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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1886 리스트의 작품은 언제나 화려하다. 이러한 점 때문인지 리스트 작품의 연주회는 잠깐이라도 느낄 법한 공연장에서의 ...
by 유로저널 / on Oct 12, 2008 23:31
1811-1886 리스트의 작품은 언제나 화려하다. 이러한 점 때문인지 리스트 작품의 연주회는 잠깐이라도 느낄 법한 공연장에서의 지루함을 전혀 안겨주지 않는다. 최상의 기교를 지닌 연주자의 리스트는 그 화려함이 최고조에 이른다. 피아노의 현이 끊어지거나 피아노의 흔들거림을 볼때, 혼신을 다해 연주하는 연주자의 음악에 같이 빠져든다. 예전 글에서 소개한 ‘악마적 기교의 파가니니’가 바이올린에서의 신들린 음악가라면 리스트는 ‘피아노의 파가니니’라고 할 수 있다. 낭만주의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이며 당시에 최고의 피아니스트였던 리스트, 이번 글에는 그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리스트는 헝가리의 라이딩그에서 에스테르하지 공작 밑에서 일하는 관리인 아버지와 오스트리아 출신의 모친에게서 태어나 6세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이후 12세에 빈으로 가서 베토벤의 제자이며 빈 악파의 대표주자였던 체르니에게서 피아노를, A 살리에리에게서 작곡을 배웠다. 11세 부터 콘서트 피아니스트로서 활동을 한 그는 파리에서 1948년까지 거주하며 대단한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의 이 시기에 그의 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인물들의 만남을 가지게 되는데 그들이 바로 쇼팽, 베를리오즈 그리고 마지막으로 파가니니이다. 쇼팽의 음악은 그에게 피아노 양식의 기초를 제공하였다. 기본적으로 쇼팽이 사용하던 독특한 화성법(불협화음의 적절한 사용, 화성 자체가 커다란 선율로 됨)과 서정적 선율의 사용, 그의 대표적인 루바토 주법(템포를 고무줄 처럼 늘렸다가 당겨주는 표현)등을 수용하였다. 또한 베를리오즈로 대표된 표제음악에 깊은 매력을 느꼈고 그는 그의 대다수의 작품에 표제적 성격을 부여하였다. 마지막으로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파가니니와 그의 음악은 리스트에게 피아노로써 표현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실험하게 한 계기였다. 그의 연주를 듣고 충격을 받은 리스트는 파가니니와 같은 음악적 효과를 내기 위한 피아노 작품을 쓰기 위해 열정을 쏟았으며 10시간 이상을 연습하며 파가니니와 같은 연주자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이러한 점 때문인지 화려한 매력이 있지만 피아노의 한계를 극복하려 한 그의 노력은 다소 과장된 기교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파리에서 지내던 1834년 그는 마리 다구 백작부인을 만나게 된다. 6세 연상인 그녀와 내연의 관계를 가진 그는 3명의 자녀를 두었다(이 중 한명인 코지마는 후에 바그너의 부인이 되었다).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로써 최고의 자리에 위치한 그였지만 파리의 사교계는 그와 마리 부인과의 내연의 관계를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리부인과의 관계는 힘든 스캔들의 상황을 견디지 못해서가 아닌, 다른 여인에 의해서 깨지게 된다. 1847년에 키에프 연주회에서 만난 자인 비트켄슈타인에 의해서이다. 그녀는 그의 인생의 후반기에 조언자로써 많은 역할을 하게 되는데 ,그녀는 피아니스트의 활동을 중단하고 작품에 몰두하도록 그를 설득하였다. 그녀의 조언과 함께 거처를 옮기면서 그는 1848년부터 1861년까지 바이마르 궁정 음악감독을 하게 된다. 이 시기의 그는 안정된 생활과 함께 여러 대작들을 완성하게 되는데 대표적인 작품이 피아노 소나타 b-minor (1853), 그란의 미사(1855), 파우스트 교향곡(1857), 단테 교향곡(1856) 등이다. 1850년에 열린 바그너의 로엔그린을 바이마르에서 상연한 것을 계기로 그는 지휘자로써도 명성을 얻었다. 자인 부인과 헤어진 후 1861년부터 1871년까지는 로마 카톨릭에서 작은 성직을 맡음으로 종교로의 귀의를 한 후 독일의 바이로이트에서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리스트의 국제적인 경험과 감각은 그의 작품세계로 이어졌다. 빈 악파의 체르니에게서 전수 받은 독일 음악의 토대에서, 19개의 헝가리 광시곡(Hungarian Rhapsodies)에서의 민속적 요소, 위고, 바이런을 중심으로 하는 프랑스 낭만주의 문학의 심취에서 추구한 음악과 시의 결합, 심지어 종교에의 귀의로 절제된 간결한 비장식성 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러한 다양성을 토대로 그는 또한 많은 작품들을 피아노곡으로의 편곡, 개작을 꾀하였다. 빛을 발하지 못했던 곡들도 리스트의 현란한 주법에 의해서 다시 탄생되었다. 슈베르트의 가곡, 베를리오즈와 베토벤의 교향곡, 바그너의 악극 등이 대표적인데, 이들을 들으면 원곡과는 아주 색다른, 피아노 작품으로의 갈망에 몸부림 치던 그의 모험과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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