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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로저널 / on Jul 13, 2008 22:51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ff:1873-1943) 라흐마니노프의 이름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다. 특히 <샤인>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그 인기가 더해진 그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은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꼽는 가장 사랑하는 클래식 곡중의 하나이기도 할 정도로 유명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러시아 음악, 특히 라흐마니노프의 곡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그의 음악이 갖고 있는 감미롭고 풍부한 선율, 진부함이 없는 화려함, 무엇보다도 그 속에서 묻어나는 짙은 애수를 느낄 수 있어서 이다. 단순한 멜로디에서 묻어나는 쓸쓸함이란 많은 매력을 주지 못한다. 나에게는 강한 정열 속에 숨어있는 섬세한 애잔함이 더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번 글에는 라흐마니노프의 이야기를 다루어보고자 한다. 그의 인생과 음악을 한번 더 느껴보고 싶은 나의 욕심이기도 하지만 대표적인 클래식 음악가 중 한 명인 그의 이야기는 꼭 알아두는 것이 좋을 듯 싶어서 이다. 라흐마니노프는 1873년 4월1일 생으로 러시아의 노브고로드(Novgorod)주의 오래된 도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군인이었고 그의 어머니는 부유한 상속인이었으나 그의 아버지의 도박과 음주로 인해 가세가 기울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결국엔 라흐마니노프가 9살이 되던 해에 그와 그의 가족을 돌보지 않게 되었고 어린 라흐마니노프는 반항적 기질이 있는 아이로 자라났다. 하지만 음악적인 부분에서의 특별한 그의 재능은 상트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 들어가면서 두각을 보이게 되었다. 9살부터 12살까지의 상트 페테르부크에서의 음악 교육을 마치고 모스크바 음악원으로 옮기면서 피아노 공부를 하게 된 그가 만난 스승은 니콜라이 즈베레프(Nikolai Zvereff)였는데 그는 그 당시 러시아를 대표하는 음악가였다. 타네예프(Taneyev), 아렌스키(Arensky)에게서 작곡을 공부하며 그는 작품활동에도 전력을 다하게 되는데 이것은 1892 년, 그의 대표적 초기 피아노 소품 중 중 하나인 ‘전주곡 c sharp 단조’ 의 성공과 함께 최고 영예 학위의 수여로 이어진다. 하지만 그 이후 97년에 발표한 교향곡 1번이 실패하자 그는 3여년 동안 슬럼프에 빠지며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이 시기에 그는 다행이 Nikolay Dahl박사를 만나게 되는데 그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준 그의 만남은 라흐마니노프의 정신적 치료와 함께 Dahl박사에게 헌정한 1902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완성하기에 이른다. 1909년 라흐마니노프의 첫 미국 방문 음악공연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 3번의 작곡, 연주와 함께, 그의 세계로 향한 연주의 행로는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1917년 모스크바를 뒤로하고 파리와 드레스덴, 스위스 등을 거쳐 1918년 미국에서 터전을 잡은 그는 피아노 솔로와 협주곡, 교향곡,오페라와 가곡등의 145개의 작품을 남기고 1943년 3월 28일 비버리 힐즈에서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라흐마니노프가 활동하던 당시의 음악계에는 스트라빈스키, 바르톡, 쇤베르크 등이 활동하던 ‘현대음악’의 시기였다. 바로크 시대부터 이루어졌던 기존의 조(Key)와 화음간의 기능적인 질서안에서 이루어진 체계에서 변화되는 움직임, 쉽게 말해서 화음으로 이끌어내는 기승전결의 익숙함이 아닌 ‘음향’의 중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또한 19세기 후반부터 대두된 민족주의 음악이 유행하면서 각 나라의 음악가들은 토속적인 양식을 작품에 결속시켰는데, 이는 러시아 5인조(발라키에프, 보로딘, 무소르그스키, 림스키 코르사코프, 큐이)등으로 대표되었다. 하지만 라흐마니노프는 이러한 사조를 무시하였다. 러시아적인 정취가 느껴지는 그의 음악이긴 하지만 러시아 5인조로 대표되어진 짙은 민족주의 음악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고 낭만적인 차이코프스키의 음악과 리스트, 쇼팽의 영향을 받은 듯한 그의 음악에는 예술적 이상을 지향하는 그의 고집스러움이 엿보인다. 피아니스트로써도 명성을 떨친 그의 연주는 큰 손과 함께 폭 넓은 표현력, 곡에 대한 명쾌한 해석과 유연한 기교를 보여주었다. 베토벤(고전시대의 작곡가이긴 하지만 그의 작품은 낭만시대로 향하는 길을 열어 주었다)를 비롯한 낭만파 음악가들에게 심취한 그는 리스트와 쇼팽의 작품에서 두각을 보였으며 이들 곡의 독자적인 해석으로도 그 이름을 날렸다. 피아노 협주곡 2번과 3번을 비롯한 그의 대표적인 곡들에서는 멜랑꼬리함과 노스탤지아, 애수, 억누름과 격정, 분노, 따뜻하고 섬세함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노래 등이 개성적 색깔과 함께 뛰어나게 표현된다. 대부분의 러시아 음악에서 기본적으로 느껴지는 스산함, 쓸쓸함과 함께 무엇보다도 그의 음악에서는 격노안의 슬픔과 고독이 느껴진다. 이것은 쉽게 흘려지는 가녀린 눈물이 아닌 강인함 속에서 폭발하는 눈물없는 흐느낌인 것이다. 리드미컬하게 클라이막스로 향해가는 그의 추진력도 무언가를 끊임없이 쫓는 듯한 그의 고독을 나타낸다. 자신의 우울함을 떨궈내기 위한 몸부림의 표현은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꿈같은 노래로 표현되는 듯 하다. 이렇게 느껴지는 생각과 상상력은 그의 음악을 여러가지 각도에서 즐길 수 있는 기쁨을 준다. 불행하게 살았다고는 할 수 없는 그의 인생이지만 그는 그의 음악에서 대부분 ‘애수’과 억눌려진 자신을 분출하고 픈 ‘정열’을 동시에 나타내었다. 그가 ‘d단조의 작곡가’라는 별명이 붙은 만큼 대부분의 그의 작품이 단조의 조성을 갖고 있는데, 단조 음악안에서의 감미로운 노래와 그의 폭발적인 표현은 뛰어난 음악성과 함께 화려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음악의 마력에 빠져들게 한다.. 추천할 만한 대표적인 그의 작품으로 위에서 언급한 피아노 협주곡 2번, 피아노 협주곡 3번,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Rhapsody on a Theme by Paganini, Op.43),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Variations on a Theme of Corelli)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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