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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9 00:57
영국의 박물관 및 미술 기행 70/ 내셔날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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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Rembrandt, Belshazzar's Feast, 1635, Oil on canvas, 66.14 x 82.28 inches / 168 x 209 National Gallery, London, England> 미술작품을 바로 보기 4 렘브란트의 '벨사자르왕의 연회 (Belshazzar's Feast) 2 렘브란트의 이 그림을 순진한 맨 눈으로 보면 기원전 6세기의 신바빌로니아의 마지막 왕인 벨 사자르 왕이고 다니엘서 5장 1절~7절에 나오는 파티 장면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왕은 벨사자르 왕을 은유적 메타포어로 수식하고 있는 사실은 당시 강국이었던 스페인 제국의 왕이다. 단지 벨사자르의 이야기를 빌어다가 당시의 상황을 풍자한 것이다. 왕이 머리에 터번을 두르고 왕관을 쓰고 있는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묘사된 것은 스페인이 수 백년 동안 이슬람인 무어 족의 지배를 받고 그 문화에 여전히 바탕을 두고 있는 상황을 풍자한 것이다. 유태교의 입장에서 보면 당시의 로마 교황청의 관리하에 있는 스페인의 교회는 물론 이단이다. 게다가 스페인의 거의 7백년 동안 이슬람교도였던 모어 족의 지배하에 있었다. 하나님을 들먹이며 전 유럽의 패권을 차지하고 종교적 권위를 내세우는 스페인의 왕이 유태인에겐 우습게 보일 수도 있다. 또 이 그림은 렘브란트의 고유의 창작적 입장이 게재된 것이 아니다. 주제는 유태인의 역사적인 저주가 담겨있고 표현은 철저하게 카라바조의 기법을 모방해 그린 일종의 잘 만든 제품일 뿐이다. 실제로 이 그림을 렘브란트에게 주문한 사람은 당시 이웃에 살고 있는 유태인 인쇄업자인 므나쎄 벤 이스라엘(Menasseh ben Israel) 이었다. 13세기에 전 유럽에 살고 있는 유태인들은 모두 쫓겨나 또 다시 유랑 길을 떠나게 된다. 그들은 대부분 고리대금 등 사채업을 하며 살다가 돈 한 푼 못 받은 것은 물론 모은 재산까지 포기하며 쫓겨난다. 영국에서도 13세기 말에 추방을 당하고 독일과 프랑스에서도 추방을 당한다. 스페인의 일부 지역에서 16세기 말까지 거주 했으나 그 후 모두 추방된다. 전 유럽 지역에 가장 많은 유태인들이 모여 살던 곳은 특히 스페인의 그라나다 지역이었다. 므나세 벤 이스라엘의 집 안은 바로 이 지역에서 추방당한 후 홀랜드의 암스테르담에 정착하였다. 홀랜드는 종교에 대해서 비교적 자유로운 입장으로 유태인의 정착을 허용해 다른 유럽의도시에서 이주한 유태인들이 모여 살았다. 므나쎄 벤 이스라엘은 이 그림을 주문한 것은 이런 은유적인 까닭과 유태인들에 대한 교육용 책에 들어갈 그림으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다니엘서에 나온 마지막 바빌로니아 같이 스페인이 두 조각으로 분열되어 망하기를 기원하며 이 그림을 주문하고 렘브란트는 주문자의 요청에 의해서 카라바지오의 기법을 차용하여 그려 주었다. 이 그림이 걸려 있는 내셔널 갤러리 방의 제목이 렘브란트와 카라바지스트(room 24/ Rembrandt and Dutch Caravaggist)에 걸려 있는 것은 그 같은 까닭 때문이다. 왕과 왕비와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놀라는 장면은 카라바조가 보여준 극적인 효과를 그대로 반영하고 술잔과 여인의 옆모습도 긴박감을 조성하는 카라바조의 스타일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조명의 효과처럼 빛을 처리하고 있는 방식도 역시 카라바조 형식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다. 렘브란트는 이렇게 대부분의 자기 그림에서 배경을 어둔 색조로 단순하게 처리하고 빛의 효과로 마치 조명을 받는 듯한 색으로 처리해 인물을 강조하고 있다. 카라바조(1571~1610)는 렘브란트가 태어난 후 4살이 되던 해 요절해 죽었지만 다시 수 십 년 후에 네델란드와 그 밖의 나라의 많은 작가들의 그림 속에서 다시 이렇게 부활을 했다. 그러나 그는 후배 화가들에게 기법상의 스승으로만 살아남았을 뿐 1930대가 되기까지 근 300여 년 간을 모든 이들에게 잊혀져 있었다. 이 한 장의 그림에서 우린 13세기에서 이 그림이 그려진 17세기 전반까지의 유태인의 유랑의 역사를 읽어낼 수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스페인은 이 그림을 주문한 유태인이 목적하고 저주하며 빌었던 대로 두 조각이 나서 멸망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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