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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로저널 / on Feb 15, 2009 21:09
Anton Bruckner(1824-1896) 19세기 후기 독일 낭만주의의 계보를 잇는 대표적 작곡가 중 한 사람인 부르크너는 늦은 나이에 그의 완성된 음악을 선보였다. 보통 베토벤을 거친 독일 낭만파의 후계자로 같은 시대에 활동하던 브람스를 지목하는데 비해 부르크너의 명성은 상당히 약한 편인데, 이는 브람스가 보다 많은 작품에서 활약하였다는 이유도 있지만 그가 20대부터 활발히 활동하면서 입지를 굳힌 이유도 있다. 40대에 겨우 빛을 발한 작품을 선보이며 세상에 이름을 알리던 숨겨진 거장 부르크너, 이번 글에서는 독일 교향곡의 전통적 계보를 이으며 낭만주의의 최종 단계에서 최고의 대단원을 이끈 그에 대해서 소개해 보고자 한다. 교사이자 오르간 주자였던 아버지를 둔 부르크너는 오스트리아의 벽촌에서 소년기를 보냈다. 교사가 되기를 희망했던 그는 장크트플로리안 수도원의 학생이 되었고 여기에서 그는 성가대로 활동하며 종교적 생활을 접한 음악 교육을 받았다. 전 생애에 걸친 브루크너의 카톨릭 신앙과 음악의 접목이 시작되는 시기였다. 수도원을 떠난 후 오르간 주자와 교사 활동을 하다가 1856년 경쟁이 치열했던 린츠 대성당 오르간 주자의 지위를 얻었다. 이곳에서 10여 년이 넘게 근무를 하면서 그는 방대한 3개의 합창 미사곡 d단조(1864), e 단조(1866), f 단조(1868)를 작곡했다. 합창곡에서 교향곡으로 향하는 작곡의 전이는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테’ 를 감상하고부터인데 이후 부르크너는 바그너의 신봉자가 되었고 그의 ‘교향곡 3번’을 바그너에게 헌정하기에 이르렀다. 그가 바그너의 신봉자가 된 것은 부르크너의 음악이 일찍이 빛을 발하지 못한 하나의 이유가 되기도 했는데 이는 브람스 음악을 추종하는 많은 이들로부터 무조건적인 비판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지몬 제히터의 뒤를 이어 빈 음악원의 교수가 된 그는 교향곡 작곡에 열중하여 대작을 완성하였지만 브람스 스타일과 판이하고 난해하다는 이유로 수 많은 개정과 수정작업이 있었고, 이는 그를 완벽주의자 내지 유약한 작곡가라고 평가된 이유이기도 하였다. 조용하고 소극적인 성향을 갖고 있었던 그는 바그너와는 달리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펼치려고 하지 않았고 종교적 바탕 위에서 내향적인 작품활동을 고집하였다. 1883년 교향곡 7번의 성공을 시작으로 뒤늦은 명성을 얻은 그는 1896년 빈에서 사망했고 성 플로리안 성당에 그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다. 깊은 카톨릭 신자였던 부르크너는 종교적 색채를 바탕으로 한 음악을 작곡하였다. 이러한 종교적 분위기의 요소는 교회 선법의 사용, 이따금 나타나는 교향곡에서의 다성적 텍스처,코랄풍의 주제 등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음악의 전체에서 느껴지는 엄숙함과 거대한 울림, 무거운 텍스처, 교회음악의 기본악기인 오르간 풍의 광대한 관현악 울림 등 종교적 요소는 전반적으로 그의 음악에 내재하고 있다. 음악사적으로 대부분을 차지하는 그의 교향곡은 일반적으로 베토벤의 4악장 형식을 따르고 있는데 이는 알레그로- 아다지오- 스케르초- 알레그로로 이루어져 있다. 브루크너는 이들 각 악장을 극단적으로 확장하였고 세부적인 주제의 표현대신 화성 형태의 덩어리들이 그룹을 이루면서 통일성을 갖는 형태를 취하였다. 이는 클라이막스에 의해 전개되는 음악적 표현으로써 간결한 주제의 전개보다는 큰 스케일에 의한 흐름에 의존한 음악인 것이다. 이러한 성향은 무거운 관현악법과 접목되어 간결하고 가벼운 리듬보다는 대담한 화성 덩어리의 장중한 표현으로 전개가 되기 때문에 그의 1악장 알레그로는 바그너의 음악과 같이 보통의 음악처럼 빠른 템포로 흘러가지 않는다. 교향곡에서의 주제는 대부분 영웅적이며 남성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고 때때로 슈베르트의 음악과 같은 감미롭고 서정적인 표현도 나온다. 또한 현악이나 목관악기에 의한 트레몰로로 신비스럽고 목가적인 표현을 자주 사용하였고 ‘렌틀러(Lanedler)’라는 오스트리아의 춤곡에서의 거친 리듬을 기본으로 한 스케르초를 구성하였다. 대부분의 작품이 두껍고 무거운 색채와 어두운 금관악기의 울림을 기초로 하였다는 이유로 바그너적이라는 평도 있을 수 있지만 부르크너의 독특한 목가적 분위기와 순수한 울림의 신비적 분위기,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그의 음악 형태를 읽는다면 그와 바그너와의 연결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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