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os Janacek; 1854-1928
체코의 민족주의 작곡가인 야나체크는 늦은 나이에 열정적인 사랑을 하였다. 그의 작품 중 상당수가 사랑하는 연인에 대한 감흥으로 작곡되었는데 이는 기쁨, 고통, 열정 등으로 표현된 사랑의 성가였다. 황혼의 짜릿한 로맨스를 즐긴 20세기 체코의 위대한 작곡가 야나체크, 그의 인생과 사랑을 간략하게 소개하겠다.
1854년 그는 모라비아 지역 오스트치펠의 후크발디에서 태어났다. 교사인 아버지와 평범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야나체크는 14세에 아스구스틴 종교 재단의 부속학교에 입학하여 대 작곡가인 파벨 크리츠코프스키를 사사했다. 이어 1872년 졸업을 한 후 한 교육단체에서 조교로 일하며 ‘베세다’ 라고 불리던 필하모닉 규모의 단체에서 합창을 하기도 하였다. 이후 1880년 브륀의 인문고등학교에서 정식 음악교사를 하며 작품 활동을 하게 된다. 야나체크는 이 학교의 교장인 프란티젝 바스토스를 알게 되면서 민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 이때부터 시작된 민요에 대한 열정은 그를 단번에 민족주의 작곡가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데 기여를 하였다. 그는 민요의 멜로디에 대한 깊은 연구를 시작하였고 또한 멜로디가 언어, 소리, 음절에서 비롯된 리듬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한 민요적인 음악 철학을 기본으로 그는 출생지인 모라비아 민속 음악을 채집, 편집했고 농민언어와 리듬의 억양을 연구하였다. 그는 독일 방식의 악상들을 뒤로 하고 드뷔시와 유사한 방식인 대조적인 음향, 화성, 동기와 음색에 의지한 악상들을 배치시켰고 개성적인 언어적 색채를 기본으로 한 음악 어법을 고안해갔다. 결국 높은 수준의 민요와 합창 음악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어 1916년 ‘예누파’ 를 계기로 세계적인 작곡가의 반열에 올라선다. 이후 오페라, 관현악, 실내악 등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며 ‘카티아 카바노바(1921)’, ‘교활한 작은 암여우(1924)’, ‘마르코 폴로의 사건(1925)’, ‘죽은 자의 집으로부터(1928)’, ‘신포니에타(1926)’, 등의 명작을 발표하고 1928년 오스트리아 병원에서 폐렴으로 사망했다.
야나체크의 사랑은 순탄치 않았다. 26세에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인 11살 연하의 츠덴카와 결혼한 그는 그녀와의 다른 사고방식과 언행(츠덴카의 부모는 독일인이었다)으로 인해 감정의 교류에 문제가 있었다. 또한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두 아이를 잃은 후 그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져 갔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야나체크는 휴양지 루하코비체에서 우연히 카밀라라는 여성을 보게 되는데 그는 발랄하고 수수해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반하게 되었다. 이때 그의 나이가 63세였고 카밀라는 25세의 어린 나이였다. 카밀라는 그 당시 유부녀였고 야나 체크도 아내가 있었지만 그의 사랑은 숨김이 없었다. 공개적으로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였고 11년 동안 무려 720여 통의 편지를 쓰기도 하였다. (아이러니한 일은 야나체크의 부인과 카밀라의 남편이 이들의 공개적인 외도를 알면서도 묵인했다는 것이다) 카밀라를 안 후부터 야나체크는 처음의 만남과 사랑을 키워나가는 과정을 표현한 현악 4중주곡 ‘비밀편지’, 카밀라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작곡하였다는 오페라 ‘카티아 카바노바’, 카밀라에 대한 사랑을 가장 절실하게 표현한 ‘크로이첼 소나타’, 그리고 교향시 ‘볼라니크의 발라드’ 등을 발표했으며 이 중 ‘카티아 카바노바’와 ‘비밀편지’의 판권을 카밀라에게 넘긴다는 유언까지 남길 정도로 그 애정이 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