하늘빛에 물이 든 개울에는 건초 마차가 보입니다. 마부를 진지하게 지켜보는 개와 한 쪽에 서있는 방앗간 모습이 무척 평화로워 보입니다. 지금도 그의 고향 서포크의 모습에서 존 컨스터블이 묘사한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존 컨스터블과 터너 당시에 쌍벽을 이루며 경쟁하던 두 화가가 영국에 있었습니다. 존 컨스터블(1776-1837)은 영국의 풍경화가로 자연에 대한 애정과 섬세한 관찰로 본격적인 서양의 풍경화를 전문화한 미술가입니다. 프랑스의 바르비종파와 들라크루아 등의 프랑스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쳐 인상파로 가는 초석을 그들에게 제공했으나, 불행하게도 본국인 영국에선 그를 늦게까지 인정해 주지 않았습니다. 영국 중동부의 지역 서포크의 부유한 제분업자의 집안에서 태어난 존 컨스터브블은 로열미술학교에서 공부하고 1802년 아카데미 전에 입선하였으나 영국 미술계에선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가 그리는 자연 풍경화를 당시에는 인정해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와 비슷한 나이인 터너(1775-1851)는 20대 초에 로열아카데미 정식 회원으로 가입을 하고 영국 화단에서 주목을 받아 일찍 화가로써 성공을 하게 됩니다. 존 컨스터블은 냉대와 무관심 속에서 주목 받지 못하다가 50대에 이르러서 비로소 로열 아카데미회원으로 가입하며 겨우 인정을 받게 됩니다. 그는 영국보다는 파리의 화단에서 더 인정을 받고 살롱 전에 출품해 주목을 받습니다. 당시 프랑스의 대가로 이름을 떨치던 들라크루와가 살롱에 전시된 컨스터블의 그림 <건초수레 The Hay-Wain>보고 부족함을 느껴 전시된 자기 그림, ‘카오스 섬의 학살’에 흰색과 붉은 색을 더 칠하기도 했습니다. 다음 주에 이 글은 이어집니다. <전하현/ writer, hyun.h.Jun 꺓抉荇怜, 문화 평론가, 미술사를 강의하며 국내 매체에 미술과 문화 평론 등을 연재하고 있음, 저서‘스물이 되기 전에’ (생각의 나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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