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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30 17:26
옥스브릿지의 자존심 대결
조회 수 2333 추천 수 0 댓글 0
어렸을 때 한 의류 TV광고에서 캠브리지의 우아한 도시 모습과 기품이 넘치는 광고모델들의 자태를 보면서 캠브리지라는 곳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가졌었다. 옥스퍼드와 캠브리지는 단순한 대학도시라기 보다는 영국의 전통이 살아있는,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는 과거의 향기를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은 곳이다. 물론 대학도시로써도 단연 영국뿐 아니라 세계 최고임은 당연하고 말이다. 젊은 사람들은 활기차고 시끌시끌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오늘날의 학생들은 학교가 도시 중심 외곽에 있는 것보다는 도시 중심에 위치해, 교문 밖으로만 나가면 많은 놀 거리와 구경 거리가 넘쳐나고, 먹고 마시는 것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유흥가가 있기를 선호한다. 내가 다니던 대학교가 그 대표적인 모델인 것 같다. 학교 실기실에서 그림을 그리다가도 작업복을 벗어 던지고 교문만 벗어 나면 바쁘게 걸어 다니는 젊은 이들이 있고, 작은 전시장, 공연장 등 볼거리가 항상 넘쳐 났으며, 값싸지만 맛있는 음식들부터 감히 학생들을 단골로 상대하기엔 너무 고급스러운 메뉴까지 정말 다양하다. 그래서 멋진 시간을 보내기 위해 다시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멀리 갈 필요가 없었고, ‘학교 앞’은 그냥 학생들의 매력적인 놀이터가 되었다. 런던에서 있는 나의 학교의 모습도 꼭 그러하다. 트라팔가 광장에서 북쪽으로 걸어서 단 5분이면 도착하고, 중앙 건물을 통과해 실기실로 가면 내 작업실이 도시 안의 모든 것과 차단 된 마치 독립적으로 둥둥 떠있는 공간처럼 느껴질 정도로 밖의 모습과는 정말 다른 느낌을 가진다. 그 곳에서 작업을 하다가 다시 교문 밖으로 나가면 마치 내가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그 공간은 자동으로 문이 닫혀 땅 속이나 외계로 가버려 그 모습이 보이질 않는 듯 하다. 같은 현실이지만 두 공간 사이 작은 이동이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다. 학교 앞에는 코벤트 가든과 소호, 차이나 타운이 있어 항상 새로운 곳을 찾아 헤매기 바쁘고, 대영 박불관과 내셔널 갤러리 같은 대형 전시공간뿐 아니라 버스를 타고 조금만 가면 작은 전시공간이 많은 East End에도 금방 도착할 수 있다. 난 이제 이런 생활 공간에 익숙해져 있다. 나에게 이런 활기찬 모습을 제공하지 못하는 도시에서 살아보라면 지금 생각 같아서는 몇 일 안되어 답답함을 느끼고 어떻게든 그 곳을 벗어나려고 바둥거릴 것 같다. 항상 한적하고 평화로운 곳에 대한 그리움이 있으나 그런 곳에서 휴가나 여행이 아닌 일상생활을 한다고 생각하면 벌써부터 하품이 나온다. 옥스퍼드와 캠브리지는 내가 바라는 대학 주변 분위기와는 분명 다르다. 한국에서처럼 교문 밖 반짝이는 네온사인도 없고, 런던에서처럼 학교 주변에 이것저것 구경거리가 많아 흥미롭지도 못하다. 그런 곳에서 나보다도 더욱 젊은 사람들이 학교생활을 행복하게 하고 있다. 나라면 지겨워 몸부림쳤을 것을. 옥스퍼드와 캠브리지는 일반 대학가와 다르다. 그곳은 조용함과 여유로움이 있다. 길을 걷다가도 들고 있던 책을 열고 벤치나 하다 못해 잔디밭 위에 그냥 주저 앉으면 자연스럽게 책에 집중을 할 수가 있다. 책을 읽고, 공부를 한다는 것은 옥스퍼드와 캠브리지에서는 일부 사람들의 모습이 아닌 도시 전체가 풍기는 오래된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공부만 학교 안팎에서 공부만 하고, 런던이나 한국의 학생처럼 술을 마시고, 놀러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운동을 즐기고, 여행을 사랑하는 호기심 많은 옥스브릿지 출신 사람들을 꽤 아는데 그들은 오히려 더욱 활달하고, 삶에 에너지를 불어넣기 위한 어떠한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매년 3월 마지막 주에 런던에서 열리는 옥스퍼드와 캠브지리 대학의 보트 경주는 그들의 에너지와 생기를 느끼게 하는 행사다. 조용하고 한적한 도시에서 학문에 집중하다가 이때가 되면 그들은 학교 작업실 밖에서 뛰어나와 도시의 다양한 매력 속으로 빠져드는 나처럼 조용하고 정적인 도시에서 벗어나 그들의 열정을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 모든 힘을 다한다. 옥스퍼드와 캠브리지를 이르는 옥스브릿지라는 말은 이 두 대학도시의 경쟁심을 상징한다. 이들이 해마다 이렇게 보트 경주를 벌린 것은 1829년부터 이다. 당시 캠브리지 학생이던 찰스 메리발과 그의 친구였던 옥스포드 대학의 찰스 워드스워드에 경주를 제안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도전은 다음해에도 계속 되었고, 결국 경주에서 진 팀이 다음 해에 도전을 하는 식의 전통을 가지게 된 것이다. 비록 이것이 아마추어 경기지만 경기 참여자는 절대적으로 옥스퍼드와 캠브리지 대학 출신이어야 하며 경주 규칙은 엄격하게 지켜져야 한다. 일반적으로 각 팀은 경주 6개월 전부터 훈련에 들어가며 일주일에 6일정도 함께 하면서 호흡을 맞춘다. 이렇게 아마추어로 출발하지만 이 경주를 통해 결국 올림픽에서 우승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 중 1990년,1991, 1993년에 옥스브릿지 보트 경주에 참여했었던 매튜 핀센트는 올림픽에 참가해 무려 4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옥스퍼드와 캠브리지 대학에는 체육과 관련된 과가 없고 학생들은 아카데믹한 과목에 집중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이 곳 학생들은 활동적인 것을 찾는 것에 목말라 있고, 보트 경주를 위한 준비는 어쩌면 학업으로부터, 그리고 일상에서 벗어나는 작은 문을 여는 것과 같을 것이다. 경주에 참여 하기 위해 전 해 9월부터 공개 테스트에 참여하고 각 학교에서 보내진 20명의 학생들과 모든 다른 학생들과 함께 경쟁을 하고, 거기서 선발되면 런던의 보트 경주 과정으로 보내져 또 다른 훈련을 받는다. 아마추어지만 전문적인 심신이 필요하다. 따라서 훈련에 임하는 학생들은 그들의 진정성과 절대적인 노력을 놓지 않고 그들 선배가 만들어 놓은 명예와 빛나는 우승결과에 더 큰 기쁨을 더하기 위한 짧은 투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지난 주 토요일에 있었던 보트경주에서는 옥스퍼드대학이 우승을 했다. 경기 중 서로간의 호흡을 맞추면 4마일이 넘는 거리에서 한 번도 집중력을 놓지 않는다. 물론 우승을 하는 쪽이 기쁨이 더 크겠지만, 사실 이 옥스브릿지의 경주는 우승만이 목적이 아니다. 오래된 전통을 현재에 까지 유지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그들의 자존심을 다시 한번 굳건히 지키는 것이고, 여기에 열광하는 관중들의 모습에서 그들의 대결은 더욱 빛나게 된다. 대학에서 학문을 대하는 그들의 뛰어난 마인드와 열정적인 자세가 더욱 사람들을 매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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