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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로저널 / on Sep 01, 2008 02:12
Edward Elgar;1857-1934 <명성> 1890 년대에 엘가는 작곡가로써의 명성을 쌓아가기 시작하는데, Midlands 에서 열린 코랄 음악 축제에서의 발표가 그 대표적 예이다. 여기서 그는 미국의 시인인 Longfellow (H.W Longfellow;1807-1882)에게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The Black Knight, King Olaf(1896)와 The Light of Life, Caractacus 를 초연하며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둔다. 엘가는 항시 비평가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고(시큰둥한 비평에도 불구하고) 음악 축제의 작곡가로써 고집스럽게 그의 음악을 추구해 나갔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안정되어가는 상황임에서도 그는 그의 음악에 만족하지를 못했고 좀 더 큰 작품으로써 그의 음악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노력, 1899년 그의 나이 42세에 첫번째 오케스트라 작품인 ‘수수께끼 변주곡(Enigma Variations)’을 발표하게 되었다. 런던에서 한스 리히터의 지휘로 이루어진 그의 초연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고 그는 이 곡으로 인해 일약 영국의 스타 작곡가가 되었다. 이 곡의 본 제목은 ‘관현악을 위한 오리지날 주제의 변주곡(Variations on an Original Theme)’ 이었으나 엘가가 이곡에 대해서 ‘수수께끼’라는 말을 언급했으므로 ‘수수께끼 변주곡’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엘가가 이야기한 수수께끼로는 첫째로 14개로 이루어진 각각의 바리에이션에 친구들의 이니셜을 붙여서 그들의 캐릭터를 표현 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드러나지 않는 주제가 있다는 것이다. 첫번째 수수께끼는 해석가들에 의해 이니셜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낱낱히 밝혀 졌지만 두번째 수수께끼는 아직까지 주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여하튼 이 곡은 리하르트 스타라우스로써 대표되어지던 당시의 독일 후기 낭만파음악과 많은 부분을 공유한, 유럽에서 환영받는 세계의 많은 연주회를 위한 명곡이 되었다. 엘가의 이름을 가장 많이 알려지게 한 곡은 아무래도 ‘위풍당당 행진곡(Pomp and Circumstance Marches; 1901~1930)’ 이다. 에드워드 7세의 대관식을 위해 지어진 이 곡은 5개로 이루어졌고 그 중 1번이 가장 유명한데, 이곡을 듣고 감격에 겨운 에드워드 7세는 중간 부분에 ‘희망과 영광의 나라 (Land of Hope and Glory)’라는 제목을 붙였다. 영국의 국가와 같이 애창되는 이 곡은 영국 국민들의 자긍심을 한층 더 높여주었으며 엘가는 대중적인 인기와 함께 영국의 국민작곡가로써의 명성과 ‘기사’의 작위를 받게 되었다. 1902년에서 1914년, 엘가의 4번의(1번의 지휘를 포함한) 미국 방문은 그에게 성공과 함께 많은 경제적 수익을 얻게 해 주었고 1905년에서 1908년, 결국 그는 버밍함 음대의 교수직을 얻는다. 버밍엄에서의 그의 강의는 다른 영국 작곡가들과 일반적인 영국 음악에 대한 논쟁의 요인이 되었다고 한다. 버밍엄 대학에 있는 기록에 의하면 그는 이러한 말을 했다고 한다. ‘영국 음악은 하얗다. 이것은 모든 것을 교묘하게 피해간다.’(-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다. ‘영국인이 어떤 큰 방에 들어간다. 아주 아름다운 각도의 방에, 그것은 온통 하얗다. 그리고 그이는 이것이 매력적인 아름다움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이 너의 마음에서 영혼에서, 전혀 너의 취향이 아닌, 단지 도피를 위한 표현이다.’ -좀 더 개성있고 뚜렷한 영국 음악의 색깔을 추구하고자 한 그의 바람이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유명인으로써의 생활은 그에게 명예를 주었지만 신경과민적인 증상을 동시에 제공했다. 그는 1903년 친구인 예거(Jaeger)에게 이렇게 불평했다고 한다. ‘나의 인생은 내가 사랑하는 작은 것들을 포기하는 것이다’ 1908년에 발표된 엘가의 심포니 1번은 그 해에만 100번의 연주회가 열렸을 정도로 성황이었고, 1910년에는 세기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크라이슬러(Fritz Kreisler)의 의뢰에 의한 바이올린 협주곡을 발표, 1911년에는 그의 심포니 2번을 완성하였다. 엘가의 음악은 기본적으로 오케스트라와 코랄이었지만 그는 독주와 작은 악기 그룹을 위한 곡을 쓰기도 하였다. 대표적 예로 브라스 밴드(Brass Band)를 위해 쓴 ‘The Severn Suite’(나중에 오케스트라로 편곡되기도 하였다)인데, 이것은 브라스 밴드 연주의 중요한 레파토리 곡들 중 하나가 되었다. 이 곡은 Sir Ivor Atkins 에 의해 오르간을 위한 곡으로 편곡되었고 엘가의 두번째 오르간 소나타가 되기도 하였다 ; 엘가의 첫번째 오르간 소나타(1895)는 전형적인 오케스트라 스타일로 자주 연주되는 낭만주의 오르간 곡으로 애용되었다. (본 내용은 엘가의 전기를 살펴보고자 한 취지에서 클라식 전문 사이트인 Classic Cat 에서 의역, 번역된 것입니다. http://www.classiccat.net/index.htm) -다음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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