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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로저널 / on Jun 17, 2008 23:56
독일에서 시험 프로그램 중 하나로 바흐(Bach)의 곡을 고르고 있을 때였다. 일반적으로 바로크 시대의 곡을 기본 프로그램으로 넣어야 하는 상황이어서 바로크 시대의 곡인 바흐 곡의 연주는 필수였는데, 곡 선택의 과정은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왜냐하면 바흐의 곡은 다른곡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연습을 하면 할수록 여러가지 뜻하지 않는 어려움이 돌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곡을 시작하기 전에 자신에게 맞는 곡을 선택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연구가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했었다. 글렌굴드의 골드베르크 바리에이션은 이러한 곡 선택을 하기위해 여러 음악가들이 연주한 바흐곡들을 들으며 접한 곡이다. 일반적으로 정통파 독일 연주자들의 바흐곡을 들었던 나에게 글렌굴드의 연주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독일 음악에서 대부분 요구하는 정석적인 해석에 의한 충실한 연주와 거기에 따른 단순함으로 다소 지루하게 느껴 질 수 있는 바흐음악을, 글렌굴드는 자유로운 그의 해석과 함께 악보 그대로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으며 살아서 약동하는 음악으로 재창조를 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멋부리지 않는 투박한 맛이 있는 독일 음악을 좋아하긴 하지만 이때 느낀 글렌굴드의 바흐 음악은 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소리와 음악성에 치중하던 바흐 음악에서 개인적 해석의 중요함을 느낀 것이었다. 아쉽게도 시험 프로그램으로 골드베르크 바리에이션이 선택되지는 못했지만, 굴드의 연주가 나에게 준 영감은 내가 선택한 다른 바흐곡 연주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글렌굴드(Glenn Gould,1932-1982)는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아주 귀에 익은 이름이다. 캐나다 출신인 그는 1932년 모피중개상인 아버지와 피아노와 오르간을 연주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전문적인 연주인은 아니었지만 굴드의 유년기까지 교육을 책임진 유일한 선생이었다. 모피중개를 하는 아버지도 바이올린 연주에 상당한 실력을 갖추었고 그의 가계에 그리그(Edvard Grieg)가 있었던 것을 보면 굴드의 음악성은 환경과 무관했던 것은 아니었던 듯 하다. 그는 3살이 되던 해에 악보를 읽을 수 있었고, 5살 때에는 작곡을 할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그는 10살이 되던 해에 토론토의 로얄 콘서바토리에서 입학을 하게 되는데 알베르토 게레로(Alberto Guerrero)에게서 피아노를, 프레드릭 실베스터(Frederick C.Silvester)와 레오 스미스(Leo Smith)에게서 각각 오르간과 음악이론을 배우게 된다. 12살이 되는 해에 음악원을 수료한 그는 키바니스 음악축제(Kiwanis Music Festival)에서 열리는 콩쿨에서 우승, 1945년 로얄 콘서바토리의 프로페셔널 연주자 과정을 통과 한 후 그 다음해인 1946년 음악이론시험을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하며 전문연주자의 길로 나서게 된다. 굴드가 연주한 바흐의 골드베르크 바리에이션은 굴드가 23살 되던 해인 1955년 1월 1일 뉴욕 데뷔 무대에서 첫 선을 보인 것 이다. 연주회의 성공과 함께 이 곡은 그 해 6월 CBS에서 녹음이 되는데, 이 때 제작된 음반은 굴드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겨주었고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음반이 된다. 또한 이 음반은 연주회용 곡으로 다소 외면 받던 골드베르크 바리에이션을 일약 스타덤에 올리며 대중의 사랑을 받게 하였고, 바흐 음악의 대부로 알려진 리히터(Karl Richter)와 함께 굴드를 바흐 음악 연주의 또 다른 핵으로 만드는데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바리에이션은 명상적인 사라방드 스타일의 아리아를 주제로 한 30개로 이루어진 변주곡이다. 바흐가 그의 아내 막달레나를 위해 만든 ‘안나 막달레나 바흐를 위한 1725년 클라비어 연습곡’ 에 실려있는 사라방드(Sarabande; 3박자의 느릿한 무곡, 고전 모음곡 중 하나로 활용됨)에서 따온 것이다. 아리아 이외에 바흐가 애용하던 다양한 형태의 곡들 즉, 푸가 ,토카타, 코랄 등이 한 곳에 배열되고 있다. 수학적 규칙과 배열을 중요시 했던 바흐는 이 곡에서도 그 특성을 나타냈는데, 3,6,9,,변주곡 순으로 한 음정씩 증가하는 카논(돌림노래)형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서정적인 아름다움과 함께 증가하는 음렬 속에서 들리는 저음부와의 멜로디의 공유는 끼워 맞춘 듯한 정확성 안에서 다채롭게 움직이는 바흐 음악의 특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글렌굴드의 골드베르그 바리에이션은 그의 독창성과 함께 많은 매니아를 형성하고 있지만 너무나 강렬한 개성으로 그 당시에 비평가들의 혹평이 거셌다. 한 시간정도로 연주하던 이 곡을 30 분대로 과감히 삭제, 남다른 해석과 함께 어이없을 정도의 빠른 템포 등 에서 이러한 평이 나왔다고 할 수 있지만, 탁월한 음악성과 흡인력있는 그의 독창성은 점차 긍정적인 바흐 음악의 재창조란 의미로서 그 자리를 잡아갔다. 굴드의 독창적이고 강렬한 해석은 그가 녹음한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연주와는 달리 이곡을 비롯한 다른 바흐의 곡들에서 더욱 그 빛을 발하는데, 이것은 아마도 바흐 음악이 갖고 있는 특징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정도 연주에 대한 지침이 상대적으로 상세한 고전, 낭만 음악과 비교해서 바흐 음악이 갖고 있던, 다소 생략 되었다고 할 수 있는 여백의 미가 그러한 영향을 끼친 것이다. 또한 피아노가 없던 당시의 건반악기였던 쳄발로를 위하여 대부분 쓰여진 바흐의 곡이였기 때문에 굴드는 여러가지의 음색과 좀 더 큰 스케일이 가능해진 현재의 피아노란 악기로써 표현할 수 있는 다양성을 바흐 음악이 갖고 있는 여백안에서 만들어 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의미는 굴드가 쳄발로란 악기로 표현되어지는 바흐의 곡들을 피아노를 위한 것으로 완전히 탈바꿈 시켰다는 의미는 아니다. 레코딩으로 인하여 음색의 강도를 느끼기에는 다소 그 생생함이 덜 하나, 굴드의 톤은 상대적으로 작고 섬세하다. 이것은 쳄발로란 악기로 만들어진 바흐의 곡을 어느 한편으로는 충실하게 재현하기 위한 것으로, 다양성을 추구한 그의 시도에 있어서 어느 한 면으로 기울인 해석은 옳다고 볼 수 없다. 1955년 앨범 이후, 그는 1981년 골드베르크 바리에션을 다시 녹음하게 된다. 이것은 이례적인 상황으로 이러한 그의 동기는 녹음 기술의 발전에서 탄생할 수 있는 새로운 소리에의 가능성에서 비롯된 듯 하다. 또한 그는 55년에 녹음한 골드베르크와는 사뭇 다른 해석에의 시도를 보였는데, 이것은 30개의 변주곡이 각자 개별적 존재가 아닌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가진 개체들로서 거시적인 범위안에서 표현되는 파동적 화성과 리듬의 변화로, 전체적인 조화를 중요시 한 그의 일면을 보여준다. 1981년 앨범작업을 끝으로 그는 1982년 토론토에서 뇌졸증으로 사망했다. 골드베르크 바리에이션은 데뷔 앨범 곡이자 마지막 앨범 곡이 되었다. 이 곡은 굴드를 세상에 알리는 신호탄이었고 또 이 곡은 굴드에게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았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져버린 굴드의 골드베르크 바리에이션은 나에게 바흐 음악의 정석이 되어버린 듯 싶다. 가끔 다른 이들이 연주한 골드베르크가 생소하게 들릴때가 있으니 말이다. -굴드의 생애에 대한 부분은 글렌굴드 홈페이지 http://www.glenngould.com/에서 번역 및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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