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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9 01:37
영국의 박물관 및 미술 기행 78/ 내셔날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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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의 "아들을 잡아먹는 새턴(Saturn Devouring One of his Children)", 1820 미술작품을 바로 보기 10 새로운 미술의 눈을 열어 준 거인‘고야’8 고야 부부의 고통과 참담한 비애 - 그의 사회와 현실인식의 배경 고야가 스페인의 궁정에서 타피스트리 디자인을 위한 밑 그림을 그리고 있을 당시 유럽의 봉건 사회는 침몰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기계문명이 개발되어 산업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으며 미국이 독립을 선포하고 전쟁 끝에 자유국가가 되었다. 또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나고 왕이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 스페인의 왕실도 불똥이 튈지도 모르는 이웃나라의 변화를 외면할 수 없었다. 개인 적으로도 고야는 혹독한 고통을 겪게 된다. 1774년 첫째 자식이 태어나 기뻐했으나 바로 죽어 버려 당황한다. 다시 이듬 해 1775년 둘째 아들이 태어나 어찌된 일인지 바로 죽는다. 두 번째 자식을 잃고 슬픔에 잠겨 있다 한 해를 거르고 1777년 다시 임신을 하고 출산을 했으나 세 번째 자식도 몇 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죽어버린다. 고야와 그의 부인은 슬픔을 넘어 비통을 느끼며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자신들이 저주를 받았는가 생각하게 된다. 한편으로 고야는 가정적인 불행에도 불구하고 미술가로써 인정을 받고 점점 자신의 위치를 강화했다. 1778년 궁정화가인 맹스의 허락을 받아 왕실에 소장 중이던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복사하며 그의 기법을 연구하기 시작한다. 다시 그와 부인은 세 번째의 자식을 잃고 난 후, 심각한 진통을 겪고 난 후 1779년 네 번째의 자식을 출산했으나 곧 죽어버린다. 고야가 환상을 보고 악령에 시달리게 된 것은 이즈음부터였다. 자신이 무슨 저주를 받아 이런 비통을 겪는가 두 사람은 극도의 신경쇠약으로 괴로워하는 중에 1780년 다시 다섯 번째의 아기를 가지게 되고 이번 만은 아무 일이 없기를 바랬다. 두 부부가 이렇게 계속 임신과 출산을 시도한 사실을 우린 주목하고 더듬어 볼 필요가 있다. 보통 둘 셋이 출산 후에 죽었다면 임신을 포기하거나 결혼 생활도 지장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관계를 계속했고 출산을 시도했다. 이런 노력으로 다시 난 5번 째 자식을 임신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출산하며 아들이 무사하게 성장하기를 간절하게 기도했다. 이런 희망에 다시 찬물이 끼얹어지고 그 아들도 얼마를 넘기지 못하고 죽어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 부부들이 미쳐버리지 않는다면 아마도 정상이 아닐 것이다. 고야는 그 해 로열 아카데미 회원으로 정식을 받아들여지고 화가로써 더욱 인정을 받게 된다. 그가 이 때 얼마나 고통을 겪었는지 후에 자신의 그림으로 표현했다. 그리스 신화 중 난 자식들을 꾸역꾸역 먹어 치우는 포악한 신, 크로노스로 자신에 대한 학대와 원망 좌절감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게 된다. 1782년 6번째 다시 출산을 시도했으나 역시 바로 죽어버린다. 그와 부부는 자신들에게 무언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원망하며 괴로워하며 자신들의 실수로 이들이 죽은 것은 아닌가 절망한다. 이 때의 혹독한 체험은 '아들을 잡아 먹는 새턴'으로 38년이 지난 1820년에 그려지게 된 것이다. 원래 새턴은 그리스 신화의 크로노스(Cronos)로, 누이 레아를 아내로 삼아 헤스티아, 데메테르, 헤라, 하데스, 포세이돈, 제우스 등 6명의 자식이 태어났으나 크로노스는 자식에게 자신의 지위를 빼앗긴다는 예언이 두려워 때문에 태어난 자식들을 차례로 삼켜버린다. 그림 속에 흉측하고 잔인하게 묘사된 모습 속에서 우린 자신을 학대하며 받는 처절한 고통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이러한 고야의 개인 사를 더듬어 보면 그는 고통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서 그것을 극복하려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섯 번째의 자식을 출산하고 모두 잃었다면 대부분의 부부는 아마도 포기를 했을 것이다. 혹은 당시의 사회 관념이라면 부인 때문이라고 내쫓고 다른 여자에게 자식을 낳으려고 시도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야와 부인은 한 해를 거르고 다시 일곱 번째 출산을 시도해 마침내 1784년 12월 2일 아들을 낳는다. 이 때 출산한 아들이 Xavier로 생존한 유일한 아들이다. 그와 부인은 불안과 고통을 정면에서 받아들이고 1774년부터 1784년까지 10여 년 간의 말로 표현하지 못할 불행의 시간을 맞아들인다. 이 아들을 낳고 또 죽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며 몇 년간을 불안과 초조함 속에서 보냈을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고야는 이 때 신경 쇠약과 불안한 가운데 심각한 정신적 질환의 병을 얻게 되고 마침내 청각 능력을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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