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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3 19:17
실험적 영화, 그리고 예술의 공간 ‘ICA’
조회 수 3530 추천 수 0 댓글 0
트라팔가 광장에서 버킹엄 궁전으로 가는 길가는 런던시내에 있으면서도 조용하게 거닐 수 있는 작은 쉼터역할을 한다. 왼쪽으로는 제임스 파크가 있어 날씨가 좋은 날에는 거기서 잠시 쉬다 다시 길을 나설 수 있고, 오른쪽에 있는 ICA는 일반인들이 쉽게 들러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장소이다. ICA(Institute of Contemporary Arts)는 갤러리뿐만 아니라 영화관, 그리고 까페와 바가 있어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들뿐 만 아니라, 그냥 문화공간을 느끼고 싶은 이들에게 행복한 곳이기도 하다. 특히 여기서 상영되는 영화와 전시는 대중적인 것들뿐만 아니라 실험적이거나, 제3세계의 내용을 소재로 한, 조금은 이색적인 내용을 담은 작품들이 소개된다. 난 가끔씩 여기서의 문화경험으로 한번도 가보지도 않고,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보기도 한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데 작년 가을쯤, 친구와 함께 여기서 영화 한 편을 봤었다. 전시가 다가오고 있어 정신이 없지만 아침부터 하루 종일 그림만 그리다 보니 가끔씩 작업실에서 벗어나 머리를 식히는 시간이 필요했었다. 늘 있는 일이지만 그래도 항상 전시를 앞두면 긴장되고 뭔가 분주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하긴 그것이 작업의 매력 중의 하나이긴 하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큰 캔버스 앞에서 씨름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 창밖에 비가 오고 있어 작업실에 박혀 그림만 그리고 있는 내 모습이 그다지 안쓰럽진 않다. 때때로 화창한 날씨가 계속되는 날이면 살짝 창문 밖으로 눈을 돌리는 것도 망설일 정도로 외출에 대한 지독한 유혹을 느낀다. 친구가 작업실에 잠깐 들렸다. 그 김에 잠깐 쉬면서 가벼운 수다와 차 한잔으로 작업실 공간에서도 심신이 편안해 질 수 있다. 이야기 중에 친구가 영화를 보자고 제안하기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작업복을 벗고 외출을 준비했다.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따뜻한 하루였다. 까페에서 샌드위치를 사먹고 바로 영화를 보는 장소로 걷기 시작했다. 친구와 함께 선택한 영화는 이란 감독인 Hana Makhmalbaf의 <Buddha Collapsed Out of Shame>였다. 영화에 대한 정보는 먼저 본 한 친구가 대략의 줄거리를 말해 준 것이 전부였다. 이전에 이 감독에 대해 들어 본 적도 없었고,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는 기사조차도 이전에 본 적이 없다. 하지만 ICA에서 선택한 영화라면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라 여겼다. 친구의 말에 따르면 탈레반 정권에 의해 파괴되는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을 아이들의 시각과 그들의 놀이를 통해 보여준다는 것이었다. 영화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배경은 아프가니스탄의 작은 마을인 Bamian으로 주인공인 소녀는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동굴을 파서 만든 집에 산다. 옆집 소년이 학교에 다니는 것을 부러워하다가 결국 학교에 가기를 결심한다. 공책, 연필 등을 사기 위해 집에 있는 달걀 4개를 들고 나가 돈을 벌어 본다. 결국 깨진 두 개의 달걀 때문에 공책 한 권만 살 수 있으며 그것을 들고 학교로 향한다. 하지만 학교를 가다가 만난 소년 집단들은 그 소녀에게 나뭇가지 끝을 들이대며 테러리스트라고 놀리며 머리에 종이 봉투를 씌우고 웅덩이를 파 매장시키려는 흉내를 내는 등 단순히 아이들의 놀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잔인한 모습이 계속된다. 힘들게 마련한 소녀의 공책을 찢어 비행기를 접어 하늘로 날리면서 마을의 불상을 폭파하려는 미사일이라고 하는 둥 그 소년 집단들은 마치 엄청난 힘을 가진 군인인 것처럼 행동한다. 그들의 눈에는 길을 지나가는 다른 아이들은 모두 테러리스트나 미국의 스파이로 설정된다. 영화의 줄거리처럼 배경이 되는 마을의 모습도 너무나 초라하다. 현대 문명의 혜택을 받고 있는 나의 모습이 부끄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문명의 혜택이라고는 전혀 찾기 힘들고 교육 환경은 너무나 열악하다. 영화에 나오는 어른들의 모습, 그리고 철 모르는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변화하는 세상과 상관없이 그들의 굳어진 좁은 생각들과 구식의 삶의 모습에 그럭저럭 적응하고, 그렇게 사는 것에 크게 불만을 가지고 있지 않는 우둔함을 볼 수 있다. 깨어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탈레반 정부는 더욱 더 그들의 사회를 폐쇄적으로 만들고 세상과 고립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탈레반은 1994년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주에서 결성된 무장 이슬람 정치단체로 처음에는 14년간 계속된 아프가니스탄 내전과 4년 동안의 모자헤딘 권력투쟁을 종식시키고 과도정부인 이슬람공화국을 선포하는 등 나라의 결속력을 다지기 위한 노력을 하여 사람들에게 큰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계속되는 내전으로 나라의 안정을 찾기 힘들어 지면서 각 지역에서 일어나는 반인권적, 부도덕적인 사건들에 대해 침묵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이슬람교에 대한 보다 엄격한 규율을 만들어 사회차별이 심해지면서 여학교 폐쇄, 텔레비전 시청 금지, 가혹한 이슬람식 처벌제도를 부활시키는 등 탈레반 정부의 행동들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수위에 이르게 되었다. 2001년 3월, 탈레반은 군대의 로케트와 탱크를 동원해 아프가니스탄 내 불교 유적과 불상을 부수는 사건이 있었는데 이것이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것이다. 불상의 파괴는 결국 아프가니스탄 문화 유적의 파괴를 의미한다. 탈레반 정부를 위해 앞장서서 이런 일을 처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을 보는 눈이 닫혀있는 무지한 서민들이다. 결국 한 정치단체의 불필요한 힘은 사람들을 더욱 무지하게 만들고 이것을 이용해 이들의 정신을 움직이는 것이다. 이 영화 한편으로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을 정도로 놀라운 한 세상을 경험할 수 있었다. TV에서 나오는 뉴스는 사건의 결과를 알게 할 뿐 실제 그곳 현지 사람들의 모습을 읽을 수 있게 하진 못한다. 그러나 아이들의 눈으로 그려진 영화 한 편으로 내가 사는 세상의 한 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잔혹함과 그 심각성을 직접적으로 느끼게 되었다. 영화관을 나와 제임스 파크를 걸으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저 행복하게만 보였고, 지금 런던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내가 행운아라는 생각이 들게 한 소중한 문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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