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들의 인생과 에피소드는 그들의 음악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기도 한다. 음악이라는 것은 기계에서 만들어지지 않는, 세상에서 가장 섬세한 사람의 정신과 영혼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말이다. 같은 음악이어도 낮과 밤의 들림이 다르듯이, 이들의 이야기는 음악을 감상하는 우리에게 좀 더 풍부한 감성을 제공해 줄 수 있다. 사랑스럽게만 다가온 ‘엘리제를 위하여’가 베토벤의 이루지 못한 사랑의 곡이라는 것을 안 후에, 가끔 서글프게 들리는 것처럼 말이다.
이번 글에는 한 여류 음악가에 대한 이야기와 그에 얽힌 곡을 하나 소개해 보고자 한다. 그녀는 무수한 음악가들의 경쟁을 물리치고, 과거 독일의 100 마르크짜리 화폐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인물이다. 큰 화폐의 주인공인 만큼 많은 업적과 함께 독일인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인물임이 분명한데, 화폐에 새겨진 그녀의 묘연한 미소를 보면 무언가 서글픈 사연이 있는 듯하다.
이 여인은 당대의 유명한 피아니스트 이자 작곡가였던 ‘클라라 슈만(Clara Wieck Schumann,1819-1896)’이다. 음악 강사였던 아버지(Friedrich Wieck) 밑에서의 혹독한 훈련과, 유년 시절에 겪은 부모님의 이혼은 어린 클라라에게 고됨과 외로움을 안겨 주었다. 그녀는 또한 사랑의 쟁취를 위해 아버지와의 기나긴 싸움을 해야 했다. 어릴 때 부터 피아니스트로서 성공의 길을 걷고 있는 그녀의 인생에 등장한 청년 음악가 ‘로베르트’ 는 그녀의 아버지에게 사위 감으로 그다지 달갑지 않았던 존재였던 것이다. 결국에, 9살 차이의 클라라와 로베르트는 그녀의 나이 17세부터 10여년이 넘게 고통스러운 사랑의 투쟁을 했고 , 그것은 법정에서의 싸움으로 까지 이어졌다. 힘겨운 법정에서의 승리로 마침내 그들은 1840년, 라이프치히(Leipzig)근교의 작은 교회에서 결혼을 하였다. 낭만파의 거장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1810-1856)과 당대의 유명한 피아니스트 였던 클라라의 만남인 것이다. 이들 사랑의 결실은 당시 가곡을 멀리하던 로베르트 슈만에게 가곡작품으로 향하는 새로운 창작의 통로를 만들어주는 계기가 되었고, 이 시기에 탄생한 주옥 같은 가곡들만 100여 곡이 넘는다. 이 중 하나가 바로 연 가곡집 ‘여인의 사랑과 생애(A Woman’s Love and Life; Frauenliebe und Leben)’ 이다.이 곡은 사미소(A.v.Chamisson 1781-1838)의 시를 가사로 한 곡으로 ‘사랑’을 토대로 한 여인의 슬픈 인생이 담겨져 있다. 연속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이 곡은, 총 8곡으로 구성되어있으며 더할 나위 없는 감미로운 선율과 서정성을 띠고있다.
로베르트와 클라라의 사랑이 결실을 맺었을 때 작곡된 이 곡은, 로베르트가 얼마나 사랑에 심취하여있고, 그에 대한 충실한 표현의 작업에 몰두하였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한 작품이다. 내면적인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선율과 화성, 반주부분과 노래의 결합은 최고의 정점에 이른 낭만파 가곡의 한 형식을 보여준다. 클라라가 주인공인 듯한 이 곡은 ;한 청년에 대한 소녀의 사랑, 그들의 행복한 결혼 생활, 아이의 출산과 어머니가 된 기쁨, 남편의 죽음으로 미망인이 된 여인의 슬픈 넋두리가 그 내용이다. 로베르트와의 사랑, 그들의 행복한 결혼과 아이들, 로베르트의 죽음으로 14년간의 짧은 결혼 생활, 미망인으로서 40년간 아이를 홀로 키우며 지낸 클라라의 인생처럼 말이다.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로서 영광을 누리던 그녀의 개인적인 인생은 과연 행복했을까? 그토록 사랑하던 그녀의 남편 로베르트는 정신질환으로 라인강에 투신 자살을 시도 했으며 죽음 전까지 2 년 동안 정신병원에서 지내면서 생을 마쳤다. 또한 7명이나 되는 아이들의 양육으로 인한 생활고를 해결해야 했던 그녀는 홀로 기나긴 연주의 여정을 시작했었어야 했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40여 년 동안이나 남편과의 의리를 위해 독신생활을 하며, 그녀에게 찾아온 다른 사랑을 포기했다. 그녀를 사모하며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당시의 또 다른 낭만파의 거장 브람스(Johannes Brahms)의 애절한 사랑을 말이다.
한번쯤 이 곡을 들으면서 한 여인의 인생과 사랑에 대한 명상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가끔 의 센티한 감정과 음악에 젖어 듦은, 우리가 즐길 수 있는 또 하나의 휴식이 아닐까 해서 말이다.
‘내가 그를 보았던 이후로 나는 눈이 멀어진 것 같이 여겨져요. 내가 어디를 바라보더라도 나는 오직 그만을 떠올리게 됩니다:1곡- 1연’
‘모든 여인 중에 가장 존귀한 여인만이, 당신의 선택을 행복하게 합니다. 그리고 나는 그 고귀한 사람을 몇 천번이라도 축복하겠어요:2곡-5연’
‘나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여, 바로 그때에 너는 나를 일깨워 주었어, 나의 눈을 더 뜨게 해 주었어, 무한한 깊은 삶의 가치여!:4곡-3연’
‘여기 나의 침대 옆에는 요람의 공간이 있어요, 여기 있는 요람이 고요히 감추어 주어요, 행복한 나의 꿈을, 아침이 찾아올 때 그대 꿈에 깨어나요, 그러면 그 요람에서 그대를 닮은 얼굴이 나를 보고 웃어요, 그대를 닮은 그 모습이:6곡-4연’
‘지금 그대는 고통을 주었어요, 그리고 그것이 나를 아프게 해요, 그대는 잠들어 있어요, 그대, 매정하고 무정한 남편은, 죽음의 잠을 들고 있군요:8곡-2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