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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가 끝났지만 흥분한 심장의 박동수가 돌아오지 않는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도 계속 귀에서는 그 음악이 맴돌고 있다. 3월 8일 파리의 모가도르 극장에서 있었던 파리 오케스트라(Orchestre de Paris)의 연주는 요 근래에 들어본 연주 중 가장 충격적인 명연이었다. 그 충격의 주인공은 핀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에사-페카 살로넨 (Esa-Pekka Salonen).
현재 LA필하모닉의 음악감독이며 작곡자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그는 이날 파리 오케스트라와의 연주에서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스트라빈스키의 발레곡 <불새>를 들려주었다. 바이올린 협연자는 세계적인 명성의 연주자 막심 벤게로프 (Maxim Vengerov). 이 두 스타의 명성만으로도 이 연주회는 일찌감치 매진되었고 많은 음악 팬들의 기대로 모은 연주였다. 하지만 음악회장에 도착한 관객들은 잠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초 예정되어 있었던 협연곡인 쇼스타코비치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벤게로프의 요청으로 베토벤으로 변경되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연주회가 시작되고 벤게로프가 등장하자 적지 않은 수의 관객들이 야유를 보냄으로써 갑작스런 프로그램 변경에 대한 항의를 표시하기도 하였다. (나중에 전해들은 바로는 벤게로프의 팔 상태가 좋지 않아 부득이하게 곡을 바꾸었다고 한다.) 벤게로프는 그의 명성에 걸맞은 기교와 특유의 자신감으로 곡을 이끌어 갔지만 오케스트라와의 호흡에서 그리 완벽한 연주를 들려주지는 못하였다.

2부에 연주된 곡은 스트라빈스키의 발레음악 <불새>, 이 곡은 스트라빈스키가 28세 때 러시아의 디아길레프 발레단의 의뢰를 받아 작곡한 곡으로 후에 작곡자가 연주회용으로 편곡한 모음곡까지 총 4개의 버전이 있다. 현재 가장 많이 연주되는 곡은 제2모음곡인 1919년 판인데 이날 살로넨이 선택한 것은 1910년 판인 오리지널 버전이었다.
살로넨은 현재 48세이지만 외모로 보아서는 그의 나이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동안(童顔)이다. 미소년 같은 외모에서 품어 나오는 그의 에너지는 관객들을 사로잡는 열정적인 카리스마로 넘친다. 이날 그가 들려준 <불새>는 마치 한 마리의 불새가 날아오르듯 지휘자 자신이 음악의 불꽃에 타오르며 훌륭한 연주를 들려주었고 그 열기는 이날 음악회장으로 뜨거운 흥분의 도가니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방금 같이 연주를 끝내고 나온 한 바이올린 주자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 듯 상기된 얼굴로 연주에 대한 만족함을 표시할 정도로 이날 연주는 매우 훌륭하였다. 1992년부터 LA필하모닉을 맡아 이 악단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그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연주가 끝나고 무대 뒤에서 그를 만났다. 그리고 어린 시절 나의 이야기로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중학교 시절, 한 오케스트라의 연주 영상을 본 적이 있었는데 금새 나의 시선이 지휘자에게 고정되고 말았던 적이 있다. 지휘자가 너무나 젊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나의 지휘자에 대한 인식은 어느 정도 느긋한 나이 많은 음악가였는데 이 지휘자는 금발머리의 앳된 소년 같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인상이 그의 이름을 나의 머리에 새겨놓았었는데 그가 에사-페카 살로넨이었다. 어린 시절 당신의 비디오를 보면서 지휘자를 꿈꾸었던 소년이 세월이 지나 파리에서 그 꿈을 펼치고 있다고 이야기 하자 매우 반가워 하며 따뜻하게 격려해 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직도 불새의 마지막 종지부분을 지휘하던 그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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