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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미술의 눈을 열어 준 거인 '고야'10

고야의 다섯 번째 만남, 사회와 현실인식 4

고야의 아래 그림〈1808년 5월 3일:마드리드 수비군의 처형 The 3rd of May 1808:The Execution of the Defenders of Madrid〉을 보자. 여명의 빛이 스미지도 않은 찰흙같이 어둔 새벽, 프린시페 피오 언덕 아래 등불이 잔인한 현장을 드러내 주고 있다.
프랑스 군인이 일렬로 늘어서서 무장하지 않은 양민을 잔인하게 학살하고 있다. 왼쪽에는 총살당한 시체들의 피가 땅을 적시고 흰옷 입은 한 남자가 팔을 높이 든 채 에스파냐(스페인)을 만세를 외치고 있다.
고야는 그림 중앙의 등불로 전쟁으로 인한 인간들의 참혹한 모습과 이 빛으로 잔인한 인간성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 양민들을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그림에서 군인과 팔을 들어올린 남자의 위치는 다비드(Jaques-Louis David)의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Oath of the Horatii)"의 주인공의 동작을 반전시킨 것이다.
희생자의 하얀 셔츠는 5월 2일과 3일에 처형된 약 5,000명에 이르는 스페인 민간인들의 순결함과 청결함을 의미하고 있다. 이 같은 생생한 사실적인 주제의 묘사는 후 세대에 사실주의 토대를 마련해 준다. 또 그의 표현기법은 프랑스 화가에게 많은 영향을 끼쳐 인상파의 기초를 마련해 주게 된다. 마네는 〈1808년 5월 3일〉의 구성에서 영감을 받아 이 주제로 그림을 그린다.

그림1〈1808년 5월 3일:마드리드 수비군의 처형 The 3rd of May 1808:The Execution of the Defenders of Madrid〉
그림2 〈1808년 5월 2일:마멜루크족의 진격 The 2nd of May 1808:The Charge of the Mamelukes〉
80년대 한국의 예술계에선 이런 만남을 예술가들이 집단적으로 거부하며 ‘순수문학’, ‘순수예술’이란 우스꽝스런 ‘관념적 언어’로 현실을 외면하고 도피한 예술가가 적지 않았다. 이들은 아직도 예술의 순수성이니 하며 문을 굳게 걸어 닫고 유아적인 사고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예술가란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 현실에 발을 굳건하게 딛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사회를 만나고 사람을 만나고 우주와 자연을 만나는 것은 필연이고 그 과정을 표현하는 것은 이를 테면 신이 재능을 부여해준 천복의 혜택에 대한 그 은혜를 보답하는 의무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 만남조차 거부한 체 ‘순수’란 이름을 걸고 ‘순수문학’과 ‘순수미술’을 주장하며 유아적 관념의 세계 속에 머문 체 자기 성장조차 거부하고 말았다. 한국의 문학계가 오늘날 지리멸렬하게 관의 지원을 받아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같은 한국 문학인들의 사고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순수를 표방한 대표적인 문학지인 ‘현대문학’이나 ‘월간 문학’지가 월 3천부도 발행하지 못하고 그나마 구걸을 하다시피 하며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현실과 시대를 외면한 예술의 자멸 현상이다. 예술이란 현실과 시대의 반영이고 가장 잘 반영한 작가가 살아남을 수 밖에 없다.
예술가가 사회 현실과 만나는 것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의무이다. 그 시대의 자연과 사물을 직관하고 표현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필연적인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민중예술을 표방하며 떼거리로 몰려다니며 소란을 피우던 예술가들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자신과의 만남도 경험하지 못하고 단지 분위기에 휩싸여 선동적 구호를 외쳐대며 예술을 프로파간다 수준으로 끌어내린 부류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고야의 현실과 역사에 대한 인식에 대해서 다시 한번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가 위대한 화가로 평가 받는 까닭은 얄팍하고 피상적인 현실과 역사에 대한 인식이 아니라 깊은 눈으로 바라보고 그 것을 몸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는 다양한 계층을 표현하고 그리고 전쟁의 참상 속에 뛰어들어가 잔혹한 현장을 그대로 드러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은 물론이지만 타인의 고통도 정면에서 바라보기를 꺼려한다. 그리고 얼른 경험하고 본 장면을 망각시켜 버리기를 원한다. 이렇게 마음 안에 잠시 두기도 힘든 고통을 정면에서 바라보고 그것을 마음 안에 각인시킨 후 다시 예술로 정제해 표현한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고통 받는 이의 아픔이 전이되는 것은 물론 그 현장 속에서 체험을 감정이입을 통하여 그대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고가 발달하지 못하거나 미약한 정신 세계를 가진 예술가들은 현실 속의 이웃이나 공동체의 고통을 외면하고 아름다운 환상만 보고 그것만을 보고 표현할 뿐이다. 무엇이 진정한 아름다움인지 그들은 알지 못한다.

다음 호에 계속 됩니다. British Media / writer Jun H..Hⓒ) 필자의 연구 글로 무단 인용이나 복제 엄금. 필자(h.h.Jun)미학 및 미디어 강사/ 한국에서 시인과 미술평론 및 연출가로 활동하다 현재 런던에서 체류하며 미디어 강사와 작품활동을 하고 대영박물관과 내셔널 갤러리, 데이트 모던 등에서 일반인을 위한 미술사를 강의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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